정월 초 하루, 일년지계를 이리저리 배열하노라면 우리는 필경 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길을 벗어나지 않고 잘 걸어왔는가. 올 한 해에도 잘 걸어갈 수 있을 것인가. 자취는 자유자재하여 걸림이 없고, 이롭게 쓰이되 누구를 가리지 않고, 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을까. 

땅에 씨 뿌리고 거두는 걸 돕는 해와 달과 비와 바람과 같이, 그것들을 품고 있는 하늘과 같이, 땅과 하늘 사이의 그 길을 담담히 걸어갈 수 있을까. 오래된 경전 중용(中庸)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늘의 길을 알고 있다. 본성이 곧 하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 길을 보는 눈을 닦고, 그 길을 늘 걸어갈 의지를 다지고, 그 길 위에서 도망치지 않기 위해 길 위에 있어야 할 까닭을 밝히고, 땅과 하늘을 하나로 만들어야 온전해지는 나로서, 부응하고 소통하고 매개하는 나를 혹은 타력으로 혹은 자력으로 지켜낼 수 있을까.

숨은 것보다 더 잘 드러남이 없기에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행동을 삼가며, 미세한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은 없기에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 하며, 나를 하늘과 땅에 가깝게 정련할 수 있을까.

화평의 길은 이렇듯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 삶을 영위하면서 자기를 극복하는 것 보다 어려운 일이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배타적인 자기 욕망을 줄이는 것도 모자라 공동체의 한 부분이 되어 자기를 희생하고 헌신해야 하는 일.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누가 이 소명을 가혹하다 하지 않겠는가. 그 소명의 수행이란 자기를 제약해야 가능한 일이다. 무엇에 묶여 있으면서 무슨 용도가 될 수 있겠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답답하며 무기력해 진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의식적으로 천명을 되뇌지 않으려고 한다. 속박의 상태에서는 주어진 길을 걸어가더라도 수동적이며 소극적일 것이기에. 생명운동이나 생명활동에서 능동성을 뺀다면 살아간다 할 수 없을 것이므로. 

우리가 세상에 나아가 역동적으로 살되 가끔은 자기도 모르게 중심 깊은 곳에서 나를 비추는 천품을 닦는 이유다. 자유로운 우리는 방종하기 쉽고 탐욕의 질곡에 사로잡힐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안다. 자기 내부의 거울 덕이다.

천품은 멈춰선 나 앞에 불현듯 나툰다. 우리가 그것을 감지하는 오감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월 초 하루 같은 때에 때때로 다가가 천품을 닦은 덕이다. 그런 맥락에서 천품은 우리 정신의 부교감신경이다.

그것은 우리가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작동한다. 절망적인 상태에서 비루하기 짝이 없을 때, 혹은 쾌락을 누리던 끝에 무미건조한 상태에 떨어졌을 때, 우리는 천품이 이끄는 대로 반응하며 저도 모르게 길에서 벗어난 나를 돌려세운다.

아마도 우리는 그 천품의 메커니즘이 고장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한 쪽으로 경도된 나머지 자율정신계의 힘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다. 자기 제어 기능이 상실되면, 변별력이나 방향감각도 함께 사라져 버린다.

공동체를 이루는 보통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긴장은 그 정도다. 망중한 속에서 자기를 가끔 점검한다면 자기를 잃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공직에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공직자의 일상이란 보통사람들 다수에게 직접적이고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공직자에게 소명에의 속박이 요구되는 이유다. 동시에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시민들의 더 나은 삶에 기여하는 보람에서 자기 삶의 동력을 얻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 자기 희생과 헌신 없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렇다고 성직자적인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원칙을 지키는 정도면 된다. 직무를 수행함에 개인적 자유를 제한하고 섬기는 마음을 견지하면 원칙은 저절로 지켜진다. 우리가 두 발로 길 위에 서서 균형을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익산시 일부 공무원들은 자신들만의 길을 걸었다. 익산시민들은 현재 진행형의 환경재앙을 목전에 두고 있다. 환경업자들에게 친절한 공무원들 덕택으로 1급 발암물질을 함유한 지정폐기물 7만4천여 톤이 낭산소재 폐석산에 묻혔다. 이것은 우기에는 넘쳐서 하천으로 흘러들고, 시시각각 지하수로 스며들고 있다.

그러나 속수무책이다. 공무원들의 직무유기에 힘입어 업자들은 살이 쪘지만 배설물만 남았고, 익산시의 입장에서는 천문학적인 원상복구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속수무책이다. 공무원들은 심지어 폐석산 주변 하천에서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해도 모른척 했다.

전북도의원의 수질검사 의뢰에 따라 발암물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된 시험성적서가 나왔지만 2년 동안 그 사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타 지역에서 반입되는 지정폐기물 매립에 대해 조치를 취하기는 커녕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익산시 환경부서 부서장은, 중앙환경사범수사단이 수사결과를 발표했을 때 환경부에 책임을 전가하고, 생판 모르는 일이라고 오리발을 내미는 등 거짓말을 일삼았다. 또, 막대한 양의 독극물이 폐석산에 묻히게 된 것은, 익산시가 채석량 보다 곱절이나 많은 산지복구재 반입을 허가해줬기 때문이다.

당초에는 흙으로 복구하도록 허가를 내줬지만, 흙과 재활용폐기물을 5대 5로 혼합해 복구할 수 있도록 변경승인해 주고, 수 차례 복구물량 변경승인을 해줌으로써 당초 승인물량 보다 3배나 많은 폐기물 반입을 허용해 준 꼴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해당 폐석산에 무엇이 묻히는지 일체의 점검도 하지 않았다.

가히 복마전이다. 국민들이 혈세로 마귀들을 키운 것이다. 사람의 길에서 멀어지고, 공직자의 길을 벗어난 탓이다. 정유년 초입을 가로막은 패악이다. 그 일소가 새출발의 첫 발이 될 것이다. 그와 함께 익산시는 스스로에게 공직자의 길을 다시 물어보아야 하는 기로에 섰다.

철두철미한 업무연찬으로 원칙을 확고히 하는 것도 중요하거니와, 그것을 실천할 주체로서의 도덕성 함양이 선행되어야 한다. 길을 닦는 첩경은 무엇보다 교육이다. 올해에는 익산시에 만연한 무소신, 무책임, 무사명 등 3무(無)를 실효적으로 척결하는 원년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