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권력 분산'이라는 무장해제를 이행하면서, 과연 경제민주화를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까. 사드 배치로 그 수완이 입증된 안보장사 좌판을 철거는 할 수는 있을까. 막말의 아이콘을 지지하는 수구세력의 폭거들을 제어할 수는 있을까.

이 숨막히고 가망없는 정치적 생태계에서 혁신과 개혁은 파종될 수나 있을까?

불안, 그것은 대의민주주의가 낳은 것이었다. 대해를 가로질러 희망으로 향하는 배에 승선했더니 갈지자로 향해하다가 항로를 벗어나 암초밭으로 이끈 대표였다. 배 안에서는 자신의 허물을 가리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대통령발 부당행위와 권한남용과 불성실과 무책임과 억압이 만연하여 비루한 나라였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시민들이 만든 기회다. 엄동설한에 광장(바다)으로 뛰어들어 배를 암초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수천만 촛불을 치켜들어 그릇된 대표를 끌어내렸다. 촛불 아래 혹한을 견뎌낸 대가였다. 이제 새로운 대표는 표류하는 배를 이끌어 시민들이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야 한다.

하지만 정권교체를 이루어 낸 시민혁명은 더 나은 내일을 보상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살아보지 못했다. 돌아보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진보와 퇴보를 반복해왔다. 한 발짝 나아갔다 싶으면 서너 발짝 씩 뒤로 물러났다.

권부는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공권력은 가일층 인권을 유린하며, 빈부격차와 불평등의 심화는 급진전되고 있다. 이것은 편의주의와 안정 볼모주의, 효율만을 중시하는 무책임의 폐단이다. 그 근저에는 경쟁일변도의 신자유주의가 있고,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정부의 적자라는 점에서 한편으로 안도되는 바가 있기는 하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그의 재임기간 동안 어느 정도 진일보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알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사사건건 진영논리와 당리당략에 부딪힐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겪었고, 문재인 본인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가 '통합'을 주창했고, 그것은 지난 대선의 중심을 관통했다. 그는 또 국민의 뜻을 받들어 당선 직후 곧바로 분명한 통합의 행보를 보여줬다.

안으로는 민주당 내 비문 계파의 중진을 국무총리에 임명해 흩어진 호남민심을 아우르고, 밖으로는 당선 직후 야당 대표들과 국회 원내대표들을 지체없이 만나 소통하며 사분오열된 국론 봉합에 나섰다. 그러나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그의 노력은 얼마나 빛을 볼 수 있을까.

국민들이 갈망하는 민주주의는 '문재인'으로 집약됐지만, 이 나라의 국회에는 '색깔론'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길잡이가 엄존한다. 선민의식에 들떠 국민들을 깔보며 일방통행하는 인기영합주의의 수구세력이 정계의 한 축을 장악하고 있다.

박근혜의 몰락은 '반민주주의'의 종언을 상징하건만, 박근혜를 추종하던 세력은 여전히 박근혜의 노선을 지지한다. 대선 투표자 중 24.3%는 새시대를 거부하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점유하는 국회의석은 무려 107석에 달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일성이 '통합'과 '소통'이지만, 정치적 지형은 그에게 녹록지 않다. 게다가 수구세력과 기득권의 스크럼은 강고하다. 19대 정부의 최대과제인 '경제민주화'로 가는 길도 험난하다. 게다가 이해에 따라 표변하는 언론 지형은 참여정부 시절보다 더 복잡다단해졌다.

대선 과몰입 증후군에서 막 벗어나는가 했는데, 축배를 들기도 전에 우리는 사면초가의 새 정부를 맞닥뜨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을 나눔'으로써 국면을 돌파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취임사에서 밝혔거니와 권력 분점은 통합의 길로 가는 유일한 출구다.

그것은 또, 진정한 민주주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독점구조는 오랜 세월 동안 구축되어 왔다. 체제의 상식이 되었고, 그 상식을 등에 업은 광기들에 의해 수호되어 왔다. 그들이 독점구조를 지킬 땐 평화를 가장할 수 있었지만, 타파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

그러나 '권력 분산'이라는 무장해제를 이행하면서, 과연 경제민주화를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까. 사드 배치로 그 수완이 입증된 안보장사 좌판을 철거는 할 수는 있을까. 막말의 아이콘을 지지하는 수구세력의 폭거들을 제어할 수는 있을까.

이 숨막히고 가망없는 정치적 생태계에서 혁신과 개혁은 파종될 수나 있을까? 문재인은 시민을 민주주의의 중심에 서게 할 수 있는 믿을만한 유일한 대안이기는 했으나, 우리는 어쩌면 또 정치인 문재인에게 배신당할지도 모른다.

그는 협상과 타협을 내세우며 변명하리라. 형편상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리라. 그럴 공산이 크다. 10년을 퇴행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적은 게릴라 정도가 아니라 전면전을 끊임없이 벌일 것이다. 반 민주주의는 선의를 선의로 받는 것이 아니라, 선의를 약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촛불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다. 지지하는 후보를 향해 불태웠던 열정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후보와 함께 울고 웃고, 후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피하고, 후보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우울감이 생기던, 오롯이 한 정치인에게 올인하던 마음을 아직 내려놓을 수가 없다.

주권행사란 선택 하나가 전부이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은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 되기 위해선 '선택'에 모든 걸 미루면 안 된다고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가야 할 형편이다.

영속이란 '함께'의 꽃이 피어날 광화문 광장

사람을 향하던 열정을 제도와 법을 고치는 동력으로 환치시켜야 한다. 우리가 선택한 대안이 우리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도록 우리는 협력하고 추동해 나가야 한다. 시대적 상황이며 이 시대의 정신이다. 피로하지만, 우리는 새 대통령이 지속적이고 연속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격려하고 고무해 나가야 한다.

더 나은 민주주의는 결국, '선택'으로 주권행사를 다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하는 환경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을 수동적인 태도로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학습해 왔다. 새 정부는 고민과 끈기로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갈 수밖에 없고, 민주주의는 또 대립과 갈등의 망망대해에서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미완의 민주주의는 훼손되기 쉽고, 왜곡되기도 쉽다. 시민의 시간은 다시 시작됐다. 우리는 이 봄에 광화문의 주권의식으로 함께 파종하고, 가꾸며 구악을 청산해 새로운 시작을 촉발한 에너지를 영구적인 에너지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광화문 광장은 시민들의 민주의식을 무르익게하고 꽃을 피우게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진보는 한 정치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의 문제다. 선택에 따른 권력 위임이 주권 행사의 전부라고 여기는 구습으로부터 시민이 먼저 벗어나야 하는 이유다.

정당주의가 최선을 구가하지 못하는 오늘, 이해당사자들에게 정치권의 개혁을 맡길 수는 없다. 우리의 무뎌지지 않는 선택과 참여의 지속성만이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이 나라에 살기에 피곤한 시민이다. 그러나 시민이 활동을 멈추면 민주화도 멈춰선다.

시민은 광화문 광장이라는 공공의 공간을 만들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토론과 참여를 통해 우리의 생활 방식과 일상의 삶에 관여해야 한다. 그렇게 확대된 민주주의의 저변에선 혁신의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그 꽃은 또 사회 안에 있는 가치와 이익을 응집시키는 확신의 꽃들을 피워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