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과 부패는 쉽고 편한 길이다. 비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행정권력이나 경제권력의 나팔수가 된다면 언론의 본령 따위는 불필요한 짐이 될 뿐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언론사의 공공성을 위해 중립적이고 공공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지배구조를 갖추기란 실로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나는 신문이 없는 정부보다 정부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 한 말이다. 언론의 필요성과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인데, 동시에 그의 언론관이 잘 드러난다. 권력자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명제가 거기에 깃들어 있다.

행정권력과 언론은 서로 작동원리나 기능은 다르지만 같은 목적을 지향한다. 하지만 현장을 보는 태도는 현저히 다르다. 언론은 현장을 응시하지만, 행정은 가급적 적정한 거리를 두려는 관성을 지녔다. 언론이 함께 사는 가치를 추구하는 반면, 행정은 관리하고 통제하는 규정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응시는 공감과 고민을 소환하고 더 나은 현장으로의 이동을 꿈꾸게 한다. 하지만 규정은 선을 긋고 배제하며 주어진 조건에서만 현장의 개선을 허용한다. 토마스 제퍼슨이 정부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한 것은 바로 그 태도 때문일 것이다.

언론의 자발적 적극성은 문제의 본질과 진실에 접근하는 것을 멈추지 않지만, 행정의 소극성은 문제를 봉합하고 표면적인 편안에 안주한다. 그 폐쇄성의 근저에는 규정을 넘어설 때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부담이 깔려 있다. 굳이 문제의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서 직격탄이든 유탄이든 맞을 이유가 없다는 의식이 행정조직을 지배하는 것이다.

냉혹한 집단이라고 비난받는 이유다. 부패를 경계해야 할 입장, 혹은 오해 받을 일을 사서 할 필요가 없는 입장은 안정성을 구실삼아 복지부동(伏地不動)한다. 아이러니 한 일이다. 행정조직이 내세우는 도덕성은 그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전제할 때 오히려 부도덕한 행태로 비쳐진다.

토마스 제퍼슨이 신문이 없는 정부란 생각할 수 없다고 한 배경이다. 2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의 말이 퇴색됨이 없이 귀한 것은 '행정권력과 언론의 건강한 긴장관계'의 중요성을 설파한 점이다.

그렇다면 토마스 제퍼슨이 인정하는 언론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이 소통신문의 구성원들이 지령 400호에 던지는 질문이다. 언론의 조건은 삼척동자도 안다. 하지만 이 시대, 언론은 넘쳐나고 진짜와 사이비의 경계조차 모호해졌다. 시민들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언론의 근간을 흔드는 역행이라면, 허위 보도로 진실을 호도하여 시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공기(公器)여야 할 언론이 흉기(凶器)가 되어 국민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무늬만 언론인 사회악이 지천에 널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부적절한 언론은 특히, 정상적인 언론에 피해를 안겨준다. 흉기에 당해 온 시민들의 학습효과는 언론집단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갈수록 척박해지는 언론 환경이 그걸 방증한다. 공공성과 기업성을 동시에 실현하려는 언론에게는 실로 가시밭길이 아닐 수 없다.

안팎의 장애를 넘지 못하는 언론은 상시적인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정치적인 도구가 되고, 특정 이권의 옹호를 전제로 기사를 거래하는 등의 일탈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것이다. 흉기 언론은 이렇듯 건강한 언론에게 크나큰 장애가 된다.

퇴행과 부패는 쉽고 편한 길이다. 비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행정권력이나 경제권력의 나팔수가 된다면 언론의 본령 따위는 불필요한 짐이 될 뿐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언론사의 공공성을 위해 중립적이고 공공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지배구조를 갖추기란 실로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곡필(曲筆)이 잘 팔리는 때에 행정권력이나 경제권력으로부터 배척되고 시민들조차 사주지 않는 정론(正論)의 길은 또 얼마나 험난한가. 비상한 의지와 용기가 없다면 결코 갈 수 없는 외롭고 배고픈 길이다.

게다가 소통신문의 지난 8년은 부적절한 언론관을 지닌 권력자들의 횡포에 맞선 수난사로 점철되었다. 그러나 소통신문은 권력에 굴종하지 않았다. 행정권력은 굽어보며 "왜 소통만 언론인 것처럼 유별나게 구느냐"고 물었다. 어떤 언론인은 거기에 박자를 맞추며 "매일 매일 특종을 써야만 언론이냐"고 비아냥거렸다.

또 혹자는 "누군 할 줄 몰라서 안 하느냐"고 거들먹거렸다. 하지만 그들이 모를 리 없다. 기자는 끊임없이 현장을 누벼야 한다. 기자의 치열한 고민은 더 나은 내일의 해법을 밝히고 세상을 밝히는 횃불이 된다. 언론이 시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킨다는 것은,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하여 현실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깨달음이 있으면 행동하게 된다. 행동하는 자 만이 누군가를 행동하게 만들 수 있고 변화를 이끌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대답할 수 있다. 시민을 깨달음에 이르게 할 특종을 찾아다니는 기자정신은 살아있는 언론의 표상이다. 그것은 보도자료나 받아쓰고 적당히 대접받으며 사는 가축화 된 기자로선 이해할 수 없는 경지다.

그리고 그들은 할 줄 몰라서 못하는 거다. 눈이 있으나 공공성과 객관성을 담보하는 관점이 없고, 발이 있으나 퇴화되었으며, 생각은 우물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기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상식이다.

그런데 그 상식을 지켜나가는 것을 비웃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여기는 상당수 언론과 언론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소통신문을 고립시키고 고사시키도록 권력자를 부추겼다. 그런 악의를 단순히 기득권 세력의 횡포로만 볼 수 없다.

더 많은 건강한 관점을 위해

자신들의 실체가 소통신문을 통해 투영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발로라고 봐야 적실할 것이다. 단적으로 그들은 수요자인 시민들로부터 고립되고 고사되지 않기 위해 그들의 방식으로 제거 작전을 펼쳤다. 소통신문은 그런 고립무원 속에서 자기를 극복해야 했다.

지령 400호에 이르기까지 소통신문이 축적해 온 것은 인내와 백절불굴의 의지다. 좁은 지역사회 안에서 불편부당(不偏不黨)과 정론직필(正論直筆)을 견지해 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언론의 덕목이다. 동시에 소통신문이 얻은 것은 독자들의 흔들림 없는 신뢰일 것이다.

500호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오늘,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목표 하나를 더 설정한다. 그것은 '지역 언론계의 일신에 기여하기'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통해 공정성을 담보하는 건강한 경쟁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힘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바른 언론이 무의미한 곳에 힘을 낭비하거나 시달리지 않게 하는 길이다. 눈에 보이는 사실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찾고 그 의미를 재조명하는 언론과 기자의 사명을 모든 지역언론이 함께 추구하는 시스템 활착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그 토대 위에서 슈람(Schramm,W.)이 말하는 언론의 목적과 기능이 잘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언론이 주위환경에 대한 지식을 공유화하는 기능을 하며, 새로운 사회 성원으로 하여금 주어진 구실을 하고 규범과 관습을 배우도록 그들을 사회화 한다고 했다.

또 사회 성원들에게 즐거움을 주어 불만을 해소시키고 예술적 형식을 창조하게 하며, 정책에 대한 합의를 성취시키고 동료 및 추종자를 설득하여 의도한 방향으로 인간의 행동을 유도한다고 했다. 그 상호작용을 이룩하는 수단으로서 언론, 사회과정의 현실적인 이음줄로서 언론이 많아져야 지역사회의 변혁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