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 이유를 시민들이 납득할 수 없을 때, 그 소환은 사법권의 남용으로 간주되고, 다른 특정한 목적이 있는 행위로 의심받게 된다.

함께 살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데, 행동을 삼가는 이유는 사뭇 다르다. 우리 어른들은 스스로 떳떳하기 위해 행동을 삼가고 형식적으로도 그걸 뒷받침하려고 했지만, 요샛날은 법이 허용하지 않는 행동을 삼가되 법의 가시권 밖에서는 수치심을 벗어던져버리는 경향성이 뚜렷하다.

그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거니와 예와 지금의 차이는 길 위에서도 확연하다. 내가 어릴적에 살던 산촌에는 마을과 어귀 사이에 밭이 있었다. 마을에서 신작로로 진입하는 어귀까지는 밭을 제법 곧게 가로지른 400m 가량의 길이 연결했다.

신작로로 나가는 다른 길이 있긴 했는데, 계곡을 낀 좁은 산길을 따라 2km를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마을 어른들은 곧고 빠른 길을 늦가을에서 초봄까지만 이용하셨다. 그 길 양 옆은 봄에는 참외밭이 되고 여름에는 수박밭이 되었는데, 마을 어른들 어느 누구도 참외와 수박이 익어가는 계절엔 그 길 근처를 얼씬도 하지 않으셨다.

운송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절, 어른들은 자신의 키보다 높은 등짐을 지고 한 여름에 맞서셨다. 무한 계체량의 길과 씨름하며 비오듯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도 당당했던 그분들의 표정에는 자신이 오해받지 않을 곳에 있다는 안도감이 넘쳐났다.

한편으론 미련한 일이긴 하나, 어른들의 그런 행동은 성장기의 우리들에게 최소한 두 가지를 일깨웠다. 오해받을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지혜와, 같은 마을에서 누군가는 가해자가 되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는 분쟁의 소지를 만들지 않는 공동체의 가치였다.

그러한 '배려'가 공동체를 이루는 날줄이라는 견지에서, 그 씨줄인 '상호 존중' 정신이 일상에 녹아있던 그 시절이 그리운 오늘이다.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지속되는 세상을 꿈꾸고, 편안한 상태를 깨트리지 않으려는 마음이 오늘 우리의 길 위에는 얼마나 나와 있을까.

무단횡단을 하고 불법유턴을 하며 단속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과속을 하는 길 위에 우리는 노출되어 있다. '나' 위주의 길 위에는 불안이 팽배하다. 우리가 이 광포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야만의 삶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법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는 것 뿐이다.

우리는 진화를 거듭했지만, 상생의 본성은 퇴화했다. 힘이 있어야 도발을 억지할 수 있고, 범죄를 엄단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만 안심할 수 있다. 우리 공동체의 벼리는 이제 '법'이다. 마음이 아니라 형식적인 관계가 알기 쉽고 편한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전적으로 의존하는 법과 법을 집행하는 주체들에 대한 요구와 기대도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법을 집행하는 이들의 수준은 우리 기본권의 현주소를 가늠할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인권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냐는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법을 집행하는 절차의 지표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치안이란 사회공동체의 안전을 다스리는 것이니, 우리 어른들이 일상에서 실천했던 '존중'과 '배려'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데 근래의 전북도경은 그 기본과 동떨어진 행태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익산시장을 소환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왜 그런지는 밝힐 수 없다고 한다.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은 불법(형법 제126조)이니 전북도경의 행태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익산시장은 31만 시민을 대표하는 공인이다. 경찰이 시장을 소환한다는데, 시민들은 그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전북도경은 익산시민들의 알권리를 침해했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익산시장의 혐의사실에 대해 전북도경이 하지도 않은 말을 인용하는 것인 양 허위 보도하는 일부 언론에 대한 전북도경의 태도다.

보도 내용의 골자는, 경찰이 골재채취업자로부터 뇌물을 받고 공문서를 위조한 혐의로 익산시 A국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이 뇌물이 장학금 명목으로 윗선에 흘러들어갔을 의혹에 대해 경찰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를 좀 더 살펴보면, A국장은 채석중지처분 취소를 빌미로 골재채취업자에게 익산시 장학재단에 장학금을 내도록 압력을 행사했는데, 경찰은 이 돈이 윗선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 기사에서 적시한 '윗선'은 익산시장을 지칭한 것이란 것은 나흘 후의 후속 보도에 나타난다. 전북도경은 장학금 강제 모금 의혹을 받고 있는 익산시장을 조만간 소환할 예정인데, 경찰은 A국장이 골재채취업자에게 장학금 명목으로 천만 원을 받아 익산시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북도경은 위 기사에서 경찰발로 적고 있는 모든 말들은 전북도경에서 한 말이 아니라 기자가 임의로 작성한 것이라고 밝힌다. 한마디로 허위 날조 보도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북도경은 위와 같은 내용의 기사를 보도한 해당 언론사들에 경고조차 하지 않고 있다.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이다. 일부 언론들이 없는 말을 만들어서 익산지역 공동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데,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익산시장을 소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공표함으로써 기자의 소설인지 악의적인 목적을 가진 특정인의 말인지 알 수 없는 보도내용에 신빙성을 실어주고 있다.

정작 경찰은 피의사실을 공표하지 않았는데 공표한 꼴이 되었고, 익산시민들 상당수는 그것이 진실인 것으로 믿고있다.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해 경찰은 최소한 '미필적 고의' 책임을 벗어나기 어렵게 되었다. 경직 된 관점으로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그렇다는 것이다.

오해받을 길을 더 이상 가지 마라

사실, 이와 같은 국면에서 경찰은 익산시장을 왜 소환조사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익산시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익산시장은 이미 장학금 모금을 빌미로 뇌물을 받은 부정한 윗선으로 의심을 받고 있다. 나중에 결론이 '혐의없음'에 이르더라도 유린된 인권과 명예 훼손의 회복은 난망한 지경이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알려진 피의사실은 "골재채취업자가 A국장에게 뇌물 1천만원을 건넸다"가 전부다.

하지만 A국장이 뇌물을 받았다고 시인했는지, 또 A국장이 뇌물을 받아서 익산시장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는 경찰만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골재채취업자의 말일 뿐이라면, 같은 혐의로 익산시장을 소환하는 것은 경찰사무 규범에도 위배되고 무리한 수사라는 지탄을 면키 어렵다. 설령 A국장이 뇌물을 받은 것을 시인했더라도 마찬가지다. A국장이 뇌물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장학금을 운운했다는 이유가 익산사랑 장학재단의 이사장인 익산시장을 소환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A국장이 뇌물을 받아 전부 또는 일부를 익산시장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이 있더라도, 언제·어디서·어떤 방식인지가 입증되었을 때 소환해야 온당하다. 어떤 경우에도 경찰은 왜 익산시장을 소환하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소환 이유를 시민들이 납득할 수 없을 때, 그 소환은 사법권의 남용으로 간주되고, 다른 특정한 목적이 있는 행위로 의심받게 된다. 절대로 그럴리는 없다고 생각되지만, 지난 23일 전북청으로 발령난 익산경찰서장의 지방선거(익산시장) 출마설이 나돌았고, A국장 수사가 지지부진 6개월 가량을 끄는 등 장기화 되면서, 경찰이 익산시장을 흔들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커졌다.

그동안 수사와 관련해 익산시장을 겨냥한 온갖 억측들이 난무했고, 그 밖에도 현 익산시장의 재임기간 중 전례없는 경찰의 익산시에 대한 내사와 자료요구 등이 계속되어 온 점 등은 경찰의 저의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한 논거가 되고 있다.

대부분이 유야무야 끝났지만, 1년 여 동안 공식적인 수사가 아닌 내사를 하면서 30여차례나 자료를 요구한 경찰을 보면서 익산시민들이 불안해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하는 말이다. 오해받을 길은 가지 않았던 어른들을 한 번쯤은 되돌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