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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호 소비를 원한다면 먼저 대기업에 갇힌 돈을 풀게 하라

편집국장 공인배

기업이 옷을 벗기를 바라면서 강풍이 웬말인가. 아무리 봐도 순서가 바뀌었다. 대기업군의 사내유보금(이익·자본 잉여금)은 지난해 말 기준 754조원에 달한다. 최근 10년만에 세배나 증가했다. 이유는 딱 한가지다. 투자할 곳이 없어서다.

최저임금이 내년부터 16.4% 인상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올해 6,470원 보다 1,060원이 더 오른 7,530원을 최저임금으로 결정했다. 전례없는 파격적인 인상액이다. 경제협력개발국(OECD) 회원국 가운데 인상율로 보면 1위를 차지하고, 순위로 보면 올해 5위에서 내년에는 3위에 랭크된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을 본격화하는 신호탄이다. 급등한 최저임금이 소득증대와 내수활성화로 이어져 경제를 성장시키고 양극화를 완화하는데 기여할 것이라며 기대를 모은다. 대통령이 공약을 흔들림없이 이행한다는 측면에서도 환호를 부른다.

근로자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근시안적인 사고의 발로'라는 목소리도 못지 않다. 정책 의도와는 달리 일자리 감소나 양극화 심화 같은 역작용이 오히려 클 것이라는 우려에서 비롯한다.

초고율 최저임금 인상은 소상공인과 영세기업에 막대한 타격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그 부담을 완화해주기 위해 각종 지원정책을 준비하고 있으나, 재정여건상 부분적인데다 단기적 처방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전체 근로자의 23.6%인 463만명이 최저임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머지않아 일부 근로자들이 실업자로 전락할 공산이 높다. 급격한 인건비 인상 부담은 사용자로 하여금 단순·저숙련 일자리를 자르는 칼을 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 근로자를 기계로 대체하는 현장을 우리는 보다 빈번하게 목격하게 될 것이다.

노동의 가격이 비싸지면 사용자가 노동을 대체할, 장기적으로 값싼 기계장치에 자본 투입을 늘리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하는 현장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목도해 왔다. 그렇다고 초고율 최저임금 인상이 우리 노동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데 기여하는 것도 아니다.

그 산출식을 나열할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는 2000년 이후 최저임금이 연평균 8.7%씩 상승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임금격차는 여전히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하위층 평균소득 대비 최상위층 평균 소득 배율은 4.70에 달했다.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도 최근까지 계속 확대됐다. 상용근로자 10~29인 중소기업 임금대비 500인 이상 대기업의 임금 수준은 1993년 130.2%에서 2014년 194.0%로 높아졌다. 노동시장의 과실이 지속해서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상위 10% 계층에 집중돼 최저임금 인상이나 사회보장 지출 확대의 효과가 상쇄됐다는 얘기다.

이같이, 초고율 최저임금 인상은 그동안 노동자들이 요구해 온 정상적인 소득분배에 부응하고는 있지만, 실업자를 늘리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란 우려를 불식시키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2022년까지 81만개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새로 만드는 등 일자리 정책에 비중을 두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일자리 창출은 기본적으로 노동시장에 맡겨야 한다. 향후 발생하는 모든 실업자들을 공공부문에 수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소득자들에 대한 증세로 노동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복지 정책은 펼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

노동하는 사람보다 노동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고, 일하지 않는 사람을 노동하는 사람만큼 지원한다면, 역차별에 따른 불만족이 팽배해진다. 덩달아 노동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사회 전반이 무기력증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유럽 여러나라들이 그걸 방증하고 있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의 '사람중심 경제'는 가계를 성장의 주체로 인식한 발로인데, 최저임금 시급을 초고율로 높이고 실업자는 부자 증세를 통해 구제한다면, 과연 그것이 낙수효과에 기댔던 대기업 중심의 성장우선주의와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기업들의 일자리를 줄이는 역선택에 직면하고, 고용없는 투자를 부추기면서, 각 가계의 소비를 늘려 그동안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내수를 살리겠는 이른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과연 옳은 방향성일까.

물론,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과 동시에 주거비·의료비·교통비·통신비·교육비 등 핵심생계비 경감을 통해 가계의 소비를 유도하겠다는 것이지만, 노동자의 실질소득이 늘어나는 대신 노동자들의 수가 줄어 전체의 소비규모가 기존과 다를 바 없거나 오히려 줄어든다면, 제도루묵이가 되고 말 것이다.

특히, 그나마 소득주도성장은 각 가계의 소비가 늘어나야 가능한 것인데, 가계 소비란 돈을 조금 더 많이 가진다고 활발해지거나 덜 가졌다고 둔화되는 것이 아니다. 소비는 의식의 문제다. 우리는 아주 장기간 경기불황에 노출됐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N포세대 층도 두터워졌다.

경색된 소비심란 톱니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바짝 말라비틀어진 때죽나무와 같다. 게다가 개인차를 간과하면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초고율 최저임금 인상은 단지 취약계층의 소득을 늘리는 것일 뿐 아무것도 담보하지 못하는 정책인 것이다.

초고율 최저임금 인상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그 역작용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하되, 그에 따른 지속가능성도 담보할 수 없다. 사실, 초고율 최저임금 인상이 선순환구조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현실적인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 환상에 불과하다.

장기 불황에 노출, 임금 인상만으론 불안 불식 못해

정부는 3조원 이상을 들여 최저임금 인상분 일부를 직접 지원하면서도, 구조조정 도미노와 제조업의 장치산업 러시, 서비스업 전 분야의 무인화 시스템 확산,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자들의 도산 속출 같은 부작용을 목도하게 될 공산이 높다.

아무래도 급진적인 경제 패러다임 수정 정책은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것 처럼 보인다. 그 정책을 압축하면, '전체적인 일자리의 숫자는 늘리고 노동시간과 비정규직은 크게 줄여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용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인데, 노동자의 권익보호에 과도하게 경도된 나머지 노동현장의 문제를 간과한 것이다

결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임금격차를 줄이는 등 우리 경제의 구조적 결함을 바로잡는 대책이 병행되지 않으면, 이번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득보다 실이 큰 정책으로 전락하고, 그 혼란에 따른 후폭풍을 손도 써보지도 못한 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 것이다.

정작 선행됐어야 했던 것은 자산 상위 30대 그룹 소속 178개 상장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풀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생산기반에 투자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지금 정부의 행태와 같은 급진적이며 일방적인 압박으로는 그런 투자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문재인은 북한에 조차 햇볕정책을 펼친 참여정부의 핵심이었다.

기업들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신산업 진출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기업의 속성은 이윤추구다. 국민복지를 내세우며 곳간을 열라하면 오히려 더 꽁꽁 걸어잠글 뿐이다. 우리 경제의 침체 원인은 하나로 귀결된다.

악성빈혈이다. 돈이 돌지 않는 것이다. 부동산에 묶이고, 기업의 통장에 갇히는 것이다. 미래가 불투명하면 소비가 위축되는 것이다. 내일을 위해 오늘 덜 쓰고 저축하는 풍조가 형성된 이유다. 임금이 오르면 저축이 줄어들까. 아니다. 정부의 부양책이 한계를 지녔기에 미래는 더 불안하다.

누가 돈을 더 쓰겠는가. 경기불황은 가속화되는데 그에 따른 선행 의제를 뒤로하고 복지를 앞세우니 포퓰리즘으로 오인받는 것이다. 왜 진정성을 몰라주냐며 가슴을 칠 것인가. 보다 더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을 먼저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대한민국의 당면 과제는 소비다. 기업이 돈을 쓰고 국민이 돈을 써야 한다. 소비는 자본주의의 가장 큰 덕목이다.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소비하면서, 내일도 소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지금 대한민국에 절실한 것이다.

그러자면 우리의 경제를 불황의 늪에서 먼저 건져내야 한다. 그 가장 효과적인 처방은 제조업의 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기업이 돈을 풀어 노동기반을 만들고 거기에서 일할 사람들을 고용하도록 훈풍을 불어넣어야 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원할 때 일을 할 수 있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돈을 구할 수 있다고 믿어야 소비가 활성화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