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또한 건축심의위원회란 동네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해당 건축물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심의하기 위해 구성된다는 점, 그래서 저마다 각 관련 분야에서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로 심의위가 구성된다는 점, 비전문가인 해당 시의원이야 말로 전문성에 토를 달 입장이 아니고 정확한 동네 여론을 전달하는 것이 주어진 몫이라고 설명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위원장은 심의가 당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각 전문가들의 자유로운 토론을 보장하고 발언 방해를 통제하며 다양한 문제제기와 해법 제안을 이끌어냈어야 했다.

정치인의 행보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균형이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지라도 선출된 정치인은 대표성을 갖게 되고, 그 대표성은 매 사안마다 지역공동체의 상대 다수 구성원들이 바라는 바대로 행사될 때 영향력을 갖게 된다.

만약 정치인이, 찬성과 반대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 의견들의 교집합 위에서 더 큰 목소리를 듣지 않고 불합리한 소수의 목소리 혹은 이해관계자의 목적에 경도되어 대표성을 행사한다면, 공동체는 갈등과 반목으로 혼란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상식이다. 정치인의 균형은 곧 공신력이다. 균형의 기준은 한사코 주민들의 뜻으로 삼아야 한다. 무릇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고민해야 할 명제다. 이 같은 정치인의 본령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그는 정치를 하기 위해 선출된 것이 아니다.

나아가 자신과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안을 판단하고 방향을 결정하는 정상배(政商輩)의 전형일 따름이다. 결코 정치인일 수 없다.

그리고 사적인 토대 위에서 주장하는 정치인의 의견엔 대표성이 없다. 공동체의 정신에 반하기에 반드시 척결되어야 할 악일뿐이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이런 정치의 기본을 반추케 하는 일이 익산에서 벌어졌다.

한 부동산 업자가 부송동에 건축을 추진하는 초고층주상복합아파트를 둘러싸고 반대 여론이 확산됐는데, 해당 지역을 본거지로 둔 익산시의원이 적극적으로 찬성 입장을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우선 공청회장에서 반대의견을 낸 주민에게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 이게(초고층주상복합아파트) 들어오면 땅값이 오르는 효과가 있다"며 주민의 주장을 힐난했다. 주민들의 찬반의견을 듣고 지역의 입장을 정리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는 공청회와는 상관없이 뚜렷한 찬성 의견을 세우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반대 의견을 제시한 주민에게 '알지도 못하면서 뭘 아는 채 하느냐'는 식으로 면박 주기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행태에서는 그가 정치인이라는 점을 발견할 수 없다.

그가 공청회장에서 주민의 의견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순간, 그는 익산시의원 배지를 내팽개친 꼴이며, 이미 대표성을 상실했다.

더구나 그는 예의 초고층주상복합아파트 건축심의위원회의 위원이다. 앞선 1차 심의에 참석한 바가 있고, 공청회 다음날 있을 2차 심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의 태도에서는 2차 심의에서 그가 찬성 입장을 낼 것임이 분명해 보이고, 어떻게든 초고층주상복합아파트 건립이 심의위에서 통과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마저 엿보인다.

그는 자신의 방향성을 결정할 여론 수렴의 현장에 있었지만 자신의 대표성에 공신력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이익에 혈안이 되어 반대 의견에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초고층주상복합아파트는 지금의 무왕로변 백제웨딩홀 자리에 추진되고 있는데, 서쪽으로 5백여 미터 안의 무왕로변에 그가 소유한 고층건물이 서있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대로 초고층주상복합아파트로 인해 주변의 땅값이 오른다면 그는 직접적인 수혜자인 것이다.

게다가 이날 공청회는 반대 의견이 찬성 의견을 압도했다. 반대 의견은 주로 교통량 집중에 따른 우려에서 비롯했다. 건물 신축 예정부지 주변은 지금도 심각한 교통체증과 주차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경관문제나 위화감 문제도 제기됐다.

따라서 그는 다음날 열린 초고층주상복합아파트 건축심의에서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피력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전날 예고됐던 바와 같이 그는 반대로 적극적인 찬성 입장을 표명했을 뿐만 아니라, 반대 입장을 제기하는 도시계획 전문가의 입을 강하게 막고 나섰다.

익산지역 내 대학의 현직 교수인 전문가는 교통 혼잡 등을 우려하며 반대 의견을 냈는데, 해당 지역을 본거지로 둔 익산시의원은 '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느냐'는 식으로 몰아붙이며, "익산지역에서 살지도 않으면서 왜 반대를 하느냐, 익산시에 살지도 않는 사람이 심의위원으로 들어와도 되는 거냐"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고성이 오갔고 건축심의장은 어수선해졌다. 위원장인 익산시 부시장은 표결에 부쳤고, 건물 신축계획은 9대 4로 심의위를 통과했다. 조건부 승인이었지만, 출입구 높이 등 사소한 편의에 대한 것들의 보완을 요구했을 뿐, 정작 논란이 됐던 교통 혼잡이나 주차대란 같은 문제는 허가 검토 조건에서 제외됐다.

해당 시의원이 위력으로 심의 과정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전문가의 업무를 방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전문가에게 위력을 행사함으로써 전체 위원들의 입을 틀어막아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보는데 무리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익산시의회를 대표하고 자신이 본거지로 삼고 있는 지역을 대표하는 건축심의위원이었다.

심의란 각자 사안을 검토하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른 위원의 의견 개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원칙은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맞다.

그는 재선 시의원이다. 수 년 동안의 의정활동 중에 각가지 심의에 참여하면서 다른 심의위원의 의사진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학습과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노골적으로 다른 건축심의 위원의 업무를 방해했다. 형사처벌(업무방해)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초고층주상복합아파트 관련 공청회와 건축심의 다시 열어야

이날 건축심의를 주재한 위원장(익산시 부시장)의 회의 운영도 석연치 않다. 13인의 의결 주체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도록 하는 것이 그의 책무인데도 적극적으로 상황을 정리하지 않았다. 해당 지역의 의원이 '우리 동네일에 참견 말라'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아 심의가 비정상화 됐는데도 그 분위기에 그대로 이어 표결을 진행했다.

상황을 보자. 전문가의 소견이 개진됐다. 정치인이 그 소견에 대해 논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소견을 제기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나아가서는 익산에 살지도 않는 사람이 왜 남의 동네일에 왈가왈부 하느냐는 취지로 전문가를 직격했다.

심의위원회가 최적의 결론에 도달하도록 이바지해야 할 위원장으로서, 몰상식하고 부당한 언행을 즉시 탄핵했어야 했다.

다른 위원의 말을 막는 행위는 부적절하다는 점을 제3의 위원들에게 명확하게 공지했어야 한다.

안건과 관련 없는 인신공격성 발언에 대해 엄히 경고하여 다른 위원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했어야 한다.

또한 건축심의위원회란 동네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해당 건축물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심의하기 위해 구성된다는 점, 그래서 저마다 각 관련 분야에서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로 심의위가 구성된다는 점, 비전문가인 해당 시의원이야 말로 전문성에 토를 달 입장이 아니고 정확한 동네 여론을 전달하는 것이 주어진 몫이라고 설명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위원장은 심의가 당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각 전문가들의 자유로운 토론을 보장하고 발언 방해를 통제하며 다양한 문제제기와 해법 제안을 이끌어냈어야 했다.

하지만 위원장은 두 위원간 고성이 오가고 분위기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언쟁을 제지하고, 이를 빌미삼아 곧바로 표결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회의를 운영한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해당 시의원이 소란을 피워 1차 건축심의에서 다뤄졌던 문제를 더 이상 논의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게 할 목적을 가졌었다면 위원장은 그를 적극적으로 도운 꼴인 것이다.

이런 행태를 종합해 보면, 초고층주상복합아파트에 대한 건축심의는 건축허가를 해주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공청회를 보면 그런 의혹이 더욱 활활 타오른다. 공청회란 안건을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다.

특히, 지방자치는 일방통행식 법치행정의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해 자치단체장에게 적정한 재량권을 부여하는 등 현장을 중시하는 제도다. 그런데 이번에 익산시가 열었다는 공청회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에 주민들의 의견은 묵살하겠다는 의지가 두드러졌다.

공청회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모든 정보를 소상하게 제공해야 한다.

이를테면, 초고층주상복합아파트로 인해 교통량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기존 교통량은 얼마나 되는지, 해가 어느 쪽으로 떠서 어느 쪽으로 지는지, 그림자가 드리우는 곳이 도로 쪽이라면 어느 쪽으로 떠서 어디까지 그림자가 도로를 덮게 되는지, 겨울철 빙판도로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지속될 것인지, 전라북도를 통틀어 15층 이상의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그에 대응할 소방방제장비가 없는데 유사시 그러한 결함에 따른 대안은 무엇인지 등을 먼저 주민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거기가 인구밀집지역인데다 간선도로변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익산시는 그나마 공청회에 참석한 주민들이 제시한 문제들마저 묵살하는 태도를 아무렇지 않게 견지하고 있다.

또한 최소한의 현장 환경을 진단하지 않을 바에야 전문가들을 모아 놓고 하는 심의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자치단체가 책임을 전가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안전장치로서의 심의위원회 개최라는 것 말고 달리 살필 건덕지가 없다.

건축물이 연접하는 무왕로는 양쪽으로 인구밀집지역을 거느리고 있으며, 호남고속도로로 연결되는 유일한 출구다. 현재도 러시아워 시간에 교통적체가 심각한 구간이다.

세월호 이후 재난과 안전문제가 국가적 이슈로 떠오른 것을 감안하면 현실감각도 없는 익산시 행정이다.

지금이라도 건축심의 결과를 철회하고 공청회를 다시 열어 주민의견을 수렴한 다음 건축심의를 재개해야 하는 당위다.

사후의 책임 소재를 명백히 하고, 훗날의 지역갈등과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