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정치인은 매 순간 검증대 위에 오른다. 숙명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한 일 또는 언행을 검증 당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더구나 공직자로 선출된 정치인은 주어진 직무의 지표에 부응했는지를 지속가능성의 척도로 삼는 수많은 눈들에 노출되어 있기에 나날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택한 일이다. 검증을 감당할 수 없다면 중도에 하차해야 한다. 말하자면, 검증 앞에서 떳떳해야 한다. 잘해야 한다. 잘못하면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뿐만 아니라 사는 게 힘들어지니까, 검증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지속적인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된다.

정치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누군가 "나는 행정전문가다"고 말한 순간 그는 행정전문가가 아닌 정치인보다 우위에 놓이게 되며, 동시에 행정전문가로서 걸어가야 할 살얼음판 위에 놓이게 된다. 그는 마땅히 적실한 행정전문가인지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행정전문가란 말할 것도 없이 피동적이며 소극적인 자기와 결별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국가의 목적을 실현하는 사람이다. 또한 지방자치시대의 자치단체장으로서의 행정전문가란 지역 환경을 살피고 지역사람들의 바람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여 국가가 지향하는 바를 지역 안에서 극대화시키는 사람이다.

그래서 행정전문가로서 자치단체장은, 규제행정 못지 않게 조장행정에 능한 사람이다. 공익을 위해 법을 집행하는 성실한 감독자이자, 정책이나 행정행위의 실효성과 부작용을 부단히 평가하여 조정하고 수정하는 사람이다.

만약, 법에 입각해 지역사람들의 행위를 제한하는 능력의 비범함을 행정전문가 조건의 전부로 내세운다면 그것은 기만이다. 대다수가 반대하는 행정행위를 행정편의주의로 해석한 법을 앞세워 강행하면서 지역 사람들간 갈등과 반목을 심화시킨다면, '트러블 메이커'라 해야지 어떻게 행정전문가라 한단 말인가.

본래 조장행정이라는 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법의 총체를 일컫는다. 그것은 행정이 사람들의 삶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방향성이다. 복지나 행정서비스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시시각각 변하고, 삶의 환경에 대한 의견들이 복잡다단해지면서 더욱 강조되는 행정의 방식이 곧 조장행정인 것이다.

협치 혹은 거버넌스체계 구축은 결국 '사회적 통합'을 지향한다. 이해당사자들이 있는 개발행위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삶의 현장을 지표로 삼는 복지의 공급, 공공시설의 설치 또는 운영 관리 위탁 등의 투명성 확보는 그러한 체계에 의해 보장된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구축된 합의 시스템을 이미 행정이 결정한 사안을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는 도구로 악용하거나, 그저 형식적으로 운용하거나 하는 행태들은 공기를 사익추구의 수단으로 삼는 모리배들의 주구임을 드러내는 단서다.

설마 그런 독단과 불통, 무책임한 기법에 능통한 고위 공무원 혹은 선출직 공무원에게 '행정전문가'라는 수식을 붙인다는 것은 아닐 터이다. 더구나 어떤 행위의 방향을 결정하고 법이나 그 행위의 근거를 아전인수격으로 짜맞추기 하기를 매끄럽게 하는 수준에 행정전문가 라벨을 붙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행정을 떡 주무르듯 하는 익산시

그런데 정헌율 호의 익산시는 조례를 위반하면서 무자격 업체를 쓰레기 소각장(익산시신재생자원센터) 수탁자로 선정했다. 그 바람에 그동안 소각장을 잘 운영해왔으며 자격요건을 충족하는 업체가 탈락했다. 이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다.

소각장 입찰 방식은 전북 지역업체가 함께 참여하면 가점을 주는 공동도급방식이었는데, 수탁자로 선정된 컨소시엄의 전주 지역업체인 I사 경영진 일부와 익산시 수뇌부가 오래 전부터 친한 관계였다던지 수탁자 선정 공고에 수뇌부가 개입했을 것이라던지 하는 의혹이 무성했다.

익산시는 사전에 그런 행정행위가 조례에 위반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상급기관에 질의를 하고 모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확보하는 등 정당성 확보에 별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익산시는 소각장 수탁자 공모 이전 I사가 확보하고 있던 자격상태를 수용하는 수준으로 대폭 완화하는 조례개정안을 수개월이 지난 사후에 의회에 상정했고 이 조례안은 지난 8일 의회를 통과했다.

그 뿐 아니다. 얼마 전 건축심의를 통과한 부송동 초고층(2천평 규모, 38층) 빌딩 신축 절차도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익산 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고, 도내엔 20층 이상 건물에 대한 소방 구조장비가 없으며, 신축부지가 간선도로(무왕로)변에 입지해 한겨울 응달이 무왕로를 길게 덮을 공산이 높아 교통사고 속출이 예상되는데다, 가뜩이나 포화상태인 무왕로에 교통량이 집중되어 러시아워 시간대의 교통지옥이 우려됐다.

건축심의란, 건축주가 제출한 설계가 공공성을 확보하고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입지적, 환경적, 구조적으로 주변에 미치는 악영향이 있다면, 그것을 보완해 건축물이 주변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조정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1차 건축심의에서 전문가들은 우려되는 문제들과 함께 주변에 대한 일조권 침해 문제 및 미관(위화감) 등의 이유로 건물 층수 축소를 요구했고, 건축주는 당초 40층을 고작 38층으로 낮춘 설계서를 건축심의위원회에 제출했다. 주민들이 반발했다.

해당지역구 의원이 설문조사를 했고 설계안대로 신축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이 62%로 나타나는 등 논란이 고조되자 익산시는 2차 건축심의를 앞둔 하루 전날 부랴부랴 공청회를 개최했다. 공청회에서도 반대 의견이 찬성 의견을 압도했다.

그러나 건축심의위원회는 공청회에서 제기 된 항목들을 제대로 토론조차 하지 않은 채 설계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설문조사와 공청회에서 초고층주상복합아파트 신축을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보면, 주변상권 침해, 주변지역 일조권·조망권 침해, 교통체증 유발, 위화감 조성, 도시경관 훼손 등이었다.

하지만 익산시는 다수 주민들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공청회를 건축 설계 승인을 위한 형식적인 절차로 삼았을 뿐이라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가운데 익산시는 최근 그동안 위탁 운영해 온 삼기의 폐수종말처리장을 직영으로 전환하는 절차에 돌입했다. 국가식품클러스터 내에 설치할 왕궁폐수종말처리장과 삼기폐수종말처리장을 한꺼번에 직영 관리하면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는 명분과, 기존 직원들을 전원 고용승계해 후유증을 최소화 한다는 방침이 전제된 정책 전환이다.

그런데 그 시작이 수상하다. 기존 위탁운영 업체와의 재계약을 앞둔 시점이었다. 익산시는 익산시의회에 삼기폐수종말처리장 재위탁 동의안을 상정했고 의회가 이를 의결한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폐수종말처리장 운영 수탁 수주전을 펼치는 업체가 등장했다.

다름 아닌 무자격으로 소각장 운영권을 획득한 전주의 그 I사 였다. 이 업체가 한바탕 진흙탕을 휘젓고 다니자 기존 업체도 방어에 나서면서 잡음이 일었다. 그러자 익산시는 별안간 재위탁 동의안을 철회하고 직영 방침을 발표했다.

별다른 준비도 없었다. 그래서 익산시가 내세우는 예산절감 명분이 주먹구구식 산술 결과라는 비판을 초래하고, 전원 고용승계가 실제론 불가능한데도 조삼모사적 주장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불렀다. 이런 정책의 전환은 장기간 검토되어도 오류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갑자기 직영 전환을 결정하고 그 방향성을 합리화 하는데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는 꼴이다.

자칭 행정전문가가 지휘하는 익산시가 그 모양이다. 타 지역 업체에 휘둘려 지역업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업자에 휘둘려 난개발을 추진하면서 시민들의 생활 환경을 훼손하는 등 졸속행정을 주도하는 게 행정전문가라면, 삼척동자도 그런 행정전문가 노릇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