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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호 악폐 존속 빌미주는 적폐청산

편집국장 공인배

이런 식의 숙청은 파급력도 떨어진다. 대상자들은 반성하지 않으며, 오직 이겨서 되갚아주기 위해 칼을 갈 뿐이고, 국민들은 얼마 가지 않아 식상하게 된다. 물론 숙청이 흥행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쇠락한 권력을 효수하여 새로운 세상의 지표로 삼으려 하는 것은 시체가 썩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연일 뉴스를 지배한다. 환부를 도려내 생살을 돋게 하는 현장을 조명하는 것이니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달 동안 뉴스나 시사프로그램들의 창에 비치는 적폐란 오롯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위법한 작태들이다.

국정원, 국방부, 검찰, 혹은 7인회 등이 권력 연장의 앞잡이가 되어 저지른 온갖 탈선행위가 속속 단죄의 길로 밀려들고 있다. 장마에 논둑 터지듯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적폐사건들은 우리에게 더 이상 놀랄 틈도 주지 않고 있다.

정면으로 응시하면 그것이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행태들이지만, 그 증거의 출처가 결국 그들의 본거지였던 정부 주요기관인 것을 보면, 이 일련의 적폐청산은 명백하게 '숙청'의 다른 이름이다. 숙청의 사전적 의미가 그릇된 일 따위를 엄하게 바로잡아 혼란을 수습한다는 것과 정치적으로 입장을 달리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을 없애는 것 등 두 가지로 나뉘기에 그 명암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새로운 출발은 과거사 정리가 선결되어야 한다. 청산은 곧 치유다. 그래서 중병에 걸린 사회일수록 청산 과정의 파열음이 클 수밖에 없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태라면 수술 역시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위험에 대한 도전행위다.

따라서 적폐의 온상들이 '정치보복'을 운위하며 반발하는 것은 불가피한 반작용이다. 그런데 청산의 진통이 의외로 미미하다. 우선은 둔감하다. 갑자기 한꺼번에 적폐의 줄기들이 들어올려지는 바람에 그 비정상의 규모나 상태를 따져볼 겨를이 없다.

적폐청산이 마치 정권을 이양받은 새 정부가 착근을 위해 거치는 통과의례처럼 치부되는 이유다. 나아가서는 숙청의 부정적인 의미 즉,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소탕하는 숙청이라는 시각에 힘을 실어주는 일련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숙청 작업의 사회적 영향이 미미하게 또는 그 의미가 무색하게 느껴지는 또다른 이유는 법률적 청산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매우 안전한 숙청 방식이지만, 동시에 한계를 드러낸다. 당장 시간의 제약을 받아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새정부의 법률적 적폐청산 기간은 장기화 되면 역풍에 대한 부담이 커지게 마련이다. 숙청이 장기화 되면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그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하 새정부의 적폐청산 방식은 전 정권의 팔다리를 잘라내어 전의를 상실케 하겠다는 의도로 오인받더라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퇴진한 정권의 치부를 들추고 털어 국민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새정부는 공고한 입지를 다지는 등식과 거리가 멀다 할 수 없는 탓이다.

국민들의 지지로 선출된 권부가 권력을 쥐고 있을 때는 은폐할 수 있었던 비리들이, 권력을 내려놓으면 드러나고, 새로운 권력의 칼이 춤추는 살풍경을 뉴스들이 정당화하고 미화했다. 그바람에 국민들은 자기 선택에 의문을 갖고 '그 밥에 그나물'이라는 회의감에 빠져들곤 했다.

신성한 주권이 매번 폄훼되고 훼손되는 순간들이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가치가 부정되었다. 권력을 쥐고 있을 때는 죄가 되지 않던 것이 권력을 놓으면 죄가 되면서 이 나라는 불평등하다는 의식을 심화시켰다. 이는 권력은 신성불가침이라는 역설을 낳으니 국민들은 그때마다 무너진 헌법과 사법의 잔해 위를 부유했다.

예컨데 18대 대선에서 국정원이 조직적인 댓글공작을 벌이는 등 불법선거 운동의 한 축이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그 도움을 받은 정권이 살아있을 때는 사법부가 눈멀고 귀가 먼 듯 갈지자를 걷다가, 새 정권 아래에서는 그 저변까지 뒤져 주섬주섬 권력유착형 범죄들을 주워들어 어떻게든 죄명을 붙여보려고 고민하는 태도가 그것을 단적으로 방증한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정치 보복'이라고 결단코 말할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는 일말의 꼬투리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역지사지를 추동하는, '노무현의 죽음'이라는, 가슴속 깊은 곳에 박혀 숨쉴 때마다 통증이 수반되는, 역사의 한 편린을 안고있다.

정치 보복, 혹은 정치적 거세의 피해자라고 확신하는 입장에서, 사실과 다를지라도 상대방이 적폐청산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 봐야 한다. MBC와 KBS노조의 전면파업과 양 공영방송의 신구 경영진들이 사법적 판단 대상이 된 것을 놓고, '언론장악'이라고 말하며 상복으로 나날을 보내는 수구간당들이 그 상대방이다.

그들이 언론을 장악했었기에, 그들이 자연인이 된 노무현을 핍박했었기에, 그들이 검찰을 시녀로 삼고 청와대를 복마전으로 삼았기에, 그들이 전횡을 일삼고 정부조직들을 사당화했기에, 그들이 권력이란 초법적 지위에 있어야 한다고 설정하고 있기에, 문재인 정부도 그럴 것이라는 그들의 확증편향을 무어라 한들 씨가 먹히겠는가.

그러니까 적폐청산이 길어질수록, 확대될수록, 전 정권의 문제들에 집중될수록 그들은 더 결속될 것이다. 힘을 잃은 상태에서 공격당한다고 생각하는 쪽은 이성적이기 어렵다. 당대표가 막말을 일삼고 국회의원들이 길거리 펼침막을 국회 안에서 펼치고 앉아있을 수 있는 현실이 그걸 단적으로 방증한다.

박근혜 탄핵 이후 와해되는 양상을 보였던 그들에 대한 지지율은 지금은 20%대까지 회복됐다. 전적으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문재인 정부가 단행하는 적폐청산의 대상이 된 자들의 생떼가 보수층의 심리적 강박을 심화시킨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박해와 순교, 혹은 핍박과 결속의 함수관계

더구나 범법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빨에는 이빨이다. 그러한 숙청이 얼마나 특별한 범죄예방효과를 낳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고 반년이 되었는데, 의도하는 바는 아니겠지만 효수되는 구 권력의 구성원이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이다.

뉴스는 문고리 3인방이 국정원으로부터 매월 1억원씩 뇌물을 상납받아 대통령을 위해 사적으로 사용했다는데까지 이르렀다. 결정적인 증거들은 구 권력의 구성원들이 주둔했던 복마전에서 나오고 있다. 복마전은 무슨 범죄의 화수분 같아서 한없이 그들의 범죄행위들을 쏟아낼 것만 같다.

이래서야 새 시대를 향해 반 족장이라도 나아갈 수 있겠는가. 당장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벼랑 끝에 선 민생에 대한 해법이 국회에서 막힐 것이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우니 장 담그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폐청산의 과정이 의도적으로 연장하는 일일 연속극처럼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사회가 구 정권에 대한 혐오와 분노의 피로를 풀 때가 되었다. 범죄의 증거가 공표되고 검찰이 수사에 나서고 뉴스가 생산되는 매커니즘에 문재인 정부가 더 이상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적폐청산은 이제 소리없이 해도 된다. 박근혜에게 천년형을 선고하고 구족을 멸할 것이 아니라면 그 효과는 볼 만큼 보았다.

진정한 적폐청산은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 스스로가 차기 정권의 정치보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관행적 적폐, 제도적 적폐를 청산해야만 가능하다. 그것은 상생과 화해의 기류를 타지 않고는 결코 이룩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