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스스로도 부족하고 불안정한 주체들이 서로 죽자 사자 다투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신뢰를 재화로 삼는 주체들이다. 그 신뢰를 사는 시민들로부터 외면을 초래하는 꼴이 아닌가.

사실 기자단이란 친목단체에 그치지 않는다. 어느 시점까지는 기자로서 품위를 손상시키는 탈선 분자들을 배격하는 일에 소극적이지 않았다. 불순한 분자들을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 결백한 위상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와각지쟁(蝸角之爭)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로 다투는가/ 부싯돌 번쩍이는 불꽃같은 이 내 몸이라네/ 부유한 대로 가난한 대로 즐거움은 있는 법/ 입 벌리고 웃지 않는 사람은 바보라네.

당나라 중기를 대표하는 시인 백거이의 시(詩)다. 그가 술을 대하는 시 다섯 수를 썼는데 그 가운데 한 수다. 술이란 무릇 저런 마음으로 마셔야 제대로 취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시다.

직역하여 풀어쓴다면 다음과 같겠다. 사람이 발을 딛고 있는 현재란 달팽이 촉수처럼 연약하여 스스로 균형 잡고 서 있기도 어려운데 서로 싸우다니 과연 무엇을 위해서인가/ 찰나의 짧은 생인데 살 줄만 알고 죽을 줄은 모르는구나/ 패자만 있고 승자는 없는 삶, 누구나 처지에 자족하면 즐길 수 있으리/ 우리에게 주어진 이 생에 대하여, 우리가 마주한 이 짧은 즐거움에 대하여 생각하면 한바탕 파안대소 할 일이 아닌가.

그러니 다 내려놓고 술이난 한 잔 하세나. 술에 타서 마시면 음미 할수록 청량해지는 시가 아닐 수 없다. 백거이는 이 시의 와각지쟁(蝸角之爭, 달팽이 뿔에서 다툼)을 장자(莊子)의 칙양편에서 차용했는데, 칙양편은 전국시대에 제나라가 위나라를 침략한 직후의 이야기다.

위나라의 혜왕은 격노했다. 제나라의 위왕이 동맹을 깼기 때문이다. 자객을 보내 위왕을 죽이자는 혜왕의 주장에 장단을 맞추는 신하도 있었고, 전면전을 일으켜야 한다는 강성도 있었으며, 백성들만 피해를 보는 전쟁을 결단코 반대하는 신하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이 문제를 논하는 것 자체가 민심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라며 왕에게 바른 정치를 행하면 된다고 진언하던 신하 혜자가 현인으로 추앙받던 대진인(戴晉人)과 혜왕을 만나게 했는데, 혜왕의 사정을 들은 대진인이 물었다. "달팽이를 아십니까?" "알지요"

"그 달팽이의 왼쪽 뿔에 나라가 있는데 촉씨라 하고, 오른쪽 뿔에 나라가 있는데 만씨라고 합니다. 그들은 가끔 땅을 다투어 싸움을 일으켜서 시체가 수만이나 되고 달아나는 적을 추격해 보름이나 되어야 돌아온다고 합니다."

"허,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소?"

"나는 왕을 위해 사실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왕께서는 저 사방과 위아래가 다함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함이 없지요."

"다함이 없는 곳에 마음을 노닐게 할 줄 아는 사람이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에 돌아와 보면 (극히 작아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렇겠지요."

"그 나라 가운데 위(魏)나라가 있고, 위나라 가운데 양(梁)이라는 도성이 있고, 그 도성 가운데 왕이 있으니, 왕이 촉씨나 만씨와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다를 것이 없지요."

당시는 온 대륙이 전란에 휩싸였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전쟁을 겪으며 크게 쇠약해져 나라다운 나라가 없었다. 백성들은 피폐하고 곤궁한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군웅들은 자신의 위태로운 처지를 망각한 채 각자 야욕을 좇으며 백성들을 사지로 내몰던 시기다.

다른 여러 나라들도 마찬가지이거니와, 혜왕을 비롯한 위나라의 왕들이 분수를 알고 내실을 기하여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주력하며 국력을 길렀다면 백성들과 함께 태평성대를 구가했을텐데, 결국 위나라는 전쟁통에 멸망하고 만다.

의회는 언론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관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거짓말 같은 와각지쟁이 그로부터 2300년이 지난 오늘 익산에서 벌어지고 있다. 기자단과 시의회의 충돌이 그것이다. 싸움은 의회가 걸었다. 위헌소지가 높은 언론조례를 제정하더니, 거기에 익산시의 홍보비 지원기준을 더 강화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했다. 익산시 기자단은 입법예고 기간에 그 부당성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지만 원안과 대동소이한 개정안이 최종 통과됐다.

익산시 기자단 뿐만 아니라 전라북도 기자협회와 한국기자협회가 그 위헌성과 부당성을 규탄하는 성명과 보도를 잇달아 발표했다. 그와는 달리 시의회 의장단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것은 총성없는 전쟁의 시발점이 됐다.

잠시 동안 서로 벼르며 으르렁 거리는가 싶더니 단번에 전력투구 대오를 갖추고 진검을 빼들었다. 걷잡을 겨를이 없었다. 순식간에 맞불을 놓으며 무슨 가미가제 작전인 양 무작정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치킨게임의 끝에서 과연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가.

그 발단은 A지역신문이 최근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A시의원을 비난하는 기사를 보도하면서부터다. A의원은 모욕감에 치를 떨었다. A의원은 A신문의 기사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 제소와 형사고소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언론조례 개정을 추진했다. A신문사와 A의원의 충돌은 여러 차례 있었고, 회가 거듭될수록 심화되어 곪을만큼 곪았다.

단적으로 A의원의 사적인 감정에 의한 조례 개정인 것이다. 그 절차도 부적절하다. A의원은 익산시 의원들 대다수가 참석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조례개정 발의안에 동의 서명을 받았다. 개정안의 지원 제한 조항들이 과도하다는 의견을 접수하고도 그에 대한 직접적인 분석이나 평가, 토론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A의원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동료의원들의 심정적인 동조와 결속이 졸속 개정안을 낳은 것이다. 익산시의회는 이렇게 균형을 잃었고 공의롭지 못하다. 의원 개인의 사적인 문제에 동조하여 집단이기주의의 극치를 드러냈고, 대의기관의 본령을 망각했다.

의회가 언론을 감시하고 견제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 익산시의회의 시대착오적 역주행은 명백히 척결되어야 할 적폐다. 전술한 문제들에 더하여, 의도했든지 의도하지 않았든지 익산시의회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길들이는 도구로 언론조례를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지하고 미숙하고, 부적절한 언론관을 드러내며, 정체성의 결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익산시의회의 현주소가 아닐 수 없다.

척결해야 할 적폐를 보호하며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기자단

그렇다면 A의원에 동조한 22명 의원들의 심정은 어떤 바탕에서 비롯하는가. 그들은 익산시청을 출입하는 68명의 기자들을 본다. 이름도 생소한 언론사가 수두룩하고, 기사다운 기사를 쓰지 않는 기자들이 흔하며, 어떤 기자들은 팩트없는 자기말을 기사랍시고 마구 지껄이며, 어떤 기자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고, 어떤 기자들은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대상에 린치를 가하는 악의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어떤 기자들은 기사를 아예 쓰지도 않고 그저 행정기관을 출입하면 홍보비를 척척 받는 줄로 알고, 어떤 기자는 취재랍시고 남의 뒷조사나 하고 다니며, 협박 공갈로 먹고 사는 것으로 안다. 무엇보다 최근 몇년 새 부적절한 기자들이 난립했고, 홍보비를 주는 집행부에 빌붙어 의회를 생트집으로 비하하고 상처주는 기자들이 준동했다.

이같은 문제는 사회병리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익산시 기자단의 책임이 적지 않다. 노골적으로 정론에 반하는 실체를 드러내고, 언론상(言論像)을 훼손한 기자들을 척결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여주는 것이 그렇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보도하는 무리들과 같은 취급을 당해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 아닌가.

더구나 허위 비방 보도를 일삼는 자들이 후미에서 이번 사태를 주도하며, 언론계와 지역 정치계의 전쟁인 양 비화시키는 꼴을 보고 있자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익산시 기자단과 익산시의회가 정작 척결해야 할 적폐들을 보호하기 위해, 혹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A들을 위해 대리전을 치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자단이나 의회가 각각 달팽이 촉수 위에 서 있는 촉씨이며 만씨라고 규정하는데 반론이 있겠는가. 스스로도 부족하고 불안정한 주체들이 서로 죽자 사자 다투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신뢰를 재화로 삼는 주체들이다. 그 신뢰를 사는 시민들로부터 외면을 초래하는 꼴이 아닌가.

사실 기자단이란 친목단체에 그치지 않는다. 어느 시점까지는 기자로서 품위를 손상시키는 탈선 분자들을 배격하는 일에 소극적이지 않았다. 불순한 분자들을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 결백한 위상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익산시 기자단의 규약에 그러한 정신이 담겨있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추상같은 태도를 견지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것만이 실추된 언론계의 위신을 되찾는 유일한 길이다. 문제의 자칭 기자들을 징계하고 그 결과를 행정관청에 통지함으로써 출입을 제한해야 마땅할 판에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기자단이 결속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것은 부패한 균을 받아들여 모두가 썩자는 얘기 아닌가. 만약 기자단이 그러한 원칙을 고수해 왔더라면, A의원도 저렇게 극단적으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A신문사의 의도적인 가해에 피해를 입었을 때 의장단에게 사정을 호소하고, 의장단은 이를 수렴하여 그 요구사항을 기자단에 전달하는 구조였더라면, 기자단이 지체없이 징계를 결의하는 형식을 빌을 수 있었다면, 애초에 위헌논란의 중력을 짊어지고 언론조례를 제정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A의원의 지극히 삿되고 부당한 작태에 동조한 의원들의 심정에는 부적절한 기자들을 차제에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당위가 있었다. 한마디로 형편없는 기자집단, 그 적폐를 청산하는 일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결기가 일개 의원의 악의라도 함께 부둥켜 안은 것이다.

그렇다고 의회의 작금의 행태가 정당성을 확보한다고 용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기자단의 뼈를 깍는 성찰이 필요한 지점임에는 분명하다. 당장에 총회를 열어 A기자와 언론사에 대해 징계를 결의해야 한다. A와 같은 기자나 언론사들이 행정기관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일정 기간 출입을 제한하는 결정을 기자단이 내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언론조례를 사문화하는 길이고, 언론인들의 자존감을 되찾는 길이며, 정치인들의 불순한 의도를 차단하는 길이다. 두 주체가 지금 즉시 무장을 해제하기를 요망한다. 법도가 그렇다. 다 같이 죽자고 맞붙은 싸움의 막판에서 행여라도 살아남는 자는 있을 수 없는 법이다.

두 주체가 마주 앉아 백거이를 불러 권주가를 듣게 된다면, 파국으로 치닫던 무모한 전장터에서 벗어난 사실에 안도할 것이다. 그런 여유있는 마음으로 술 한잔 기울인다면, 쾌도난마의 해법이 보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