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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호 KTX혁신역에 붙여-지역이기주의 조장하는 '기만의 정치'

편집국장 공인배

그래서 나는 그가 그들만의 논란거리를 다시 꺼내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말하자면 자신의 선거구민들의 눈과 귀를 일거에 쏠리게 하면서도, 승패와는 상관없이 정치적으로 득이 되는 그들의 단골 이슈를 그들은 늘 만지작거리다가 불쑥 그걸 내밀곤 한다.

KTX 고속철을 저속철로 바꾸려는 시도가 또 포착됐다. 완주가 본거지인 한 국회의원이 KTX혁신도시역 신설을 강변하는 토론회를 열더니 정부 예산에 관련 정책연구비 1억원을 편성시킨 것이다. 이는 KTX 고속철의 평균 주행속도를 감안할 때 익산역에서 불과 1분 거리인 백구에 역 하나를 더 만들자는 획책이다.

그런데 이것은 당초 혁신도시에 KTX역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끝에 선회한 주장이다. 익산역에서 혁신도시까지 14km를 벗어났다가 다시 김제역 쪽 본선으로 돌아오는데 또 그 만큼의 철도가 필요하거니와, 역사를 신설하는데까지 무려 1조6천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 되는 등 그의 논리가 벽에 부딪혔던 탓이다.

KTX 호남고속철에 투입한 돈은 8조3천억원에 이른다. 공사 기간도 6년이나 걸렸다. 오직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들인 비용이다. 당초 주장은 KTX혁시도시로 인해 28km 가량 발생하는 곡선구간과 정차역 신설이 KTX고속철의 본래목적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사실에 숙고하지 못한 소이였다.

뼈대도 없는 주장이며, 가당치도 않는 기도였다.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도 신설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 부적절성을 인식했나 했더니 이번에는 익산과 김제역 사이에 있는 백구에 KTX혁신도시역을 짓자며 나라예산 심사권을 가진 의원직을 이용해 그에 따른 연구비 1억원을 내년 예산에 세우게 한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 역 하나를 더 짓게 된다면 그에 따른 건설비용이 발생한다. 또, 익산역을 경유한 고속철이 1분거리인 혁신도시역에 다시 정차한다는 것은 고속철의 목적을 훼손하는 결과가 되므로, 열차를 익산역과 혁신도시역에 분산 배차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어 익산역을 경유하는 열차의 간격이 크게 길어지게 된다.

그 역시 KTX고속철의 빠른 운송을 저해하는 결과다. 백구역 신설 주장의 맹점은 그런 불합리를 안으면서도 그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우선 혁신도시와 백구는 10km나 떨어져 있어 'KTX혁신도시역'이라는 명칭 자체가 부적절하고 무색하다.

특히, 익산역과 혁신도시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는 거리에 있다. 굳이 백구에 새 역사를 건설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전북권 도시전철망 구축사업 관련 타당성 용역이 진행되고 있는 마당이다. 전라북도 국회의원들은 바로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예의 완주 의원은 KTX혁신도시역 신설 주장이 어불성설이라는 점을 모르는 것일까. 그럴 리 없다. 그는 관련부처를 지근거리에서 감시하고 견제하는 국회의원이다. KTX호남고속철이 담보하고 있는 객관성이란 아주 오랜기간에 걸친 전문적인 검토와 모든 여론이 수렴된 결정이라는 것을 그가 모를 리 없다.

그런 경우 논거를 굳이 세울 필요가 없다. 지역주의를 자극만 하면 된다.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한 강한 귀속감은 그들의 도화선이다. 그들은 능숙하게 허황한 논리를 만들어 자기지역 사람들의 애착심에 불을 당겨 자기가 속하지 않은 집단에 대한 강한 배타심과 편견을 분출시킨다.

얼마나 쉬운 일인가. 주민을 섬길 줄 모르는 정치배들, 그저 표로만 인식하고 그 표를 양떼처럼 몰고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는 주민들의 지역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이 얼마나 좋은 노리갯감이겠는가. 게다가 지역주의는 상대지역에 의해 더 강화되면서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더 무성하게 가지를 뻗는다.

황당한 KTX혁신도시역 이슈를 익산에서 덥썩 문 것과 같다. 상대방이 원칙과 상식을 꿀꺽 집어삼키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던진 미끼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게 말도 안 되는 주장일지라도, 거기에 논박하는 것은 정치적인 득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까불지마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자기지역의 배타성에 불이 붙기 때문이다. 결국 이쪽도 지는 싸움이 아니다. 외침(外侵)이란 내부 결속의 강력한 동인이 된다. 그것을 도발로 규정하고, 성토전(聲討戰)의 진을 치면서 자기 주민들에게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나에게 표를 모아달라"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효과적인 정치적 전술이다. 그들은 주민들이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려 피로도가 높아지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으며, 오히려 주민들이 그런 기만의 정치에 놀아나는 것에 희열을 느낄 뿐이다. 주민들이 그런 와류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상대 지역에 대한 반목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익산 사람들은 익산이 혁신도시의 적지로 평가받았음에도 힘의 논리에 의해 빼앗겼다는 박탈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다. 이제 전주·완주와 익산은 혁신도시의 프레임에 의해 서로 대립하는 지방색에 갇히게 되었다. 지역감정의 온상이 된 것이다.

순전히 정치배들에 의해서 조장되는 사회병리현상이다. 우리의 현대사는 동서 갈등이 관통했다. 그 시작도 너무나 허무맹랑하다. 1,100년 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대 왕들에게 내린 훈요십조(訓要十條) 가운데 제8조가 그 비극의 단초였다.

득만 있고 실은 없는 그들만의 게임

차현(車峴) 이남 공주(公州)강 바깥(전라도 지방)은 산형과 지세가 모두 반대 방향으로 뻗었으니 '배역의 땅'이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국사에 참여하거나 왕후, 국척들과 혼인을 하여 나라의 정권을 잡게 되면 국가에 변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 지방 사람들에게는 관직을 주어 정치에 참여시키지 마라"고 했다. 이런 터무니없는 태조의 유훈은 고려의 국사 도선(道詵)의 풍수지리 관점에서 비롯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과거 정권을 잡은 영남사람들은 이 훈요십조를 마치 세세연년 살아있는 칙령인 양 따랐다.

망국적인 지역감정의 발단이었다. 호남의 정치인들은 저항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그것은 피차간에 실은 없고 득만 있는 정치게임이었다. 지역할거주의를 고착화시킨 그 기만의 정치는 아직도 여전히 발호한다.

우리는 기억한다. 그런 지역감정을 깨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이 필요한지. 김대중 정부는 호남을 역차별해야 했고, 비 호남인 노무현을 후계자로 삼아야 했다. 이 역시 못다한 통합의 정치를 위해 지역적 역차별을 감수해야만 하는 자발적인 선택이었고, 문재인 역시 호남이 낳았지만 영남의 정치가 그랬던 바 국가재정을 독식하는 고리를 끊겠다는 결의의 결과였다.

호남지방은 영남사람들이 정권을 쥐고 있는 동안 또는 집권 10년 동안, 또 앞으로 5년 동안 상대적인 낙후와 박탈감을 감수하지만 아직도 지역감정의 벽을 극복하지 못한 채 휩쓸려가고 있다. 그 폐해를 잘 알면서도 지역감정 조장은 선거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KTX혁신도시역 이라는 프레임은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듯 하다. 지금 번지고 있는 이 불길은 선거기간 내내 거세게 타오를 것이고, 그 권모술수의 화력을 과시한 정치인은 다음 총선에서 재선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지역 사람들의 자기정체성을 교란한 결과물이다. 차별받는다는 피해의식을 부풀려서 지역사람들이 눈멀고 귀멀게 한 결과물이다. 이것은 파벌의 기제이며, 갈등과 충돌을 일상화하는 광기의 근원이 된다.

지역주의를 붕괴시키는 결과다.지역공동체 안에서 자기정체성을 퇴색시키는 것 보다 더 큰 죄가 어디있겠는가

허황한 논리로 헛된 망상을 심어서 우리사회의 유기적 공감대 형성을 방해하며, 사실판단의 객관적 근거를 파괴하면서 편견에 지배받고 심각한 제노포비아 병에 걸린 사람들을 대표하는 것이 정치인일까. 걸음을 멈추고 입을 닫고 사람들이 아닌 하늘을 우러러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정치하는 자가 사회발전을 위한 사회통합의 걸림돌이 되면서 경쟁력이 있다 한다면 누가 비웃지 않겠는가. 정치하는 자가 지역주의를 지역이기주의로 변질시키면서 무슨 목표를 표방한다면 누가 그를 정치인으로 인정하겠는가.

다만, 몸소 저 기막힌 훈요십조가 옳다고 실증하는 꼴이 아닌가. 오직 자기를 위해서 사람들을 배신하고 갈등을 야기하는 자는 공공의 적이다. 더 이상 KTX혁신도시역을 거론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