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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호 피할 수 없는 예측 가능한 미래의 위험

편집국장 공인배

그 타이밍이란 '전쟁불가'를 외치는 문재인이나 시진핑의 반발을 수용하는 모양새가 갖춰지는 지점이다. 그렇다. 트럼프에게 한반도의 긴장은 동북아를 지배하는 명분이자 수단이다. 한반도의 긴장은 무엇보다 그에게 부당이득을 취하는 빨대다.

갈수록 불공정이 심화되는 FTA가 그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북한의 쇼에 트럼프가 화답할 때마다 중국과 한국은 막대하고도 과도한 평화유지 비용을 미국시장에 헌납하는 꼴이다. 뻑치기 당하는 느낌이다.

트럼프 발 불안이 지구촌을 뒤덮었다. 취임 직후 묻지마식 장벽으로 이민자들을 막더니, 국내·외의 첨예한 문제들을 들쑤셔 긴장을 높이고 있다. 그의 강경일변도에 인종간, 계층간, 국경간 분쟁이 격화되고 테러와 전쟁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된다.

미국 국민들은 그 심각성을피부로 감지했다. 요사이 부쩍 비상시 생존 매뉴얼에 관심이 많아지고, 시장에선 재난상황에 필요한 물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트럼프가 표방하는 정책방향은 '자국이익 우선'인데, 자국 국민들의 위기의식이 팽배한 것이다.

이기주의라는 게 본래 정글의 법칙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전대의 정부들이 맺어 온 무역협정을 무력화하는 것은 팔기만 하고 사지는 않겠다는 뜻의 발로다. 경제의 기본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고, 고립을 자초하는 무모한 진격이다.

지속가능성이 없는데 교역조건을 묵살하고 상대국에 구매만을 강요해 불만을 누적시키는 것은 악순환을 부른다. FTA가 발효된 지 불과 5년이 지났는데, 관세철폐율 97.9%의 확 트인 관문을 타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2배나 증가한 우리나라의 사정이 비단 우리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모든 국가들이 자국의 농축산물 피해를 호소하며 농축산물 관세양허 재조정을 요구하고 나설 날이 머지 않았다. 그것은 트럼프 정부가 외교를 호혜주의에 입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사건건 이익을 계측하고 따지고 드는 국가들의 성화와 압박에 미국은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트럼프는 '거인은 귀가 어둡고 웬만한 통증에 둔감하다'는 걸 몸소 아주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벼랑 끝에 선 김정은에게 한 발도 후퇴할 여지를 주지 않고 밀어붙이는 중이다. 김정은은 놀라지 않는 트럼프를 놀래키려고 더 더 폭발력이 크고 더 멀리 날아가는 미사일을 제작해 쏘아올리고 있다.

김정은으로선 트럼프를 물러서게 하고 대화의 테이블에 동등한 자격으로 마주 앉겠다는 일념이고, 그 길 밖에는 지금까지 소모한 비용을 회수할 길이 없는 상태다. 미사일에 올인했기에 여기서 멈추면 고립무원의 경제를 회복시킬 다른 수단이 없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런 김정은을 위협적인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다. 그저 가소로운 하룻강아지로 규정하고 있는 게 역력하다. 게다가 '핵 동결'이라는 강대국의 논리는 인류의 지상명령인 '평화'를 등에 업고 트럼프의 손에 칼을 들려준다.

국제사회의 규탄과 봉쇄가 북한을 죽음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는 무력과시의 고삐를 나날이 더 조여나가고 있다. 조지 부시가 사담 후세인을 압박했던 것처럼,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라크에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던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구실삼았던 것처럼, 북한 상공 지근거리에 최첨단 전투기들을 띄우고 근해에 초대형 항모를 띄운다.

김정은은 후세인에 비교했을 때 트럼프에게는 너무나 쉬운 상대다. 대놓고 핵보유국임을 선언하면서 "핵을 탑재한 미사일을 미국 본토까지 날려보낼 수 있다"고 자랑한다. 14년 전 부시가 후세인을 쳤던 상황을 상기한다면, 트럼프는 지금 당장이라도 전투기들을 출격시켜 김정은의 본거지를 정밀타격하고, 지상군을 투입해 수십만명의 북한 주민들이 죽거나 다치게 할 수 있다.

그럴 명분이 충분해 보인다. 한사코 대화와 타협을 주창하는 시진핑이나 문재인을 곁눈질로 바라보는 트럼프의 태도가 그걸 강조한다. 오히려 사드배치를 강행해 시진핑의 기를 꺾고, 문재인에게 '국방자주권은 당신에게 없다'고 상기시키는 조처들을 일방적으로 전개한다.

말하자면 트럼프는 북한을 공격할 모든 채비를 마쳤다. 김정은 자신이 후세인 처럼 지구촌의 평화를 깨는 '악의 축'으로 취급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가뜩이나 미국이나 유럽 열강들이 태러전쟁의 축차적 확대 동맹을 강화하고 있는 마당이다.

이번에는 김정은 자신 차례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맞다. 전쟁을 선포한 적이 없고 실제로 어딘가를 공격한 적도 없으나, 미국과의 긴장감을 극단에까지 고조시킨 죄란 재판없는 즉결심판 대상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아무도 그를 옹호해 줄 주체가 없는 이상 그의 카드는 오직 '자살 테러'를 암시하는 불장난일 뿐이다. 지금 와서 핵실험을 포기하고 미국에 굴복한다면, 어떤 형태로든지 지속적인 개방의 물결을 타게 되고, 그에 따른 체제붕괴도 불가피하다.

공고한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해 온 김정은으로서는 이제 와서 '핵 포기'란 생각해볼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지도력을 의심받고, 그의 방향성이 꺾이게 된다. 대오가 흐트러지고 통제불능한 상황은 그가 가장 두려워 하는것이다.

트럼프의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유지하고 자국과 지구촌의 안녕을 추구한다면, 그 해법은 자명하다. 북한에서 김정은을 축출하거나 김정은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북핵문제를 한반도와 동북아의 긴장도를 높이는 기제로 활용할 뿐, 막상 결정적일 법한 순간에 멈추곤 한다.

갈수록 불공정이 심화되는 FTA가 그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북한의 쇼에 트럼프가 화답할 때마다 중국과 한국은 막대하고도 과도한 평화유지 비용을 미국시장에 헌납하는 꼴이다. 뻑치기 당하는 느낌이다. 고립무원 속에서 빈사상태에 빠진 김정은이 '이제 끝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측을 깨고 더 큰 미사일을 연속 쏘아올릴 수 있는 배후에는 트럼프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과연 트럼프가 남북 통일을 바랄까. 그럴리가 없어 보인다. 그가 이 땅에 사드를 배치한 순간, 남북한은 물론 한국-중국간 갈등과 긴장의 장기화 전략은 마무리 됐다. 갈등을 고조시켜 이익을 챙기고, 다시 대화를 반복하는, 그러나 결과는 없는 쳇바퀴는 계속 돌 것이다.

한반도의 긴장은 트럼프의 빨대

그는 자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업의 총수다. '호혜주의'라는 국제무역 원칙을 그가 지킬 리 만무하다. 전쟁쯤은 그가 이익을 획득하기 위해 획책하는 전략의 일부일 뿐이다. 그가 조장한 전장터에서 총탄에 맞은 사람의 피가 분출하고 포탄에 사람의 사지가 찢겨 날아 올라 분수처럼 쏟아지는 것이란 그에게 가상 현실에 불과해 보인다.

그는 지난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다"고 선언했다. 중동의 뇌관을 건드린 것이다. 직접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주변 아랍국들이 격분했고, EU를 포함한 수많은 나라들은 트럼프의 선언에 우려와 비난을 표했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트럼프의 선언 당일부터 사흘간을 분노의 날로 선포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위대간 유혈충돌이 벌어지는 등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트럼프가 전쟁을 선언했다며 인티파타(이스라엘에 저항하는 아랍권 민중봉기)를 촉구했다.

극단적인 성향을 가진 아랍권 이슬람 테러단체들과 반 이스라엘 세력에 테러와 전쟁의 명분을 주는 무모한 선언을 감행한 트럼프는 무엇을 얻는 걸까. 미국의 경제, 언론, 정치계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 인구의 2%에 불과하지만 막강 지배층인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었다.

트럼프의 국정지지율은 여전히 바닥(35%)을 기고,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스캔들' 특별검사의 칼날이 트럼프와 최측근들을 점점 조여들고 있다. 이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미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강행' 카드를 던졌고, 그로써 유대인, 보수적 기독교 유권자, 부유한 공화당 기부자 등 지지층 결집을 노렸다는 분석이 높은 설득력을 지닌다.

말하자면, 트럼프의 정책결정이 국가 차원의 원칙이나 일관된 전략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과 개인적 호불호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런 그의 방향성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고립되거나 미국내의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의 독선과 독단적 세계관, 그리고 삿되고 부당한 이익추구의 희생양이 된 이 나라의 꼴을 바라보며 또 한 해를 넘기려 한다. 남북한의 전쟁 위기감이 고조된 것이 불안하기보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트럼프의 절제되지 않는 욕망의 사정거리에 우리가 들어있다는 사실 앞에서 패닉에 빠진 채 새해를 맞이할 것이다.

예측이 가능하지만 위험을 피할 수 없다. 이보다 더한 공포가 어디 있겠는가. 올해 이 나라의 부당한 권력이 국민들에 의해 축출된 것처럼 새해에는 북한도 미국도 탄핵의 열풍 속에서 개벽되기를 바라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