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기본에 무지하거나 기본을 망각하면 영영 신인에 머물 수밖에 없다. 우리 정치사에서 안철수와 같은 기대할 만한 인물을 또 만날 수 있을까.

해가 막 바뀌었다. 하지만 수많은 난제들을 이고 지고 넘어 온 달라진 게 없는 새해 벽두다. 정권이 강제 퇴출되고, 권력 3부의 핵심 구석구석에 뿌리를 내렸던 적폐가 하루가 멀다 하고 뽑혀 나오며, 위기의 경제와 안보는 천 길 낭떠러지를 가로지른 외줄 위에 선 채 망연자실이다.

가는 해의 끝에서 어떤 문제에 대해선 해법 찾기를 유보하고 어떤 문제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이들을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오늘이 전혀 새해 같지 않을 것이다. 문제 해결에 협력해야 할 각 정파들은 오히려 국론 분열의 선봉에 서서 공동체의 배를 산으로 몰아가고 있다.

배가 어떻게 되든 고민할 겨를이 없는 정파는 국민의당이다. 가장 큰 굉음을 일으키며 덜컹덜컹 새해로 넘어 왔지만, 애써 올랐던 깎아지른 산중턱에서 제동장치를 잃은 꼴이다. 풍비박산이 뻔한 초읽기에 들어갔으나 고칠 사람이 없다. 타이밍을 놓쳐 걷잡을 수도 없게 됐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의당이 왜 이렇게 되었나. 내일을 열어가야 할 축은 눈앞이 캄캄하다. 길을 지우는 짙은 안개는 바로 안철수다. 그가 주도하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이 화학적 결합이 아니기에 그렇다. 생물학적 결합에는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환경이 다르고 사고의 메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중도 보수'인지 '개혁 보수'인지의 교집합을 원한다는 것이지만, 수를 늘리고 노선의 선명도를 높이는 시너지효과를 획득하자는 것이지만, 그것은 지불해야 할 대가를 너무 크게 요구한다.

교집합 과정에서 구성원들 대부분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호남지역에 기반을 둔 국민의당 소속 의원들은 반 문재인 세력이었을지언정 무슨 노선에 줄을 서지 않았다. 호남 유권자들은 그들을 왜 낳았는가. 문재인 당시 당 대표가 호남지역을 홀대한다는 반감 때문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호남지역에 각별한 공을 들여 온 덕에 이반되었던 민심이 대부분 되돌아 온 상태다. 굳이 말하자면 호남 민심은 보수의 반대쪽에 있다. 국민의당의 창당 정신과 정강·정책도 바른정당과 상반된다. 정체성이 다른 것끼리 합친다고 해서 한 살이 될 리 없다.

야합일 뿐이다. 그래서 안철수가 통합을 선언하고 구성원들의 반대를 거스르며 통합절차를 강행한 순간 국민의당은 와해의 소용돌이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안철수로서는 바른정당과의 합당이 마지막 승부수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합당을 해도 6할 이상의 구성원들을 잃고 패잔병들이 바른정당으로 귀화하는 꼴인데다, 합당이 부결돼도 대표직을 내려놓고 정계를 떠나야 하는 극약처방이 아닐 수 없다. 안철수는 그것을 몰랐을까. 알았더라도 그 길 밖에는 다른 수가 없었으리라.

어쩌면 그가 죽을 자리를 찾았을 수도 있다는 추측에 공감한다. 안철수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국내 유수기업의 CEO이고, 통 큰 나눔을 실천해 온 박애정신이 풍부한 그였다. 나아가 한 분야에서 이른 나이에 성공한 엘리트이기에 부패와는 거리가 멀 것으로 보였고 그래서 시대정신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정계에 진출할 당시에 국민적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새 시대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그가 목하 몰락해 가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정계 퇴장 수순을 밟고 있는 그의 뒷모습은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투영한다. 안철수는 오직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정계에 발을 들였고, 거듭되는 좌절을 극복하지 못한 채 스러져가고 있다.

그는 정치적으로 미숙했다. 2등을 견디지 못했고, 늘 조급했다. 그래서 칭얼거리는 철수였으며, 볼멘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화가 난 철수였다. 그가 가장 못마땅했던 것은 부족해 보이는 족속들이 자신을 이지메 시키고, 정치적 흥행을 위해 바지 대표로 세우는 행태였을 것이다.

그것은 따로 논거를 들 필요가 없을 만큼 그가 고비고비에서 보여준 수많은 태도들이 방증한다. 그렇다. 안철수는 엘리트의식 때문에 섞이지 못했고, 전문가였기 때문에 일반가의 대열에 끼지 못했다. 정치란 국민을 포함하는 다른 이들에게 자기의 생각을 심는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이들의 옳은 생각들을 섬기는 것인데, 그는 반대로 군림하고 싶어 하는 인상만을 보여줬다.

한 분야에서 획득한 권위는 일반화되기 어려운데, 자신을 대우해주지 않는 얄팍하게 박학다식한 일반가들을 원망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우리의 정치는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는 자멸했다. 착하고 순수한 철수, 부당한 정치지형에 저항하는 철수를 어필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고착화 시킬 뿐이었다.

안철수는 '미숙은 부덕이며 죄'라는 정치의 불문율에 거스른 또 하나의 아까운 정치 신인이다. 기본에 무지하거나 기본을 망각하면 영영 신인에 머물 수밖에 없다. 우리 정치사에서 안철수와 같은 기대할 만한 인물을 또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지금도 자신이 최적화 된 대통령감이라고 자부하기에 최후의 정치적 도박을 걸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에게 대통령이 될 수 없다면 정치는 무의미하다. 정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오직 대통령이 되기 위한 이합집산의 역학에 골몰했다. 대통령이 되지 못할 바엔 정계를 떠난다는 게 그의 방향성이다. 헤게모니 다툼에서 밀릴 때마다 조직을 내팽개쳐 온 그의 무책임과 불성실한 행적들은 수두룩하다.

안철수의 패인은 미숙, 2등을 못 견디고 조급해

그가 주변의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었더라면, 정치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을 것이고 험로를 걸어가는 법을 익혔을 것이다. 그가 현자의 말을 들어 자신은 아는 게 없다고 깨우쳤더라면, 여러 상대방의 의견들을 주관에 사로잡혀 튕겨내지 않았을 것이다.

편견 없이 받아들여야 이해할 수 있고 마침내 그 뜻을 밝힐 수 있다. 주변의 뜻을 잘 파악하고 밝히면 사람들이 붙게 되어있다. 그러나 안철수는 무지의 자각을 자기의 신념이나 가치관이 허물어지거나 공격당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너무 강한 신념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이 '사실' 그 자체와는 별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안철수는 누가 옳은가에 경도된 나머지 무엇이 옳은가를 도외시함으로써, 다른 이들의 가치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활용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것이다.

지혜를 모아 세상을 밝히려 하지 않고 자기만 휘황하게 빛을 발하며 독주하려다가 더 밝은 주변 무리들의 빛에 묻혀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무술년 새해의 이정표는 안철수다. 그의 패배는 '단정하거나 고정하지 않고 오직 옳음을 추구한다'거나 '사람들과 두루 잘 어울리되 편 가르기를 하지 않는다'는 정신이 형형하는 논어 9편을 소환한다.

그 4절에 핵심이 있다. "공자는 네 가지를 절대로 하지 않았다. 사사로운 뜻을 갖는 일이 없었고, 기필코 해야 한다는 일이 없었으며, 무리하게 고집부리는 일도 없었고, 자신만을 내세우려는 일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