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17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의혹 수사와 관련해 난데없이 많은 국민들의 관점이라며 들먹이길, 적폐청산 검찰 수사는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보고 있다고 망발했다.

뒤집어 보면 그는 비리 척결이라는 이름으로 벌인 노무현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를 지휘했다고 시인한 꼴이다. 그것은 진보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의 사법처리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말이다.

국민은 청와대가 정치보복에 사법부를 사용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삼권분립을 믿는 국민이라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이 보수 궤멸을 노리는 현 정권의 정치공작에 동원됐다'고 많은 국민들이 보고 있다니, 그가 어떤 방법으로 그러한 국민들의 정서를 표집했는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들이 정말 있기는 할까.

그는 지금 박근혜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이다. 패도(覇道)의 뒤를 따르는 하이에나들 혹은 그 패도에 길들여진 무리들이 광장으로 뛰쳐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들은 진영의 이익에 경도된 채 진실을 보거나 듣지 않기에, 패배에 대한 극도의 거부반응 병을 앓고 있기에.

개인 비리로 궁지에 몰린 그가 '보수 탄압'이라는 말을 내뱉은 것은 '법을 집행하는 이들이 부정(不淨)하다'거나 '진보 권력이 법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것을 함의한다. 직역하면 '보수이기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썼다'이니 광장을 오염시키기에 아주 좋은 찌라시다.

국민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다. 그들이 항용해 왔던 보수 대 진보의 프레임, 그것은 함정이었지만 그들 '보수'는 보수(保守)가 아니라 탐욕으로 뭉친 보수(保首)의 무리였기에 이해(利害)에 끌리는 자들은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문화 속에서는 청와대가 대법원장을 움직여 법원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고, 정부기관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법관들을 사찰하는 것이 상식이다. 정권의 정책 방향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이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불이익을 주며, 진영에 이익을 주는 기업들의 토목사업에 인천공항을 7개 건설할 비용을 쏟아붓는 것은 그들의 의리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보수 탄압'이라는 말 줄기에는 "힘이 있을 땐 4대 강은 물론 자원비리, 방산비리 수사의 칼끝을 유유히 빠져나갔다"는 자백이 달려있다. 그러니 그가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힘이 없어서 당한다'일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그에게 일반 국민들이 좇고 지키는 상궤와 법은 진보진영의 무기일 뿐인 것이다.

잘못에 대한 인식이 없으니 반성을 할 리도 없다. 그러니 청와대가 반박하는 말이 그의 귀에 걸릴 리도 없다. 그가 자신이 한 말로써 현 정부를 모독하고, 사법질서를 부정하고, 정치금도를 벗어났다고 생각할까.

그의 사고체계에 따르면,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문화와 다른 패거리 집단의 우두머리였을 뿐이다. 이제 국민들은 그에게 쏠린 모든 의혹에 대한 수사가 탄력을 받기를 고대한다. 진실을 규명하는 것만이 그가 기도하는 혼란 국면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청와대가 그의 말에 분노를 표출한 것도 불찰이다. 그의 말이 국가의 근간을 흔들었다고 국민들도 생각할까? 하지만 청와대가 그렇게 말한 순간, 그의 말은 좌·우 흑백논리에 불을 붙였다. 더한 아이러니는 문 대통령의 그러한 반응이 사이비 보수를 보수로 환치시킨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명박의 말 한마디가 국가의 근간을 흔들 정도니 그들 패거리가 광장으로 나와 한목소리를 내면 체제라도 전복될 것을 걱정하는 반응이 아닌가. 청와대는 또 그가 "노무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 을 운운한 데 대해 개인적인 분노와 불쾌감까지 표출했다.

그동안 정부를 책임지는 책임감 때문에 여러 유사 사안들에 대해 참아왔으나 국민이 불안해할 얘기를 일방에서 쏟아내는 것을 더 참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라는 공적인 이유도 붙였다. 하지만 대통령이 개인적인 분노와 불쾌감을 누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을까.

또 '참을 수 없었다'의 주어가 '국민이 불안해 할까봐'인 것은, 아직도 집단 지성이 거짓에 놀아난다는 관점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문재인은 자신을 그 집단 지성이 발견하고 선택했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이명박과 그들의 블랙코미디

국민들은 연일 코앞에서 이명박과 그들 패거리의 광기를 보고 있다. 그들은 죄 없는 박근혜를 좌파가 광장을 이용해 끌어내렸다는 말을 입에 달고 부유한다. 이런 블랙코미디가 또 있을까.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건이 세월호와 같다며, 사상자를 막지 못하고 안전관리를 제대로 못한 책임을 지라며 정부를 힐난하고 있다.

그와 같은 견강부회 코미디는 카메라만 다가가면 발작하듯 재연된다. 웃다가도 섬뜩해진다. 어떤 국민이 그들을 정상으로 보겠는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라'는 국민들의 명령은 비정상을 척결하고 정상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현장의 당위에서 비롯했다.

국민에 친근한 대통령의 사적인 감정 표출이 어느 때는 아름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비정상에 박자를 맞추는 사적인 감정 표출은 위험하다. 그로 인해 비정상은 지위를 확보하고 더 큰 확성기 앞에 서게 되며,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다.

정의는 불의 앞에 단호하고 건조해야 한다. 지도자의 공사(公私) 구분이야말로, 문재인 대통령이 추구하는 권위주의와 특권의식 추방의 시작이다. 진정한 적폐청산이라면 한사코 정의의 지표를 좇을 것이고, 밝힌 진실의 빛으로 삿된 것을 드러내는 것이니, 거기에 달리 부연할 말은 없는 법이다.

적폐청산을 역사의 정의와 민주주의 가치를 세우는 일로 여긴다면, 거기에 대해 청와대는 할 말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나라가 비정상의 진창에서 허우적대야만 했던 가장 큰 원인이 삼권분립의 붕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