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여행지, 만경강

내가 태어난 곳은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심지어 옆을 봐도, 논 이였다. 그렇다. 드넓은 평야 지대다. 그리고 그 마을 한가운데에 큰 우물이 있었다. 어릴 적 엄마와 아빠가 양쪽 어깨에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길어오셨었다. 우물에 가시던 엄마와 아빠의 뒤를 쫄랑쫄랑 따라다녔던 기억이 난다. 난 그 물지게를 지어보고 싶어서 떼도 썼다. 정말 철딱서니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양철 물동이를 어깨에 지고 가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너무나 신기했고 정말 어른 같았다. 그래서 나도 빨리 커서 그 물지게를 질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다. 내 주변에는 논밖에 없는 줄 알다가 어느 정도 키가 크니 아빠와 함께 둑에 갔다. 둑 아래로 내려가니 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엄마의 장화를 신고(다행히 엄마는 아주 작으셨고 아빠는 엄청 키가 크셨다) 아빠를 따라 뻘로 들어갔다. 몇 미터 가다 아빠는 바가지를 건네주셨다. 아빠가 건네주시는 바가지로 뻘을 파니 그 안에 자그마한 조개들이 모여있었다. 진짜 그냥 파면 그 안에 조개가 모여있었다. 우린 그 조개를 ‘아사리’라고 불렀다. 잠시만 퍽퍽 긁어대도 금방 한 자루가 되었다. 아빠는 웅덩이 물을 이용하여 ‘아사리’에 묻은 흙을 퍽퍽 씻어낸 후 다시 자루에 담아서 내 손을 잡고 뻘에서 나왔다. 펄 한가운데에서 아빠는 ‘인경아~~아빠 꼭 뒤에 있어야 한다. 너 혼자 다른 데로 가면 안돼~~’라는 말을 중간중간 하시면서 나를 한 번씩 쳐다보셨던 그 눈빛이 아직도 선하다.

바로 내가 아빠와 같이 아사리를 잡던 곳이 ‘만경강’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아빠와 자주 아사리를 잡으러 만경강에 갔었다. 우리 형제가 크고 나니 아빠는 간간이 낚시도 데리고 가주셨다. ‘망둥어’ 낚시였다. 정말 많이 잡혔다. 낚싯대를 드리우면 쉴 여유조차 없이 망둥어가 올라왔다. 아빠는 낚시하고 우리는 주변에서 놀았다. 시끄럽게 떠들고 놀아도 아빠를 비롯한 강태공들은 뭐라 꾸중하시는 분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내 기억인지 아니면 기억의 오류인지는 몰라도 내 눈에는 아빠가 제일 낚시를 잘했다. 낚시를 마칠 땐 우리 대바구니가 한가득 이셨다.

그래서 아빠는 주변 분께 나눠주고 마을 어르신과 나누어서 드시기도 하셨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아사리’가 없다고 엄마가 말씀하신다. 그리고 ‘망둥어’가 그렇게 흔하게 잡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나셔서 ‘망둥어’ 이야기는 더 이상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 내 고향은 간척지였다. 만경강 둑을 막아 논을 만들고 그 한가운데 농사짓는 가옥들이 모여 촌락을 이루고 살았다. 어릴 적 어른들이 ‘어느 동네 살어?’라고 물으시면서 ‘긍게, 개간지 고만.....’ 이라는 꼭 뒤 말씀이 따라오던 바로 간척지였기 때문이었다.

만경강!
노령산맥의 서사면에서 발원하여 여러 지류인 고산천, 소양천, 전주천, 삼천 등의 하천을 삼례읍 동방에서 합류하여 완주군, 익산시, 김제시, 군산시 옥구군의 저지역을 관류하는 98km에 달하는 하천인 만경강은 흘러 흘러서 바다로 이어진다. 예전에는 산환포(김제시), 목천포(익산시), 사천리(익산시) 등의 선착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렵다. ‘만경강’의 명칭은 1929년에 발간된 조선환여승람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이전에는 ‘사수’로 불리웠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전주부편’을 보면 ‘옥야6면은 남쪽으로 사수와 연하고, 서쪽으로는 김제와 접한다.’ 는 기록이다.

만경강이 오늘의 모습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은 일제가 쌀 수탈을 위해 대대적인 쌀 증산 화를 위하여 만경강 수리 사업을 벌였다. 1924년 시작된 수리 사업은 16년간을 거쳐 오늘날의 만경강의 모습이 되었다. 만경강은 농업용수와 생활용수 공급 역할 외에도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수로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지금이야 토양이 쌓이고 물이 얕지만 조선 영조때 까지도 배와 수레가 닿았다고 한다(전주시사). 또한 대동여지도에 나타나 있는 대규모 포구나 나루터로 고사포, 동자포, 회포, 목천포, 춘포, 사천포 등 12개가 있어 교통수단이자 국가의 세금인 미곡을 운송로로써 소금 해물 잡화 등이 이곳을 통해 드나들었다 한다.

하지만 1933년 만경대교가 개통되면서 만경강이 수로로서 역할은 미비해졌고, 이후 6.25 전쟁 때 폭격을 받아 한때 통행이 중단되었다가, 54년과 87년 복구가 이루어졌다.
일제의 치수 사업이 이루어지기 전에 익산의 구릉지에서 만경강까지, 그리고 만경대교 부근 탑천 일대 거의 전부가 갈대밭으로 ‘노전백리(蘆田百里)를 이루었고, 곳곳 배후 습지에 개연꽃이 만발해 ‘옥야홍련(沃野紅蓮)’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장관을 연출했다고 한다. 또한 만경강 본류인 백구정과 탑천, 부용천에 제수문(制水門)을 설치하기 전에는 춘포면 인수리 앞 봉개(춘포) 아래까지 만조의 영향으로 상선이 와서 정박하였다. 또한 익산의 배산(盃山)뒤 다가포까지 젓거리 배들이 내왕하였다. 그리고 익산시 춘포면 대장촌(大場村)까지 들어갔으며 그사이에 신환포(김제)와 목천포(익산) 등의 선착장이 있어 농산물 운송에 많이 이용되어 왔다 한다.

지금까지도 만경강은 우리 생활 속에 있다. 갑자기 학교 수업 시간에 외웠던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토기가 떠오른다. 빗살무늬토기는 아랫부분이 평평하지 않고 뾰족하다. 선사시대 선조들은 주로 해안가에 살면서 그에 맞는 토기를 제작해서 쓰셨던 거다.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물을 중심으로 이기를 만들고 문화를 만들어 갔다. 또한 생활을 위해 지역 간 이동이 발생하였고 그러면서 문화가 확산되고 발전되었다. 선사시대는 먹고 살기 위한 이동이었다면 지금의 이동 목적은 너무나 다양해졌다. 그중 하나가 관광이다. 그런데 그 관광도 더 세분화되었다. ‘일상 속 여행’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다.

난 만경강을 ‘우리 생활 속, 강’이라고 생각한다. ‘생활 속, 강’하면 ‘수변도시’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 사업이 한창이다. 새만금의 수공간을 활용한 친환경 스마트 수변도시가 완료되면 6.6㎢(200만 평)의 규모로 2만5천 명 정도가 정주할 수 있는 도시가 된다고 한다. 2020년 12월 18일 착공식 이후 2024년 조성공사가 완료될 예정이라 한다. 지난 5월 방조제와 사업 부지를 연결하는 진입도로가 연결된 탓에 더욱 속도감 있는 매립공사가 진행 중이라 하니 관심을 가져본다.

익산시도 만경강 수변 자원 활용 사업 박차를 가한다고 한다. 익산시가 발표한 자료(‘21.8월)에 따르며 익산시 남부권역 만경강 일원에 추진 중인 수변도시 조성사업이 경제성이 충분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새만금 배후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익산시는 만경강 수변 자원을 활용해 청년층과 은퇴자를 위한 공동주택과 은퇴자 타운을 조성하고 의료와 문화시설, 초등학교, 공원 등의 인프라가 포함된 친환경 주거단지 조성을 추진할 예정이다.

다시 우리의 강 만경강으로 되돌아와 보자. 전 세계 관광도시에 주요한 자원은 물이다. 특히 강을 활용한 관광도시 사례는 너무나 많다. 내가 생각하는 관광도시는 주민이 먼저다. 주민의 삶이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관광도시를 만경강에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한다.

만경강, 예로부터 우리 생활과 너무 밀접한 강, 그래서 만경강은 우리 생활과 더 친숙한 강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관광도 변했다. ‘일상 속 여행‘ 이라 한다. 이런 키워드에 맞춰 난 ’내부마케팅‘ 방식을 난 참 좋아한다. 관광의 대상을 외부방문객도 중요하지만 우선 주민의 삶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만경강이 우리 일상 속 여행이 되는 그런 강이었으면 한다. 높고 화려한 고층 건물보다는 편안한 생활 속 익산을 즐길 수 있는 만경강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또 하나의 가능성 익산 만경강이 있어 익산은 관광도시가 될 수 있다.우리 익산에는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인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등 세계유산이 있다. ‘7세기 우리 백제 선조인들이 미륵사와 왕궁 유적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을까?’라고 생각을 하니 이젠 흐뭇하다. 그전에는 막연했던 게 이젠 그림이 그려질 듯하다.

익산 관광이 가상세계로 확장될 시기이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 증강현실(Augumented Reality)로 대표되는 메타버스(Metaverse)의 비현실적 동화 속의 세계가 3D 그래픽으로 가상세계 속에서 재탄생할 수 있게 된다. 익산의 관광이 재탄생할 수 있다는 거다. 우리 선조가 남겨준 익산의 역사문화가 이제 시공간을 넘을 순간이다. 선조들이 남겨주신 소중한 문화를 활용하여 익산이 이제는 글로벌 관광도시로 나아가보자. 그래서 익산은 관광도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