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곡(인문운동가)

 고증되거나 기록된 인간의 역사에서 최대의 지적 혁명의 시기는 지금부터 2,500여년전 수 백년간에 걸친 이른바 ‘축(軸)의 시대’로 보인다. 이 시기에 동서양의 여러 곳에서 이른바 우리가 성인(聖人)이라고 부르는 인격들이 다양한 문화를 배경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후 인간의 정신세계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쳐온 종교 및 사상의 원석(原石)으로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에 버금가는 제2의 축(軸)의 시대를 맞고 있다. 그 동안의 물질적 제도적 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축(軸)의 시대에 선각자들이 열어간 인간 진화의 목표를 보편화 현실화할 수 있는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인류의 보편적인 질적 도약을 가능케하는 인공지능(AI) 시대의 지적혁명이 밝은 전망으로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팬데믹이나 기후변화 등 인류라는 종(種)의 존속 자체가 물어지는 위기와 함께 오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진행될 지적 혁명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예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총론적으로는 진행될 방향을 예상할 수 있다.

첫째는 배우는 것(學)의 대상과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정보를 기억하고 종합하고 분류하는 것과 같은 인공지능이 훨씬 잘 할 수 있는 일을 교육 기관(學校)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헛 공사가 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기계다. 그 기계에 정보를 입력하는 것은 사람이다.
이제 사람의 고유한 이 능력 즉 새로운 정보를 찾고 상상하고 창조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학(學)이 될 것이다.
이 학(學)이야말로 축(軸)의 시대 성현들의 탐구와 깨달음의 태도를 보편화하는 과정으로 될 것이다.
특히 학(學)에 대해서는 무지(無知)의 자각을 바탕으로 하면서 불가지론이나 회의론에 빠지지 않고 끝까지 사실의 세계를 탐구하려고 한 공자를 대표적인 사례로 이야기할 수 있다.(이 칼럼 두 번째에서 이야기한 바가 있다)
공자는 스승 중의 스승으로 알려져  마치 ‘교(敎)’가 그의 본령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자신은 그의 가장 큰 특성을 ‘학(學)’이라고 말하고 있다.
논어 공야장 편 28장에서 “집 열채 정도의 작은 마을에도 ‘충’과 ‘신’에서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겠지만, 나처럼 배우기를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다.” 十室之邑 必有忠信 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논어 첫 편 첫 문장으로 나오는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탐구하고 실천하는 즐거움이다.  과거의 축적된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새 것을 찾아나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억하고 암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학(學)의 본령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식의 학습은 즐거울 수가 없다.
공자는 이 학(學)을 열다섯에 시작했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학제(學制)로 보면 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나이다.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하고 싶고 소질이 있고 배우고 싶어 하는 분야를 시작할 가장 적정한 나이다.
 돈과 출세로 이어지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한 시험을 위한 교육에 획일적으로 투입되는 이미 용도폐기되어 마땅한 방식에서 벗어나야 자신의 행복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와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시대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교육제도와 그 내용이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바뀔 것이다.
아마도 지금과 같은 학교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인공지능에 입력할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개발하고  창조하는 사람의 지적 능력과는 다른 차원에서 동물일반의 본능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성 즉 제2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숭고지향성(崇高指向性)’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물질 위주의 각자도생의 이기적 삶으로부터 욕망과 행복의 질을 격상시키는 것이야말로 인류를 그 존속의 위기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길로 보인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과학기술혁명이 높은 생산력을 보장하고, 그 물적 기반 위에서 침범이나 억압이 없는 사회제도를 발전시킨다면, 축(軸)의 시대 성현들의 인간에 대한 이상이 보편화되는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제도로서의 종교는 쇠퇴하겠지만, 인간의 영성(靈性)은 더욱 깊어지고 보편화될 것이다.
석가의 자비, 예수의 사랑, 공자의 인(仁)이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서 체화(體化)될 것이다.
 자본주의가 호혜 상생하는 제도로 무리 없이 이행할 수 있는 조건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전한 물적 토대와 사람들의 보편적인 의식의 진화가 새로운 차원으로 융합되는 것에 의해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망을 가로막는 낡은 제도와 의식의 관성이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지배하고 있다.
 최대 과제는 교육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혁명이 어려운 것은 다른 전반적 사회개혁의 종착점이자 동시에 출발점이라는 순환적 연관 때문이다.
내가 유독 교육에 대해서만은 ‘혁명’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 큰 개인적 및 집단적 결단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이 혁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면, 그 사회나 국가는 정체 쇠퇴하고 더 나아가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의 발전은 오히려 인류의 재앙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개혁해야 이런 전망을 가능케하는지를 생각하다보면 우리 시대 사회 개혁의 과제들이 보여올 것이다.
양극화나 특히 현대판 신분제로까지 퇴행하는 이중화를 막는 것, 그 원인으로 되는 여러 요인들을 개혁해야 하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직종(職種) 간의 소득 격차를 일정 수준 이하로 조절하고 적어도 ‘질이 같은 노동에는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제도가 확립됨으로서 직업이나 직장을 둘러싼 우열감(優劣感)으로부터 자유로운 제도와 문화가 필수적이다.
목공(木工)이나 농부가 되는 것과 의사나 판검사가 되는 것이 어떤 차별이나 우열감도 없게 되어야 한다. 나는 인공지능 시대에는 자연친화적인 소농(小農)이나 예술적 감각이 고도로 발현되는 수공예(手工藝) 등 자아실현의 즐거움이 큰 직업들이 가장 인기 있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제 그런 세상을 만들고 대비하기 위해 낡은 제도와 관념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소질과 바람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되는 소정의 기초 교육을 마친 다음, 열다섯의 나이쯤이면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의 길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교육 혁명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 것이 국가 개혁의 핵심과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요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메타버스’는 가상과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가상현실 속에서 사회·경제? 문화적 활동까지 이뤄지는 온라인 공간을 의미한다. 고도의 과학기술능력이 창출하는 세계다. 그러나 그것으로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의 공간에서 물질 위주의 행복관과  각자도생의 차가운 이기주의를 넘어서 단순소박한 삶의 풍요를 즐기는 사이좋은 자연친화적 마을이 만들어져야 한다.  과학기술능력과 숭고(崇高)지향의 가치가 조화를 이루는 것만이 인류를 생태적 재앙으로부터 해방하여, 존속을 넘어 자유와 행복의 길을 보장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