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근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교욱위원회 설치지원

전문위원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하기는 어려우나 책과 관련된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종이책과 전자책에 관한 특강이었는데 아무래도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인 탓인지 전체 내용은 기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대신 어떤 학생의 재치 있는 답변 덕분에 그 강의 자체는 잊을 수 없는 강의가 되었다. 강사가 열심히 강연을 하는 도중에 전자책 기술과 컨텐츠가 발전하고 있는데도 왜 종이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럴싸해 보이는 여러 대답이 나왔지만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 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의 대답이 모든 사람을 무장해제 시켰다.

‘전자책은 책장 넘기는 맛이 없잖아요.’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지식을 얻는 도구로써 필요로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앞의 내용과 같이 책장 넘기는 손맛 때문에 책을 찾고 혹은 책장을 넘길 때의 특유의 투박하면서도 경쾌한 소리 때문에 책을 찾는다. 또 어떤 사람은 단순한 종이 냄새가 아닌 종이와 인쇄 냄새가 황금비율로 섞인 책 특유의 향에 이끌려 책을 찾기도 한다.

그로부터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IT 기술은 불가능한 것들이 가능할 정도로 발전을 했고 컨텐츠 역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져 쌓이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아직 필자 주위에는 나이를 막론하고 전자책을 추천하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 책장 넘기는 맛에 책을 본다는 그 학생의 답변을 그냥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교육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2000년대 중반 무렵부터 동영상 강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몇 학생들이 따로 기계를 준비하여 동영상 강의를 시청했었다. 그러다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이후에는 동영상 강의를 포함하여 온라인 강의로 학습을 하는 학생들의 수가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수를 압도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교육의 형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변화하게 한 신호탄이 동영상 강의였던 셈이다.

교육의 형태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하면서 교육의 목적 또한 조금씩 그러나 그 속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교육의 목적이 지식 전달에 있음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교육의 가치와 목적이 지식 전달에만 한정되어 있지는 않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오프라인 수업에 비해 온라인 수업은 다른 교육적 가치와 목적보다 지식 전달에 가까운 성향을 가질 확률이 높다.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오프라인 수업을 대신하는 대체제가 역할이 아닌 오프라인 수업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보완재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내용처럼 온라인 수업이 오프라인 수업의 보완재 역할을 할 경우 온라인 수업의 부족한 부분을 오프라인에서 채워줄 수 있기 때문에 우려되는 점이 크지 않다. 그러나 반대로 온라인 수업의 지식 전달 외 다른 교육적 가치와 목적을 보완해줄 장치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온라인 수업이 오프라인 수업의 대체제 역할을 하는 경우에는 우려되는 점이 많다.

시대와 교육방식 변화는 학교의 역할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전 학교는 오프라인 수업 위주에서 온라인 수업을 잘 활용하여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면 지금의 학교는 반대가 되어 온라인 수업 위주에 오프라인 수업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학교무용론이 나오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역할에 상관 없이 학생들이 예쁜 책이 될 수 있도록 내용 뿐만 아니라 디자인, 표지, 교정까지 꼼꼼히 디렉팅해줘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