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요양병원에 면회를 갔다. 90세의 연세로 집에서 생활하시면서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던 외숙모셨다. 한 달 전 실내에서 낙상으로 골반이 골절되어 병원 치료 후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정도 되신 때였다.

투명한 아크릴판으로 양쪽이 완전히 분리된 공간에서 15분간 면회를 했다. 면회 시간 내내 구슬피 눈물을 흘리셨다. 마음을 편히 하시고 식사와 재활에 힘쓰셔야 빨리 나으실 수 있다고 말씀드렸지만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말이 쉽지 그러기가 쉬운 일인가? 진한 슬픔이 전해져와 마음이 많이 아려왔다.

요양병원의 이 생활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불길한 직감의 눈물이셨을까? 길고도 길 수 있는 노년의 시간은 혼자 대처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무게로 다가온다.

몇 가지 통계를 살펴보면 훨씬 명료해진다. 2020년 대한민국 남성 기대수명 80.5세, 건강수명 65.6세이다. 평균적으로 14.9년을 아프다가 세상을 떠난다는 얘기이다. 여성의 기대수명은 86.5세, 건강수명 67.2세이다. 평균적으로 노년의 19.3년을 질병에 시달린다는 얘기다. 놀랄 정도로 끔찍하게 긴 시간이다.

OECD에서 대한민국의 기대수명은 최상위권인데 건강수명을 살펴보면 그만큼 오래 병마에 시달린다는 비극적인 이면이 있는 것이다. 북유럽 나라들같이 균형 잡힌 워라밸과 잘 정립된 1차 의료 등 공공의료체계 위에서 예방과 일상의 건강관리에 힘쓰는 나라의 국민들은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가 10년 이내이다.

스웨덴의 경우 7~8년 정도이다. 그에 비하면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평균 10년 이상을 더 질병에 시달린다. 무한경쟁 적자생존의 정글 사회에서 심신을 갈아 넣으며 살아내야 하는 치열한 현실의 결과일 것이다.

익산시민을 대상으로 한 익산시 사회조사를 살펴보아도 그 상황을 알 수 있다. 65세 이상 노인이 느끼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건강문제가 42.4%, 경제적 문제 41.7%, 외로움과 소외감이 10% 순이다. 65세 이상의 노인이 희망하는 복지서비스는 의료서비스 확대 64.8%, 일자리 14.2%, 소외노인지원강화 7.5%의 순이다. 고령친화서비스 수요는 건강지원서비스 47.2%, 급식서비스 13.5%, 요양서비스 11.9%, 일자리서비스 8.4%순이다. 노인요양서비스 수요는 일상생활지원 65.9%, 식사지원 12.8%, 운동재활지원 8.9%, 안전확인 5.3%의 순이다.

부모님 부양에 대한 익산시민들의 견해는 스스로 해결 10.4%, 가족 18.4%, 가족, 정부, 사회가 함께 64.3%, 정부와 사회 6.8%이다. 이제 함께 준비해야 한다.

지난 2020년 말 65세 이상의 익산시민 비율이 19.9%였다. 초고령사회(20%)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100세 이상 익산시민이 무려 106명이다. 생각보다 훨씬 오래 살아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는 긴 노년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은 질병, 빈곤, 외로움 속에서 끔찍한 악몽 이상의 비극일 가능성이 크다.

의료보험, 장기노인요양보험, 각종 복지서비스와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사각지대도 많고 각각의 서비스가 연계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또 각각의 서비스의 질도 문제이다. 무엇을 위한 서비스인가? 서비스의 질은 제대로 평가되고 개선되고 있는가? 개개인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적절한 의료서비스와 복지서비스를 받으며 가급적 본인이 살아왔던 일상을 최대한 길게 마지막까지 영위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노인들의 대부분은 가능하다면 살고 있던 집에서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의료서비스와 복지서비스의 양과 질을 계속 개선하고 강화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비스들을 연계해서 개개별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가장 최선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는 정부, 가족, 지역사회가 함께 팔을 걷어 부쳐야 가능한 일이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포괄케어라는 이름으로 지역사회 통합돌봄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2016년 일본 후생노동성은 ‘우리가 모두 같이’, ‘지역공생사회의 실현을 향한 지역포괄지원체계’라는 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노인에서 출발하여 장애인, 취약계층, 어린이를 모두 포괄하는 접근을 하고 있다.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은 ‘개호(돌봄)가 필요하게 되어도 익숙한 지역에서 그 사람다운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의료, 개호, 예방, 생활 지원, 주거를 포괄적이고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익숙한 지역에서 최후까지‘라고 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커뮤니티케어 추진본부를 구성했다.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를 돌봄(Care)을 필요로 하는 주민들이 자택이나 그룹홈 등 지역사회(Community)에 거주하면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복지급여와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자아실현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려는 혁신적인 사회서비스 체계라고 제시하고 있다.

돌볼 사람이 없어서 병원에 맡겨지는 사회적 입원을 최소화하고 자기가 살던 곳에서 적절히 돌봄을 받다가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 통합 돌봄체계를 만들자는 게 커뮤니티 케어의 취지인 것이다. 2019년부터 8개 기초지자체를 시작으로 해서 선도사업이 실시되고 있으며, 2025년까지 지역사회 통합돌봄 제공기반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돌봄안심주택제공, 독립생활 및 낙상예방을 위한 집수리, 찾아가는 건강관리 ‘주민건강센터’ 대폭 확충, 방문의료 본격 제공, 운동과 건강예방 프로그램 활성화, 차세대 노인장기요양보험 구축, 종합재가센터 설치해 서비스 통합 제공과 품질 향상, 재가 의료급여 신설, 공급자 중심의 분절적인 서비스 칸막이 해소, 지역사회 민간 공공협력으로 사람 중심의 서비스 연계, 민관서비스 제공 인력 및 사례관리 인력 대폭 확충 등이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익산시민들에게 절박한 내용들이다.

시가 앞장서고 익산의 지역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준비해야 한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고 정부 선도사업에도 제일 먼저 나섰어야 했다. 어설픈 모방과 성과주의를 넘어서 고립되고 방치되는 어른들이 없는 익산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의 어른들을 존엄하게 모시겠다는 오직 그 마음 하나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