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곡

(인문운동가)

‘진정으로 자유롭고 자주적인 사람으로 되고 싶지 않은가!’
공자의 군자(君子)론은 이런 권유를 일관되고 간절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나에는 다가온다.
‘밖으로부터의 자유’는 과학기술과 사회제도의 진전으로 상당히 진척되었지만, ‘내 안의 자유’는 그다지 진척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후퇴한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 결과로 인공지능(AI) 시대와 기후위기 시대가 겹치고 있는 것이다.

① ‘내 안의 자유’는 ‘자기중심의 확증편향’에서 벗어날 때 확장된다.
공자가 마침내 도달했다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하고 싶은 대로 해도 세상의 큰 질서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인간이 그려볼 수 있는 대자유의 세계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순(耳順)을 거친다. 자신과 다른 어떤 주장에도 귀가 열리는 것이다. 즉 아집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개인의 해방은 자유의 지평을 넓히는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내 멋대로의 자유’로 인식되는 수준에서는 그것은 내면적 부자유의 올가미에 묶일 수가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것은 기술문명이나 제도가 아무리 바뀌어도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고 큰 아이는 사회 속에서 심한 부자유를 겪게 된다.

<공자 말하기를, “군자는 세상 모든 일에 전적으로 옳다거나 전적으로 옳지 않다고 하는 단정이 없이, 오직 의를 좇을 뿐이다.” 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지금 우리의 정치적 사상적 혼돈을 넘어서는데 가장 중요한 과제다.
‘자신의 생각이 틀림없다’는 단정은 도덕적으로 흠이 있는 사고방식이라기보다, 전혀 근거 없는 비과학적인 사고방식이며,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다.
확증편향으로 편을 갈라 의(義)를 추구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래도 3.9 대선까지는 미움과 분노의 악성 편가름이 우리를 힘들게 할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자신의 선택을 ‘자유’롭게 투표장에서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은 어렵게 쟁취한  양보할 수 없는 권리이다.
 그런데 그 ‘자유’를 내면적으로 제약하는 것이 집단적 확증편향이라는 인식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정치문화의 선진화로 가는 길이다.
정치가 선진화되면 우리는 21세기 인류가 만나고 있는 도전과 전환의 시대를 앞장서서 열어갈 수 있는 훌륭한 밑천들을 만들어온 나라다.

② 타자에게 굴종하거나 지배되지 않고 자주적으로 당당히 서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집이 강하거나 자기주장을 여간해서 꺾지 않는 상태로 생각하는 것은 가장 범하기 쉬운 착각이며 잘못이다.
이런 사람은 누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거나, 자기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면 화(怒)가 나게 된다.
노(怒)는 노예(奴)와 마음(心)이 합성된 단어다. 이것이야말로 근원적으로 자주성을 뺏기는 부자유한 상태다.
논어 1편 첫 장 가운데 세 번째 구절에서 군자(君子)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데, ‘자주적 인간’의 핵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부지이불온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不亦君子乎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마음에 노여움(화)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군자가 아니겠는가!)”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자주야말로 진정한 자주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은 확증편향에서 자유로워지는 만큼 튼튼하고 건강해진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비이성적 악성 편가름의 권력 투쟁 과정에서 혹시라도 인류의 보편지향에 역행하는 퇴행적 정치가 등장하여 어렵게 만들어 놓은 물적 토대와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이다. 그것은 나라를 쇠퇴하게 하는 길이어서 ‘자주성’을 원천적으로 잃어버리는 과정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③ 자유롭고 자주적인 사람의 일상적 삶은 기쁨과 평화다.
논어에는 공자가 가장 신뢰한 안회(顔回)를 찬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어질구나, 회여! 한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곳에 산다면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디기 어려운데 회는 그 즐거움을 잃지 않는구나! 어질구나, 회여.”
근엄한 도덕주의나 경건한 윤리주의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불개기락(不改其樂; 즐거움을 잃지 않는다)하는 것을 공자는 자유롭고 자주적인 인간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고 있는 것이다.
논어의 잘 알려진 첫 장에서 기쁨(說)과 즐거움(樂)이 핵심이 되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공자는 부(富)를 행복의 필요조건으로 중시하면서도, 정신적 성숙(敎)을 행복의 충분조건으로 제시한다.
그 정신적 성숙의 목표에 대해 자공과의 대화는 자유롭고 자주적인 인간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공자의 생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자공의  “가난하여도 아첨하지 않고(貧而無諂), 부유하여도 교만하지 않으면(富而無驕) 어떻습니까” 하는 물음에 공자는 “괜찮은 말이지만, 가난하여도 즐거움을 잃지 않고(貧而樂), 부유하여도 예를 좋아하는 것(富而好禮)만은 못하지 않겠는가?”고 답하며,
가난하면서도 정신적 가치를 즐기는 것과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나는 부이호례의 례(禮)를 보통 말하는 예절로서가 아니라, 탐욕에서 자유로워진 부자(富者)의 적극적인 실천으로서 ‘나눔’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탐욕에서 자유로워질 때 인간으로서 진정한 행복과 만나게 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질적 결핍이나 사회적 억압과 착취로부터는 공자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가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자유롭지도 행복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인류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는 위기와 만나고 있다.
이제 바깥에 대한 자유(과학기술능력)와 내면의 자유(자기중심성의 지양)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사활적 과제로 되고 있는 것이다.

군자를 현대에 불러내 ‘끊임없이 진리(眞理)와 의(義)를 추구하는 자주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읽는다면, 새로운 세상을 위해 나아가게 하는 근원적 동력은 무엇일까?
아집과 탐욕에서 벗어나 자연과의 아름다운 조화 속에서 인간이 지닌 숭고지향성을 마음껏 발현해가는 기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