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곡

(인문운동가)

논어 7편 20장에 아주 간단한 구절이 나온다.
공자의 말이 아니라, 제자들이 공자에 대해 말한 것이다.
‘공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았다’
괴이(怪異)한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그의 사상의 토대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
공자가 너무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만을 하니까 어떤 제자가 공자의 아들에게  혹시 자기들에게 하지 않는 이야기를 가르치는 일이 없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올 정도다.

힘을 숭상하지 않았다. 국가를 운영하는 것도 강제력보다는 덕치를 강조한다.
공자의 말이다.
“법제로 다스리고 형벌로 질서를 유지하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는데 급급하여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다. 덕으로 다스리고 예로서 질서를 유지하면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바르게 될 것이다”(2-4)

불의(不義)에 대항하여 의(義)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이 나아가야할 길이지만, 합리적 도리가  실종되는 패란(悖亂)이나 피해가 고스란히 백성의 몫이 되는 민란(民亂)을 걱정하였다.
나도 이번 대선 과정에서 특히 의식계(意識界)의 혼란이 가장 안타까웠다.
현실의 이해관계와 바라보는 세계의 다름에 의해 편이 갈라지고 서로 경쟁하면서 평화적인 정권의 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가 어렵게 발전시켜온 민주주의다. 그러나 이성이나 상식이 실종되는 과거 집착적이며 퇴영적인 비정상적 편가름은 민주주의에 역행(逆行)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이 그 바닥을 치고 반전(反轉)의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귀신이나 죽음 이후에 대해 말하는 일이 드물었다.
계로가 귀신 섬기는 일에 대하여 묻자, 공자 말하기를, “아직 사람 섬기는 일도 능히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그러면 죽음은 어떠합니까?”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는가.” (11-11)
그는 먼저 사람을 섬기고, 삶에 충실하라고 이야기한다.
죽음에 대해서는 아주 짧은 말을 남기기도 한다.                  
“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4-8)

공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축적물을 어떤 사람은 유교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유학이라고 한다.
확실히 기독교나 불교와는 다른 점이 있다.
공자는 신(神)이나 내세(來世), 세상의 기원(起源)이나 이적(異蹟) 등에 관한 논의를 극히 삼간다.
그러다보니 어떤 면에서 예수나 석가 또는 노자에 비해 한 수 아래로 취급되기도 한다.
그는 그런 분야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미지(未知)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그것을 탐구하는 것을 시급한 일로 보지 않는 견해를 취한다.
이것을 약점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바로 이런 태도가 현대인들에게 과학적이고 실제적인 태도로 다가올 수 있고, 또한 기독교나 불교 등 어떤 고등종교와도 대립되지 않는 태도로 될 수 있다.
그의 인간 이해는 대단히 실사구시적이다.
따라서 공자의 인간 이해를 초월하는 종교라면, 공자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 미신(迷信)이나 사교(邪敎)로 떨어지지 않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 같다고 한다면 무리한 표현이 될까?

공자는 심오한 추상적인 언어를 별로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제자들의 눈에 비친 공자의 모습이 대단히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다.
‘공자는 네가지를 끊었는데, 무의 무필 무고 무아가 그것이다’ 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9-4)
첫째는 무의(毋意)다.
세상에 자기 뜻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제자들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철저한 무지(無知)의 자각에 바탕을 둔 근원적 유연함이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내 생각이 틀림없다’는 아집(我執)이 사라진 것이다.

둘째는 무필(毋必)이다.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없다’라는 말인데, 이것은 무책임하거나 의지박약이거나 추진력이 약한 것과는 전혀 성질이 다르다.
그런데 제자들에 비친 공자의 모습은 무필(毋必)이었다.
소아(小我)의 강박 관념이나 의무감으로부터 해방된, 하늘 땅 사람이 하나로 되는 대아(大我)의 걸림 없는 추진력이다.

셋째는 무고(毋固)다.
흐물흐물하거나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모습이 아니다.
때로는 강하게 자기 생각을 피력하기도 한다.
그런데 보다 좋은 생각이나 견해에 완전히 열려 있다.
이것은 무지의 자각과 진리에 대한 설렘과 탐구로부터 자연스럽게 울어나는 것이다.

넷째는 무아(毋我)다.
이것은 다른 데서 말하는 무아(無我)와 약간 다르게 다가온다.
 노력해서 자의식(自意識)으로부터 해방된 모습이 연상된다.
열등감이나 우월감, 시기와 질투, 비교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운 공자의 모습이 제자들에게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자유롭게 누구에게나 어떤 생각에나 열려 있고 진리를 향해서 침식을 잃을 정도로 기쁘게 몰입하는 공자의 모습이야말로 제자들에게는 경이로운 달인(達人)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제 시대는 바뀌어 공자 정도의 현인이 아니면 알기 어려웠던 통찰이 누구나 과학적으로 이해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물질적·제도적 준비도 꽤 마련하였다.
나는 나라의 여러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한 단계 더 높이 비상飛翔할 수 있는 저력이 우리 국민들에게 있다고 믿는다.
 분노와 증오의 편가름을 넘어 갇힌 상상력을 해방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데, 인문적 수준을 높이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유학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는 왕초보의 호기(浩氣)를 너그럽게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리며, ‘공자의 변명’을 마치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