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홍

협동사회연구소 대표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세운 정부가 5년 만에 무너지고 적폐세력으로 심판받았던 세력의 공천자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촛불혁명의 기대와 염원에 비추어 실망스러웠던 5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분간은 준비되지 않은 무능과 반동적 탐욕 앞에서 고통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무엇을 성찰할 것인가? 유권자의 선택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미래를 선택하지 못하고 회피 선거, 심판 선거에 머물러야 했던 유권자들의 비애에 대한 깊은 공감으로부터 성찰해야 한다. 냉소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 있는 정치 현실을 더 이용하고 부추기는 남 탓 대선이었다는데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특히 민주당이 과감하고 장기적인 정치개혁에 나서는 것이 이 비싼 수업료의 제 값을 하게 하는 빠른 길이라고 믿는다. 12척이 아니라 과반을 훌쩍 넘는 172석의 거대정당이고 2년 가까운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개혁 농성에 들어갔었던 74명의 의원들에게 각별히 기대한다.

먼저, 정치적 약속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민주당은 대선 직전인 2월 24일,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3인 이상 중대선거구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2005년 8월 4일에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도를 도입할 당시 원래 제출된 입법안은 3인~5인이었다.

그랬던 것이 최종 입법과정에서 거대 양당의 야합으로 2인~4인으로 바뀌었다. 공직선거법 제26조 ②항은 ‘하나의 자치구·시·군의원지역구에서 선출할 지역구자치구·시·군의원정수는 2인 이상 4인 이하로 하며, 그 자치구·시·군의원지역구의 명칭·구역 및 의원정수는 시·도조례로 정한다’로 규정되어 있다. 동 법 제 26조 ④항에서는 ‘4인 이상 선출하는 때에는 2개 이상의 지역선거구로 분할할 수 있다’고 해서 2인 선거구의 근거가 되고 있다.

지난 대선 TV토론회에서 윤석열 당선인은 정치를 하기 전부터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해 왔다고 했고,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시종일관 다당제 정치개혁을 주장했었는데 지금은 전혀 모르쇠이다. 물론 아무 기대도 없다. 선거법 26조 2항 개정을 통한 2인 선거구제 폐지는 작은 개혁이다. 만약 법 개정이 무위로 돌아간다면 대구 경북 외 지역에서 광역의회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현행법에 따라 시도조례로 기초의원정수를 정하는 방법이 있다.

의지가 확실하다면 대구경북지역 외에서 방법이 있는 것이다. 상대 탓은 절반의 문제이고 결국 스스로 의지의 문제이다. 무엇을 위한 정치인가를 분명히 할 때이다.
우리 미래를 결정할 장기적 정치개혁에 제대로 나서는 것이 진정한 성찰의 길이다.

정치든 경제든 민주주의의 최대 장애물은 독점이다. 독점으로 인한 무능과 부패야말로 피할 수 없는 철의 법칙이다. 성찰과 혁신의 결과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제대로 제도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치민주화가 경제민주화를 이끌어 낸다. 선거제도 개편이 정치민주화의 가장 중요한 최우선 과제이다. 누더기가 된 준연동형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제대로 된 연동형 선거제도로 개혁해야 한다. 2024년 4월 총선의 1년 전까지는 이 과제에 있는 힘을 집중해야 한다. 사표를 없애고 국민의 한표 한표가 그들의 의회 대표를 구성하는데 쓰여서 국민을 그대로 닮은 의회가 구성되어야 한다. 표의 등가성, 비례성, 대표성을 제대로 높여가야 한다.

지역주의, 세대갈등, 계층갈등, 불평등과 기후위기 문제까지를 통합적으로 풀어나가는 정치가 시작될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서 의회개혁을 이룬 사례는 넘치게 많고, 의회개혁이 되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 구조 개편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연동형 개혁이 이뤄진다면 의회 중심 책임정치, 정당 중심 책임정치가 시작될 것이다.

개인에 너무 의존도가 큰 대통령제보다는 집단의 정치책임을 묻는 의원내각제가 선호되고 잘 어울리는 권력구조가 될 것이다. 2024년 총선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난다면 2026년 지방선거에서 광역의회와 기초의회도 제대로 개혁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정세에 따라 한 당이 광역의회를 거의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이런 구조는 확실히 바뀌어야 한다. 광역의회도 국회처럼 연동형비례제도로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최선의 개혁안이 될 것이다. 지역주의는 발붙일 곳을 잃게 될 것이다. 도민의 구성을 그대로 닮은 광역의회는 적절한 균형과 경쟁을 통해서 정치의 질을 높이고 갈등을 통합해나가는 유능한 대의정치의 신뢰를 쌓아가게 될 것이다. 또한 중앙정치 예속성을 극복하고 도민들의 바램이 창의적으로 반영되는 명실상부한 지방자치가 시작되게 될 것이다.

3단계 행정체계 개편도 쉽지 않은 개혁과제이지만 현재와 같은 3단계 체계하에서라면 기초의회 구성도 개혁과제이다. 사실 중대선거구제는 소선구제만큼의 장단점이 반대로 존재한다. 같은 당의 후보자가 경쟁하고, 많은 비용이 들며, 표의 등가성도 떨어진다. 지금처럼 선거구 복수공천을 허용하면 정치독과점이 기대만큼 크게 개선되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2인 선거구제를 3인 이상 선거구제로 개편하는 개혁은 사실 민주적 효과가 작은 것이다.

기초의회도 제대로 개혁해야 한다. 여러 안중 100% 비례제 의회로 구성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방자치와 관련해서는 1962년 박정희 쿠데타 정부가 만든 현재의 폐쇄적인 정당법을 폐지하고 정당 활동의 헌법적 자유를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5개 시도에 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조직하고 중앙당은 서울에 두어야 한다는 이런 정당법의 창당 요건은 지방자치시대에 맞지 않는 군사독재시대의 유물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지역정당이 보장되어야 한다. 2027년 대선 전에 권력구조 개편이 이뤄지지 않고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면 결선투표제도가 꼭 도입되어야 한다. 다당제의 필수적 요소이기도 하고 지난 대선처럼 끔찍한 네거티브와 갈등과 분열의 선거전을 극복하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엘리트 출세정치를 넘어서 정당책임정치, 의회책임정치를 향한 정치개혁이 향후 1년 동안 집중되기를 염원한다. 이번 대선수업료의 성찰과 결과로 그런 정치개혁이 이뤄진다면 장기적으로 국민이 승리하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의 기대와 염원이 우여곡절을 넘어서 성취되는 결과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