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홍

협동사회연구소 대표

극한 호우로 너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전국적으로도 많은 피해사례가 전해지고 있지만 우리 지역에도 피해가 너무 크다. 민주화 투쟁이 한창이던 91년에 전노협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아 옥고까지 치렀던 현주억 건축사 본인의 부고를 받고 깜짝 놀랐다. 동네 부근 계곡물이 범람해서 마을 피해를 줄이려고 장애목들을 제거하러 나갔다가 거센 물살에 휩쓸린 것 같다고 한다. 삼가 고인의 안식과 명복을 빈다. 용안에서 채소 농사를 짓던 지인이 보낸 사진을 보니 집이며 하우스며 모두 물에 잠겼다. 마을 사람들 모두 초등학교에 대피해 계시다고 하면서 막막한 마음을 토로한다. 사진만 봐도 눈물이 나오는데 직접 수해를 당한 당사자들이야 오죽 막막할까 가슴이 너무 아프다. 이렇게 많은 비가 오는 것은 생전 처음 봤다는 증언들이 이어진다. 이러한 극한 호우는 목전에 닥친 본격적인 기후위기의 한 표현일 것이다. 이제 삶의 방식에 대전환이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더 큰 위기앞에 모두가 서게 될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해야 할 때이다.
얼마 전 한 청년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놀랐다. 얼마 전까지는 국민연금 가입도 고민하고 했었는데 이제는 욜로족으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한 번뿐인 인생)’의 약자인데 현재의 행복을 즐기며 산다는 것이고 욜로족은 그런 사람을 뜻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니 기후위기나 전쟁을 보니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정치인들과 정치권의 대각성이 요청된다. 엄청난 수해와 인명피해를 겪고 나서도 대책이랍시고 구태의연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더 큰 비극을 방치하는 것이다. 분야별 대책들도 철저히 점검하고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 공동체의 삶의 방식과 관계를 대전환할 수 있는 정책접근과 공론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국민들의 마음과 사회를 통합하고 미래를 대비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분열과 적대, 불신을 가장 앞장서서 조장하고 작은 기득권에 안주하는 행위들로 지탄과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두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존으로 인해 국민들은 지역과 세대, 계층별로 분열되고 있다. 끝없는 적대적 싸움은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 상대를 견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투표하는 상대적 투표층과 무당파층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진보정당들과 소위 제 3지대 정당들은 가혹한 정치 생태계속에서 지리멸렬하거나 거대 양당에 흡수되는 운명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성정치권은 양극화와 기후위기, 지방소멸위기 앞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눈앞에 닥친 생존의 위기앞에서 새로운 정치 대전환의 요청과 갈구는 커져만 가는데 변화의 기회는 없는 것인가?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우후죽순 신당 창당 바람이 불고 있다. 백가쟁당의 신당 창당 논의가 분분하다. 백가쟁당은 생명평화 활동가 주요섭 생명평화연구소장이 백가쟁명이라는 고사성어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백가쟁명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여러 사상가와 그 학파를 일컫는 제자백가들이 다양한 각자의 지론을 자유롭게 논쟁하는 일을 일컫는다. 정치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지만 사상적으로 매우 활발한 모색의 시기였던 것이다. 공자, 묵자, 맹자, 장자 등의 사상가들과 유가, 묵가, 법가, 도가 등의 학파는 모두 그 시대의 익숙한 이름들이다. 위기는 새로운 변화의 기회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누가 하는가? 이 두 가지가 신당 성패의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백가쟁명과 같은 사상적 논쟁과 자유로운 토론이 매우 활발해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이미 국민들의 역량은 기성 정치권의 정보나 지혜를 훨씬 넘어선지 오래이다. 신당 운동이 기성 정당들에 대한 불신에 기대어 총선 때 반짝 표를 구걸하는 행태는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오늘 닥친 위기에 해결책을 제시하고 건강하게 논쟁하며 사회통합, 국민통합이라는 정치의 본령을 위해 충심으로 일하는 그런 세력과 정당을 갈구하는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그리고 정의당까지 현존하는 원내 정당들 모두 신당 창당의 움직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국이다. 직접민주주의 정당이나 지역당처럼 기존의 중앙당과 여의도 중심의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무당층이 30% 내외로 조사되고, 소위 ‘제 3지대 신당’에 대한 지지의견도 절반에 육박하는 형국이다. 기성 정당들의 판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와 대안을 제시하고 이에 부합하는 인물들이 국민을 설득하고 논쟁하는 백가쟁당의 시대를 기대한다.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의 블록체인 플랫폼 정당, 정당의 4요소인 당원 공천 정책 자금이 블록체인 기술의 투명성, 불변성, 안정에 기반해 전혀 새로운 질서와 문화를 이끌 것이다.’
‘국민의 힘도 썩었고 민주당도 무능하다. 새로운 세력이 필요하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증폭시키는 기존 양당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이념과 진영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적인 대안을 만드는 7공화국 신당을 지향한다. 정치적 지배구조 영역에서는 대통령중심제를 ‘의회중심제’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신당은 처음부터 노련한 4050세대와 미래세대의 주역인 청년들이 같이 키를 쥐는 ‘반청반장’정당으로 설계한다.’
‘기존의 전국정당, 국가의 일방주의, 다양성 없는 획일적 표준주의 개발에 맞서 지역적 삶을 지역에서 재발견·발명하고, 스스로 지역 정치의 주체가 되는 지역당 운동이 곧 전환의 첫걸음이다. 생활 밀착형 정치, 밝고 명랑한 정치를 펼치겠다. 낡은 이데올로기와 편가름에서 벗어나 합리적 좌우와 녹색이 어우러지는 연합정당을 만들겠다. 우리는 두 개의 국가를 통한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정착을 이루겠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냉소를 넘어서 대대적인 정치참여에 의한 정치 대전환을 만들어내야 한다. 닥쳐오는 극심한 폭염과 폭우, 가뭄과 산불 그리고 양극화와 지역소멸로부터 우리 공동체를 지켜낼 수 있는 방법과 힘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