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학박사

김성중

얼마 전, 전북 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대통령과 악수하며 “국정 기조를 바꿔야 합니다.”라고 어느 국회의원이 말했다가 대통령 경호원들한테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 나갔습니다.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주 가까이에서 모든 광경을 지켜본 그 누구도 이를 제지하거나 항의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심리학에서 ‘방관자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은데도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돕지 않는 현상을 말합니다. 어떠한 일이 발생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는 뜻입니다. 방관자의 수가 많을수록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적다는 의미에서 구경꾼 효과라고도 불립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책임의 분산’ 때문입니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작아진 책임의 크기는 상황을 회피하게 만듭니다. 동등한 책임을 나눠 갖는다고 가정한다면, 한 명일 때는 100%, 5명일 경우 20%, 100명일 경우 1%의 책임만을 갖게 되는 셈이죠. 실험 결과, 사람의 수가 증가할수록 다른 사람을 돕는 비율은 낮아졌다고 합니다.

둘째, 자신의 마음속으로는 상황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변 사람들은 그 일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다원적 무지’라고 합니다. 일단 태연하게 행동하면서 남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실제로 위급한지를 판단하려 합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면 남들 앞에서 창피는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중요한 상황에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의 판단에 의존하려 합니다. 행동한 후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스스로 억제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도움을 제공하려는 의사는 있지만 불확실성과 두려움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지요.

결국, 방관자 대부분의 속내에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자신에게도 같은 피해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으로 침묵의 순환이 계속되고 서로의 눈치만 보게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이러한 심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불의에 대한 침묵을 단 한 푼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침묵이 습관화되고 방관자의 행태가 자연스러운 모습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하여 필요한 말을 하려는 순간, 자기 자신이 바로 입이 틀어 막히고 강제로 들려 나가는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다른 이들의 방관을 원망하면서 말입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운이 없다면,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현장에서 된통 당할 수도 있습니다. <버스 44>는 홍콩에서 제작된 12분짜리 단편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중국에서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조그마한 마을 교외에서 한 여성 운전자가 모는 버스가 강도를 만납니다. 강도들은 여성 버스 운전자를 강간하려 합니다. 버스 안에 있는 40여 명 승객 중 한 명만이 그녀를 도와주려 하다가 심하게 다치고 나머지 승객들은 모른 척할 뿐입니다.

청년은 승객들에게 그냥 두고 볼 거냐고 소리치지만 다들 고개를 돌립니다. 청년 혼자 강도들을 막아 보려 하지만 두 사람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영화의 대사가 귓가에 맴돕니다. “다들 보고만 있을 건가요?”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여성 운전사는 승객들을 말없이 바라봅니다. 뒤늦게 청년이 버스에 타려 하지만, 운전사는 다친 청년의 승차를 거부하고 버스를 몰고 떠납니다.

낙담한 청년은 다른 승용차를 얻어 타고 길을 가는데, 한쪽에서 교통사고 현장을 수습하는 경찰이 보입니다. 청년이 탔던 44번 버스가 언덕 밑으로 굴러떨어진 것입니다. 운전사와 승객 전원이 사망했다는 경찰의 말에 청년은 허탈한 미소를 짓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혹시라도 44번 버스와 같은 시공간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앞섭니다. 다친 청년을 버스에 못 타도록 적극적이던 승객들의 초조한 눈빛들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격렬한 외침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었음을 역사는 기록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