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의원은 조 교육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단지 들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무시하고 찍어 누르려는 욕구가 너무 강한 나머지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야만 혹은 교만은 어디서 비롯하는가. 권력과 돈을 다 가진 자의 일그러진 자화상일까.

이것은 역병이다.

누군가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발작한다. 본때를 보이겠다는 생각에 집착한다.

머릿속이 과열되고 회로가 엉켜버린다. 통제불능 상태가 된다. 그런 때엔 자신이 저지르는 과오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법이니 부끄러워 할리도 만무하다.

발작을 일으키는 병원체의 전염은 '집착'이 매개한다.

주체 못 하는 권력 혹은 자기애에 대한 집착이 광기의 통로다. 그것은 특수한 환경에서 배양된다. 독점이 일상이며, 필요한 것을 노력하지 않고도 획득하며, 과보호받는 안하무인의 인간 내부에서 번식한다.

지난 6일 새누리당 이은재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발작을 일으켰다. 타깃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었다.

이 의원은 서울시교육청이 MS 오피스를 공개경쟁 방식으로 입찰하지 않고 수의계약 방식으로 일괄 구매한 것은 지방재정법과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법을 떠나서도 경쟁입찰에 부치면 가장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데, 입찰 없이 특정 업체의 제품을 수의계약으로 구입하면서 예산을 낭비했다는 지적이니, 일견 바람직한 국회의원의 활동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맥락이라면, 정부여당 행동대장 이은재 의원으로선 정부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론을 제기해 온 조희연 진보 교육감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린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조 교육감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 의원을 응시했다.

그 바람에 이 의원은 훅 과열됐다. '예상 가격의 99% 이상으로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업체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그렇게 된 거냐'고 추궁한다.

"무조건 입찰하도록 돼 있죠?" 이 의원이 조 교육감의 목을 찍어 누르는 듯하다.

그러나 조 교육감은 건조하게 말한다. "MS 밖에 없는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알아듣지 못한다. 히스테리 상태가 분명한 목소리로 포효한다.

"아니 그러니까~ 그러기 위해서 일부러 거기하고 수의계약 하신거죠~" 자기 생각에 갇혀서 자기가 표출해야 할 것에 사로잡힌 나머지 상대방이 자기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자체에 또 광분하는 것이다.

조 교육감은 굴하지 않는다.

"아니 MS 오피스를 어디에서 삽니까? MS 회사 외에 살 데가 없지 않습니까?" 이 의원은 화성식 질의응답이 오가는 동안 조 교육감이 동문서답한다며 꽥꽥 소리를 지르고 연신 손사래를 쳤다.

질문을 해놓고 대답을 듣지 않겠다는 완고한 태도였다. 영락없이 원하는 대답을 안 해준다고 생떼를 쓰는 코흘리개였다. 눈물만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억울하고 속상한 이 의원이 대화 전반을 재단하며 종국을 선언한다. "이 자리가 어느 자린데 와서 그렇게 막 거짓말 증언하십니까? 사퇴하십쇼!" 조 교육감은 끝내 냉정을 잃지 않았다. 아니, 냉정을 잃고 말 것도 없었다. 이 의원이 날린 부메랑은 조 교육감의 옷깃도 스치지 못한 채 되돌아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 교육감은 정중하게 거듭 "저희가 따로 보고 드리겠습니다"고 했다.

이때, 묘하게도 이 의원이 질의 중간에 조 교육감의 말을 묵살하면서 던진 말이 공허하게 떠돌았다. "일부러 모르고 계시는 건지 동문서답.."

조 교육감은 그런 이 의원에게 따로 잘 설명하면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MS 오피스는 마이크로 소프트사가 독점 생산·판매하는 제품으로 경쟁업체가 없다. 입찰에 부쳐봐야 마이크로 소프트사만 참여하게 된다. 수의계약은 불가피하다. 이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라고 친절하게 보고하고 싶었을까.

또, 이 의원이 지방재정법 제47조 ‘예산의 목적 외 사용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며 지적한 부분인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학교 업무 경감과 예산 절감을 이유로 총 90억 원을 학교 운영비에서 차감해 MS 오피스를 일괄 구매했다"는 데 대해서도 다시 설명해 오해를 풀고 싶었을까.

"MS 오피스를 모든 학교에서 개별적으로 구매하던 것을 교육청이 공동으로 구매해 일선 학교의 업무를 경감한 것은 물론 29억원의 예산절감 효과를 봤다"고 보고하고 싶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는 이미 거듭 설명했는데, 이 의원은 "모든 학교 얘기 마라. 교육청 얘기만 해라. 왜 자꾸 모든 학교 핑계를 대냐"고 대거리를 하지 않았던가.

조 교육감은 알아챘을 것이다. 이 의원의 난수표 같은 질문과 성난 승냥이처럼 날뛰는 행동에서 이 질의가 오직 공격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이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이 이 의원에게 '무식하다' '상식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이 의원은 행정학 박사이며,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및 행정대학원장을 역임했으며,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 외부위원, 제9대 한국행정연구원 원장, 한나라당 여성위원장, 한나라당 원내 부대표 등을 역임했고, 재선 국회의원이며, 중년의 나이에 해당하는 만 64세다.

이 의원은 조 교육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단지 들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무시하고 찍어 누르려는 욕구가 너무 강한 나머지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야만 혹은 교만은 어디서 비롯하는가. 권력과 돈을 다 가진 자의 일그러진 자화상일까. 그의 재산은 18대 국회의원 4년 동안 40억원이나 불어나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을 향해 "멍텅구리만 모였다"고 일갈했던 그가 혹여라도 무식하겠는가. "용산 참사는 도심 테러"라고 발언하는 그는 기득권 세력의 표상이 명백하다.

그에게는 세상 돈이 다 자기 돈이다. 한국행정연구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국가예산으로 12차례에 걸쳐 장을 보고, '에르메스' 넥타이나 '아닉구딸' 향수 같은 명품 브랜드도 구입한 바 있다.

그가 2010년 5월 23일 자신의 트위터에 게시한 "너무도 당당한 그들의 쓰레기 같은 망언에 구역질과 함께 '참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은 왜일까"라는 말이 여울 위의 햇살처럼 눈을 찌른다.

그의 안하무인 결정판은 18대 국회에서 '미디어법' 국회 의결을 놓고 여·야가 대치하던 때의 한 장면일 것이다.

그는 당시 국회 대회의실에서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멱살을 잡고 끌어내다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러니까 이 역병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창궐하고 있으나 잡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역병의 숙주

이 별종의 역병은 권력의 중추에서 더 극성을 부린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이자, 미르재단과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의 배후로 알려진 최순실의 딸은 2014년 이화여대 입학 원서 마감일이 지나서 획득한 수상경력으로 18.5대 1(지원자 111명 가운데 6명)의 경쟁률을 뚫고 체육과학부 특기자 전형에 합격했다.

하지만 그는 등교하지 않았다.

1학년 1학기에 학사경고를 받았고, 2학기는 휴학했다. 2학년 1학기가 되자 지도교수는 경고가 누적되면 학칙에 따라 제적될 수 있다는 우려의 뜻을 전했고, 그는 어머니 최순실과 함께 처음으로 학교에 출현했는데, 그날부로 그의 지도교수가 바뀐다.

그 이후로도 그는 제적당하지 않은 채 여전히 등교하지 않고 있다.

이화여대 쪽이 그가 학교에 등교하지 않아도 학점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학칙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입학에 앞서 2013년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한 전국승마대회에서 준우승을 하자 판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경찰은 판정시비가 발생했다며 그에게 점수를 낮게 준 심판을 불러 조사했다.

스포츠 경기의 판정 시비에 경찰이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윗선 개입 의혹이 파다했고, 이런 일은 승마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최순실 쪽 사람이라고 알려진 박 전무가 작성했다는 살생부가 나돌았다.

전북·전남·세종 등 대한승마협회 지역협회장들이 줄줄이 사퇴했다. 그 배후에는 딸을 국가대표로 만들려는 최순실·정윤회 부부가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가 나섰다.

교육문화수석실 행정관이 문체부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박 전무에게 승마협회 관련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하지만 진 과장은 최순실 쪽 뿐 아니라 다른 승마협회 관계자들로부터 협회의 문제점을 두루 청취했다.

그의 보고서는 상관인 노태강 체육국장을 통해 전달됐다.

결국 박 대통령은 당시 유진룡 문체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진 과장과 노 국장에 대해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며 사실상 두 사람의 경질을 요구했고, 문체부의 두 핵심라인은 곧장 한직으로 밀려났다.

3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최근 박 대통령의 "이 사람 아직도 있어요?"라는 물음 한마디에 노 국장은 명퇴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특별히 프랑스 장식미술전에 시간을 내서 가보고 싶다고 했으나,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상업적 전시여서 못한다'고 반대해 무산됐고 그 직후 김 관장에 대한 경질인사가 단행됐는데, 당시 중앙박물관의 교육문화교류단 단장이 노 국장이었다.

최순실의 딸은 그런 청류를 타고 전국승마대회 2위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가 되어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 이화여대에 입학한 것이다.

그가 공모요강상 입학 전형대상이 아닌데도 버젓이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을 '역병' 핑계 말고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 역병의 숙주는 무엇이며 누구이고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