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를 위반하고 시설의 용도를 무단으로 변경하면서 적격자들은 한데로 내몰아 된서리를 맞게 하고 부적격자들에게 특혜를 준 만큼 직무유기에 더한 배임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상황 타령으로 문제를 미봉하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수작을 전격적으로 쇄신하지 못하면 익산시의 미래는 없다. 지역의 향토산업을 살필 때 그나마 지속가능성을 지녔다 할 만한 보석산업은 또 자치단체의 무능과 불성실, 무원칙, 무책임으로 도태의 노정에 놓였다.

익산에서는 3대 향토산업이 굵고 짧은 성쇄의 궤적을 그렸다. 석재·섬유·보석이 그 주역들이다.

석재를 말하자면, 익산은 문양이나 때깔·강도 등 동양 최고의 석질을 자랑하는 돌 주산지다. 통일신라시대 가장 뛰어난 석공이었던 백제의 후손 아사달의 후예들깨나 배출한 석재 가공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석재산업은 값싼 중국 돌의 대규모 상륙으로 경쟁력을 잃었고, 채석산의 난개발은 심각한 환경문제들을 야기했다.

중국 석재 공급업체들이 가격을 현실화하면서 극한의 출혈을 견뎌낸 익산지역 채석업체들 몇 곳이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산지 주변에 산재한 석재 가공업체들은 급감한 수요 때문에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특히, 막대한 폐석산 복구비를 피하고 오히려 폐석산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업자들로 인해 상당수 폐석산들은 폐기물 매립장으로 전락했다.

석재산업은 익산에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섬유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쌍방울이 익산에 본점을 두고 있을 때가 융성기였는데, 지역 대표기업이 폐업하면서 익산은 한낱 봉제 하청업체들의 도시가 되었다. 그나마 섬유업계 쪽 근로자들은 가장 최악의 임금 수준에 허덕이고 있다.

16년 전 전라북도는 익산제2산업단지 내에 전북니트산업 종합지원센터를 설립해 섬유산업 발전을 위한 중소기업 연구개발을 비롯한 시제품 생산, 패션·디자인 개발, 마케팅, 창업육성 등을 지원하는 기능을 탑재했지만, 가내 수공업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익산지역 섬유업계에는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실을 뽑는 방적 공장이나 천을 짜는 방직 공장이 전무해 타 지역 원단을 사서 쓰는 형편이다 보니 일말의 발전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전북니트산업 종합지원센터는 2005년 한국니트산업연구원으로 명칭을 바꾸고 지난해에는 에코융합섬유연구원으로 명칭을 변경했지만, 그때마다 귀를 쫑긋 세웠던 익산시민들은 번번이 실망해야만 했다.

명칭과 걸맞는 수식도 새롭게 동원했지만 빛 좋은 개살구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섬유제품의 고부가가치 차별화에 기여하고, 기업의 생산성과 지역 경쟁력을 향상시키며, 산·학·연의 공동연구 활동과 니트산지의 집적을 유도한다는 에코융합섬유연구원은 국내 니트산업을 선도할 망정 익산지역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보석산업은 어떤가. 중흥기에는 150여개의 보석가공업체들이 영등동 수출자유지역에서 활황을 구가했다. 세계의 눈길을 사로잡은 보석 세공 기술자들이 3,700여명에 달했다. 그러나 값싼 노동력을 앞세우며 어느 날 들이닥친 중국의 저가 공세는 직격탄이었다.

쇠퇴기에 절반 이상이 폐업했고, 살길을 모색하던 업체들 절반 가량이 중국 현지 공장 설립을 생존전략으로 택했다. 텅 빈 영등동 공단 건물들은 흉물로 전락했고, 난국을 오직 기술력 하나로 돌파해야만 했던 잔류업체들의 잔혹사가 황량한 공단에 아로새겨졌다.

지금 영등동 공단에는 60여개 보석가공 공장이 가동되고 있으며, 200여명의 보석세공 기술자들이 종사하고 있다. 이들은 살아있는 익산의 자존심이다. 그 정통성과 우월한 존재감을 자타가 공인한다. 익산시가 국비를 받아 왕궁에 보석산업 고도화 사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메리트를 정부가 인정한데 따른 것이다.

보석산업 고도화 사업은 보석을 세공하는 아파트형 공장과 연구시설, 판매시설 등을 한곳에 집적화해 익산의 향토산업 지역업체를 지원·육성하며 경제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취지다. 지난 2010년 9월에 문을 연 왕궁 주얼팰리스는 그 첫 단계다.

영등동 공단 내에서 보석을 가공하는 업체들에게 판매시설을 제공해 안정적인 판로를 열어주고, 생산자의 직접 판매에 따라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보석 완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며, 동시에 생산자는 도매상에 넘기는 가격보다 더 나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주얼팰리스 개장을 앞둔 익산시는 난국에 봉착했다. 왕궁은 영등동보다 소비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게다가 영세한 공단업체들에게 제공할 목적으로 건립한 판매시설의 임대료 치고는 비싸다는 주장이 업체들로부터 제기됐다.

서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익산시와 업체들의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공단 내 90개 업체 가운데 30개 업체만 익산시가 제시하는 조건을 수용하고 주얼팰리스에 입주했다. 총 60개 매장을 갖춘 주얼팰리스는 절반을 채우지 못했다. 그러자 익산시는 당초 취지에 어긋나는 행정행위를 감행했다.

공단내 보석 가공업체들을 협상 대상에서 배제해 버리고 보석 판매업체 30개를 나머지 매장에 입주시킨 것이다. '익산지역의 보석가공산업 활성화'를 명분으로 국비를 받아 귀금속보석산업 클러스터 구축을 추진하고 그 일환으로 120억원이나 들여 지은 보석 직매장이 한낱 소매점포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3無(무소신·무원칙·무책임)의 자치단체

한마디로 익산시는 보석상인들을 위해 공적자금을 투자하고, 타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 매장으로 제공한 꼴이다. 주얼팰리스 절반의 매장에서 판매되는 제품 가운데 70%가 타 지역에서 들여 온 것이라니, 주얼팰리스가 오히려 지역생산품 판매를 위축시키는 도매상들의 전진기지가 되고 있는 꼴이다.

주얼팰리스에서 무자격자들을 즉각 축출해야 하는 이유다. 지역 보석산업을 살리기 위해 조성한 시설로 되레 지역 보석산업을 죽이고 있다는 점에서, 익산시 공무원들의 책임은 적지 않다. 조례를 위반하고 시설의 용도를 무단으로 변경하면서 적격자들은 한데로 내몰아 된서리를 맞게 하고 부적격자들에게 특혜를 준 만큼 직무유기에 더한 배임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상황 타령으로 문제를 미봉하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수작을 전격적으로 쇄신하지 못하면 익산시의 미래는 없다. 지역의 향토산업을 살필 때 그나마 지속가능성을 지녔다 할 만한 보석산업은 또 자치단체의 무능과 불성실, 무원칙, 무책임으로 도태의 노정에 놓였다.

하지만 보석산업 고도화 사업은 진행형이다. 바로잡고 혁신적인 사고로 추진한다면 익산지역경제의 한 동력을 얻을 수도 있다. 특히, 그 출발선에서 보석산업을 바라보았던 관점이 귀하다. 기술을 보전하고 육성시키겠다는 지점이다.

기술은 미래를 담보한다. 다른 수식이 필요없다. 석재와 섬유도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다면 융성기의 영광를 되찾지 못할 법이 없다. 어떤 정책이든 실제와 융합하지 못하면 생명력을 획득하지 못한다.

인구 증대를 제1의제로 삼고있는 정헌율 시장에게 다른 도시에는 없고 익산시에만 있는 향토산업을 재조명해 보이게 된 지점이다. 행정전문가가 행정편의주의나 무사안일주의를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을 현장으로 데리고 나가는 전문성의 표방이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