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놓고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데, 늘 하던 방식 그대로다. 왠지 떳떳하지 못하다. 다른 속내가 두드러져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오히려 익산시의 부채가 시중에서 더이상 회자되지 않기를 바라는 의중이 애써 뒤집어쓴 얇은 장막 겉으로 드러난다.

적어도 한 평생을 공무원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또는 도시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목표 없이 시장이 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과오를 이대로 방치하는 건 자기부정이 아닐 수 없다.

지난달 28일 익산시가 지방채 상환 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5년 동안 완전히 갚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익산시가 배포한 채무관리계획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항목이 있다. 그것은 '관리채무' 등 여러 부채 분류다. 지금까지 익산시가 재정상황을 대외에 공표할 때 표기하지 않던 방식이다.

물론, '관리채무' 등은 회계관리상 구분되는 부채의 성격 가운데 하나이고, 행정청에서 늘 사용하는 부기항목이다.

하지만 일반 주민들에게 부채란 갚아야 할 빚일 따름이다. 복잡한 부채 분류들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치단체가 부채를 발표할 때, 어떻게 발생했는지, 어떤 방법으로, 언제까지 갚을 것인지를 간명하게 밝혀왔던 이유다.

전문가란 일반인이 할 수 없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일반인들에게 전문적 관점을 요구하는 행위는 '전문'이 '상식' 위에 있다고 여기는 독선의 소치다.

더구나 공무원이란 그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민에 봉사하는 주체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에게 유동성 부채니, 비유동성 부채니, 일반부채니, 관리부채니, 심지어는 재정부담이니 하는 자기들만의 언어로 지껄이며 "그냥 들어라"고 강요하는 태도는 여러 오해들을 자아낸다.

우선은 소통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일 수밖에 없다. 의사소통은, 상대방이 알아듣는 말을 해야 가능하다. 애당초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너 따위는 내 말을 알아들을 필요가 없다"는 선언적 의미를 수반한다. "관심 끄고 잠자코 있으면 내가 알아서 다 한다"는 교만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무식한 것들이 뭘 아는 체 하느냐. 알아들을 테면 알아들어봐. 따질 테면 한번 따져 봐"라는 식의 삐뚤어진 엘리트 의식의 단서인 것이다. 아닌가? 갑자기 부채 공표 형식을 '자세하게'로 바꾼 민선 6.5기는 주민들을 먼저 고려한 것인가.     

욕구 수준이 거듭 향상되고 다변화한 만큼 주민의 눈높이도 그에 걸맞게 높아지도록 계몽하려는 것일까. 그렇다면 얼마나 좋으랴. 주민들에게 부채의 세분을 학습시켜서 비판 능력을 향상시키려 했다면 가상한 일이다.

하지만 익산시에는 애당초 그럴 의도가 없어 보인다. 형식을 바꾸는 일인데 슬그머니 했다.

터놓고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데, 늘 하던 방식 그대로다. 왠지 떳떳하지 못하다. 다른 속내가 두드러져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오히려 익산시의 부채가 시중에서 더이상 회자되지 않기를 바라는 의중이 애써 뒤집어쓴 얇은 장막 겉으로 드러난다.

듣지 말아주길 바라는 당신만의 언어

그러나 감추려 하면 사람들은 더 궁금해한다. 거짓말로 순간을 모면하면, 더 큰 거짓말을 부르는 난국에 다시 봉착하는 법이다.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다.

지난 6.4지방선거는 각 정당의 경선과정에서부터 익산시 부채 문제로 과열됐었다.

당시 정헌율 익산시장 후보는 익산시를 파산에 임박한 도시로 규정했다. 그는 익산시의 빚이 6,593억원이고,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불안감을 조장했다. 손수 익산시파산방지대책본부를 구성하기도 했다.

정헌율 후보는 고위직 공무원 출신이고 자칭 '행정전문가'였기에 그 파급력은 실로 막대했다.

민선 4~5기의 익산시를 이끌었던 이한수 후보는 익산시를 말아먹은 전 익산시장으로 낙인찍혔고, 기업유치 전선은 꽁꽁 얼어붙었으며, 6.4지방선거 이후 눈에 띄는 인구감소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무소속 후보에 표 쏠림의 기제로 작용했고, 검증되지 않은 인물을 선택한 시민들은 불과 1년여 만에 패닉상태에 떨어질 정도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독선에서 비롯한 좌충우돌 전횡과 무지와 미숙은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을 낳았다.

익산은 곳곳에 깊은 상처를 입었고, 결코 아물 수 없는 상처들 때문에 어떤 부분은 결국 괴사하고 말 것이다.

민선 6기는 불공정 선거에 의한 체제였다는 사법당국의 결정에 따라 역사에서 사라졌고, 정헌율 시장은 재선거를 통해 익산시에 입성했다. 전임자가 저지른 산적한 난제들을 정 시장은 목하 맞닥뜨리고 있을 것이다.

정 시장의 심신이 온전하다면, 자신의 과오를 뼈아프게 느껴야 온당하다. 그런데 그는 익산시에 입성한 이후 자신이 2년 전에 격하게 쏟아냈던 부채 문제를 바로잡지 않은 채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앞서 재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인터뷰와 토론회 등에서 익산시 부채는 자신이 공표한 액수가 맞다고 우기고 또 우겨왔었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 당장 익산시민들에게, 2년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익산시가 파산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시민들이 불안해 떠는 도시의 말로가 무엇인지는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적어도 한 평생을 공무원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또는 도시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목표 없이 시장이 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과오를 이대로 방치하는 건 자기부정이 아닐 수 없다.

정통성을 상실한 민선 6.5기

게다가 정헌율 발 불안은 우격다짐식 거짓말과 말바꾸기 행태라는 점에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중앙정부에서 공시한 익산시의 부채가 3천여억원인데도, 그는 자신이 복식부기법을 만든 장본인이고, "대한민국에서 내가 제일 잘 안다"며 자신이 부풀려 산출한 익산시 부채 액수 6,593억원이 맞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그러더니 그는 당선 직후 난데없이 '재정부담'론을 들고 나왔다. 익산시의 부채는 3천여억원이 맞지만, 시민들이 실제로 부담해야 할 재정부담액은 6,593억원이라는 것이다. 민간자본을 끌어다 설치한 시설물의 임대료나 운영비 등을 재정부담액으로 환산한 결과다.

그러나 '재정부담'은 부채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자치단체에서 재정부담이라는 용어는 복지예산 등의 국비에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재정을 분담할 때 주로 쓰인다. 사실, 재정부담의 범위를 정헌율식으로 '시민들이 부담해야 할' 재정부담액으로 넓게 해석한다면 자치단체의 조직이 존재하는 자체가 '재정부담'이다.

뿐만 아니라, 익산시가 설치·운영하는 모든 공공시설의 운영비가 재정부담이니, 이것이 곧 부채라면 부채액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익산시는 2년 6개월 전의 정헌율식 관점대로 진작에 파산했어야 마땅하다. 익산시는 여전히 건재하니 이른바 재정부담론은 부채 시비를 떠나 견강부회가 아닐 수 없다.

자칭 행정전문가이고, 복식부기 법제화를 주도하기까지 했던 사람으로서, 익산시를 재정 비상상황으로 몰고가기 위해 내세웠던 재정부담액 6,593억원이 익산시의 부채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정헌율 자신이 잘 알고 있었을 터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거짓말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셈이다. 시민들을 고의적으로 기망해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민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책임지지 않는 태도다. 자신의 과오를 청산하지 않으면서 한 도시를 내일로 이끌어간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나아가 그가 허위사실을 공표해 당선되었다면, 민선 6.5기는 정통성을 상실한다.

사술로 직을 가로채고, 진실을 호도하며, 막힌 형이 동생을 윽박지르듯 시민들 위에 삐뚤어진 '행정전문가'로 군림한다면 그는 시민에 의해 퇴출되어야 할 공공의 적이다.

최근 익산시가 발표한 채무관리계획의 관리채무액(지방채+민자사업 임대료)은 2,729억원이고, 부채(지방채+민자사업 임대료+기타 비유동 부채+퇴직급여 충당 부채+기타 유동부채)는 3,924억이다.

단순히 시민들에게 알릴 익산시의 채무 발표를 명료하게 하지 않고 이렇게 복잡하게 하는 것은 무얼 말하고 싶어서일까.

정헌율 시장의 행태들은, 그것이 뭘 말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거짓말을 시인하는 말을 회피하려다 보니 치게 되는 장막이라는 걸 가리킨다.

전문성을 가장한 장막이지만 그건 꿩이 머리만 덤불 속에 밀어 넣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익산시를 대표하는 수장이 이렇게 부박하고 비루해도 되는 것인가. 그 부도덕성을 말하자니, 수준 이하의 행태를 도덕적으로 평가할 가치 조차 없다.

'네가 뭘 알어?"식 시민 윽박지르기

시민들은 10개월을 기다렸다. 선거법위반 논란도 일지 않았다. 감사해야 하고 나아가 석고대죄로 화답해야 옳았다.

정헌율 시장은 취임 초 일선 읍·면·동을 순회하는 주민과의 대화 중 모현동 주민이 익산시 부채가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4천억원 가까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2년 6개월 전에는 악성 채무여서 익산시가 곧 도산할 것이라더니, 익산일반산업단지를 분양해 부채를 해결할 수 있고, 2년 안에 청산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부채를 부풀려서 도시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킨 장본인이 기업유치를 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 시장은 또 부채와 관련한 자신의 네거티브 선거를 정당화하기도 했다. "선거과정에서는 자꾸 부정적인 것만 끄집어내는 경향이 있다"며 이해를 구하고, "전임시장이 잘못했다고 해야 선거에 유리하니까"라며 부채를 허위로 부풀려 발표한 이유가 상대방을 낙선시킬 목적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시장이 되고 보니까 익산시가 부채 때문에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지 않다고도 했다. "그동안 시민들이 걱정했던 것들을 빠른 시간 내에 바로잡겠다"며 병 주고 약을 줬다.

뜻있는 시민들이라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엿장수한테 시정을 계속 맡겨야 하는가.

상대 후보를 죽이기 위해 허위사실을 공표하고, 자신이 행정전문가라는 점을 강조하여 설득력을 더했다. 고의적인 범죄행위다.

그때는 잘못 알고 그랬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건 개구멍이나 들락거리던 공무원이라는 점을 자인하여, 유일한 경쟁력인 '행정전문가' 간판을 스스로 내리는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헌율 시장 입장에서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 판이다. 선거법위반 공소시효를 넘겼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도의적인 책임만 지면 된다.

그런데 정치적인 상처를 입을 것을 두려워하며 '진실에 풀칠하기'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가 부채는 그렇게 부기하고 발표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잘못은 사과하는게 원칙이라는 도덕률의 철퇴 앞에 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목적한 바 대로 상대 후보에게 정치적인 치명상을 입혔다. 도시는 크게 퇴행했고, 시민들은 자존감을 상실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후유증은 점증될 것이다. 엄중한 현안이다. 다른 사람이 벌인 일도 아니다. 결자해지의 차원에서도 맞을 매는 맞아야 한다.

맹성과 회개로 시민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새롭게 나아가라는 명령을 받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모르는가. 거짓말은 불신을 낳고 종국에는 만 가지 거짓말을 생산하여 관계를 파괴한다. 관계를 잃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존재 자체가 부정한데, 그 관계를 또 어떻게 회복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