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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호 익산시의회의 내홍,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로 삼기를 바라며

편집국장 공인배

재량사업비는 복어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다룰 줄 알면 훌륭한 음식이 되지만, 다룰 줄 모르면 독이 된다. 재량사업비를 부정하게 집행하면 사법당국이 단죄할 것이다. 다만, 표를 염두에 둔 선심성 집행은 막아 줄 장치는 필요하다.

어떤 형식으로든 공개하는 것 말고 다른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차제에 익산시의회가 합당한 공개형식을 만들어 제도화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렇다면 임형택의 재량사업비 공개는 표를 염두에 둔 수법이라는 점에서 비윤리적 행태이지만, 재량사업비 집행의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익산시의회가 내홍을 겪고 있다. 한 초선의원이 의원재량사업비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것이 발단이다. 어디에 쓰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눈먼 돈'을 투명하게 사용하겠다는 게 그 공개의 취지다.

주민이 당장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동네 현안들을 재량사업비 공개 창 아래 댓글로 올리면, 누구나 참여하는 공개 토론을 벌이고, 그 과정을 통해 정해진 우선사업들을 재량사업비 범위 안에서 시행하는 방식이다.

더 고무적인 일은, 앞서 집행된 재량사업비 가운데 일부 용처의 부적절성에 대한 토론도 이곳에서도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당해년도의 주민숙원사업비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를 물으면서, 전년도의 주민숙원사업비 사용내역을 밝히는 친절에서 비롯한 현상이다.

집행부가 의원 각자의 자유로운 판단에 따라 사용하도록 할애한 예산을 지역구민들에게 공개하고 감시받기를 자처하는 것은 주민혈세를 허투루 쓰지않겠다는 의지의 단서다. 재량사업비 용처에 대한 주민들의 생각을 취합하면서 주민들의 지적에 적극적인 해명을 마다하지 않고, 바른 의견을 수용하며 오류를 수정해나가는 것은 참여자치의 실천이다.

규모가 작으나마 예산에 대한 담론의 장을 만들어 시민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생활 현장의 목소리를 방향성으로 삼는 것은 기초의원이 견지해야 할 요건들이다. 그런데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래 익산시의회에서 이와 같이 영향력 있는 방법으로 생활정치를 펼치는 기초의원은 보이지 않았다.

그 주인공 임형택 의원의 행보는 다른 의원들의 모범이 될 만하다. 그러나 그는 재량사업비를 공개하면서 재량사업비 성격의 불투명성을 애써 강조하고, 자신은 다른 의원들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취지의 글을 게시해 비난을 자초했다.

불순한 의도로 비쳐지는 자화자찬

"과거에는 주민숙원사업비를 의원들의 호주머니 돈 쓰듯이 사용하는 폐해가 많았습니다. 예산 사용에 원칙과 기준이 없고,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민숙원사업비 사용내역 공개는 임형택의 원칙입니다."

누가 보아도 현란한 자화자찬이다. 이 일단의 글 밑에는 '의정비를 개인 주머니 쌈짓돈처럼 생각하는 의원들도 최순실과 다름없음....'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또 ' 정말 깨끗하고 우리가 아는 윗분들하고는 다르다고 느꼈는데.. 정말 믿음이 가네요'라는 댓글도 달렸다.

이는 임형택 본인을 제외한 익산시의회 의원 24명을 최순실과 다름없는 시정농단자들로 전락시키고 더러운 족속들로 낙인 찍은 결과다. 이런 행태에서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의원재량사업비를 공개하는 것을 임형택 의원만 특별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원재량사업비 공개는 지극히 마땅한 일인데도 말이다. 의원들은 방법이 다를 뿐 저마다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재량사업비를 배분하고 있다. SNS 이용 여부는 각자 스타일의 문제다. SNS의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을 비중있게 의식해 SNS를 아예 이용하지 않는 의원들도 수두룩하다.

임형택 의원처럼 SNS를 활용하는 정치에 둔감한 다른 의원들을 탓할 수는 없다. 약빠르지 못할 뿐이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 의원재량사업비 집행은 살얼음판을 걷듯이 한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역풍을 맞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을 특별하게 부각시키는 임형택 의원의 의도는 뭔가. 표를 얻기 위해 환심을 사려는 것이다. 재량사업비 공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의원들을 거름삼아 그 위에 우뚝 서서 빛나는 나무가 되고자 한 것이다. 몇마디 변설로 충분했다.

임형택만 특별하다고 여기는 재량사업비 공개

그는 또한 의원재량사업비를 일컬어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도 알 수 없다'고 허위사실을 적시해 의회와 집행부의 명예를 싸잡아 훼손했다. 의원재량사업비도 다른 사업비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방법으로 정산보고 된다. 허위가 있으면 사법처리 대상이 된다.

다른 의원들의 반발에 직면한 그가 그 취지를 삭제하거나 수정했지만. 그의 자기만 옳다는 독선과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적 미숙, 혹은 타인를 희생시켜 자기를 부각시키는 계산된 자기홍보는 그가 높이 치켜세운 선구자적 기치를 퇴색시키고 말았다.

임형택 본인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바른 길을 가는데는 잘난 체 할 필요가 없다. 전인미답을 앞서 가더라도 따라오는 사람들이 생겨야 길이 된다. 혼자만 가서 길이 되지는 않는다. 인식을 전환시키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오랫동안 굳어진 관성은, 앞서서 길 아닌 길을 가는 이를 정상적인 눈으로 보지 못하기에 그렇다.

그런 환경 속에서 요란을 떨면 더 외면받게 되어있다. 남들을 밟고 올라서서 더 눈에 잘 띄게 하려한다는 인상을 준 순간 본질은 훼손되기 마련이다. 경쟁만 있고 상생의 묘가 없는 정치의 폐해는 사람들이 몸소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이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는 설 자리가 없다. 자기의 방법을 내세우지만 다른 이의 방법은 들여다 보려고 조차 하지 않는 탓이다. 옳은 것에 자신을 희생하는 이는 겸손하다. 사람들이 격하게 좋아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정치인이란 도리를 다하고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고금의 격언을 생각하게 되는 오늘이다. 익산시의원들 각자는 합당한 평가를 받길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열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감정이 앞서는 행동의 위험성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과열된 눈으론 바르게 볼 수 없어

익산시의회의 몇몇 의원들은 의회의 명예를 훼손한 임형택 의원을 윤리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모았다. 이들 의원들은 격분하여 억울하다고 가슴을 친다. 의원재량사업비 집행의 투명성을 말하자면, 방법은 다르지만 임 의원 못지않다는 게 그들의 한목소리다. 하지만 임 의원을 윤리위원회에서 재단하자는 그들의 주장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지방자치 이래, 혹은 제7대 익산시의회 개원이래 자질이나 도덕적인 면에서 정말 심각한 의원들이 속출했는데도 단 한 차례 열리지 않았던 윤리위원회다. 의원의 품위를 손상한 정도를 넘어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의원들을, 의회는 그동안 거론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로 여기고 자정의 거울로 삼아왔다.

더구나 임형택은 자신의 불찰을 사과했고, 문제되는 글을 삭제했다. 또한 그가 게시한 글의 취지는 일반적인 관점에 기대고 있다. 재량사업비를 의원 재량에 맡기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일부 용처를 제한하거나 품목을 제한하고는 있지만 극히 일부에 한하며, 결국 의원이 표밭을 다지고 유권자들의 표심을 살 목적으로 재량사업비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딱히 막을 방법은 없다.

이로 인해 의원재량사업비는 의원의 사전 선거운동자금이라는 지적과 함께 폐지론이 대두되기도 했었고, 민선 5기 익산시에서는 실제로 한때 재량사업비가 폐지된 바도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여러 기초단체에서 재량사업비를 집행할 때 의원이 개입하여 특정 업체에 발주토록 한 뒤 뒷돈을 받다가 적발되는 등 비리의 온상이 됐다는 점이다.

본질적인 문제점도 있다. 의원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예산을 심의하는 기능인데, 형식적인 심의를 거친 예산을 의원이 연간 1억원 이상씩 쓴다는 것은 자기부정이다. 이렇게 재량사업비에 발목을 잡힌 의원들은 집행부가 부적절한 곳에 예산을 쓰는 것을 막아내기 어렵다.

이런 의회는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이유다. 사안이 엄중하다. 시기적으로도 민감한 문제다. 내년은 지방선거 전 해이고, 최근에는 검찰이 재량사업비 집행 관련 리베이트 수수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발전의 기회, 집단히스테리로 폄하되지 않기를

하지만 의원재량사업비의 당초 취지가 해악을 표방하는 것은 아니었다. 도시 전체를 관장하는 시장이 발견하지 못한 주민들의 숙원을 현장을 누비는 동네 시의원은 일상적으로 보고 들으며, 당장 해결해야 할 숙원을 주민들과 함께 고민한다는 사실이 의원재량사업 예산편성의 착안점이다.

자치단체의 예산이라는 혈액이 말단의 모세혈관까지 잘 흐르도록 해 도시 전체가 건강해지게 하는 순기능이 의원재량사업비의 목적인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줄여나가고 도시를 균형있게 발전시키는 것은 시장이나 의원이 함께 지향할 바다.

과거 재량사업비 항목의 예산이 없을 때, 시장과 행정이 주도하는 우선사업들에 밀려 고질적인 주민숙원사업들이 양산됐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면, 의원재량사업비는 시정운용의 묘 중 한 축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을 악용하는 의원들에게 있다.

익산시의회가 감정을 삭이고 이번 일을 자성과 재건의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재량사업비 전액을 삭감하여 의회와 집행부간 한랭전선을 형성한다든가, 한 의원를 응징한다든가 하는 극약 처방은 발전을 위한 자기 수정으로 이해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집단 히스테리로 비춰질 수 있고, 그 후유증은 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