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역사상 유례없는 최순실 게이트는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리더라면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사명이나 비전, 가치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그런 거름망에 걸러진 신념을 지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조직을 운용하는 신념이란 구성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다시 걸러져야 공유될 수 있으며, 실행력을 갖출 수 있다.

리더의 신념은 조직 내에 한 방향으로 정렬된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만든다. 특히, 정부 조직 리더의 신념이란 불꽃과 같고, 크고 작은 권력을 손에 쥔 그 구성원들은 불나방과 같다. 좇을 뿐 판단하지 않는 조직 구성원들의 위험성은 최순실 게이트가 웅변한다.

여전히 건재한 복마전

청와대가 복마전이었다.

헌법에 입각한 권력은 헌법을 유린했고, 사유화 된 권력은 사익의 도구가 되었다.

무능하고 무기력한데다 꼭두각시 노릇까지 마다하지 않은 대통령이 그 중심에 있었다.

국민들은 자괴감에 몸서리쳤다. 이 모든 것이 주인 노릇을 잘못한 탓 아닌가.

'이것이 나라냐'는 질문 속에는 '이제는 어설픈 주인 행세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다.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촛불이 되어, 광장에 모인 거대한 물결이 되어, 역사를 변화시키고 전진시키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촛불은 주권을 행사하는 국민, 모든 권력을 부여하는 국민, 권력을 심판하는 국민의 행동이다.

무슨 일을 당해도 그 자리에 그냥 가만히 있는 착하고도 병약한 국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촛불은 국민이 되찾은 심장이다. 심부전 상태였던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1항과 2항의 박동이 제대로 뛰게 된 것이다.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군주민수(君舟民水)로 정한 것은, 자신이 강물임을 깨달은 국민 또는 그 강물 위에 떠있는 배(국가권력)를 촛불 현장에서 목도했기 때문이다. 강물은 배를 뜨게 하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권리장전을 재확인한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국정운영의 비정상은 수많은 파열음과 그 후유증을 남겼다.

박근혜 정권은 임기 초부터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으로 정통성 논란에 휩싸였다. 검찰 수사결과 국정원이 실제로 대선에 개입해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나, 국가의 단죄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국정원의 선거법 위반은 대통령 선거에서 저질러진 것인데, 대통령은 조사조차 받지 않았을 뿐더러, 범죄를 실행한 국정원 소속 관련자들이나 그들에 대한 부실 수사 또는 범법자들을 비호한 경찰청장 등의 처벌 수위도 엄단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정서와 거리가 멀었다.

국가공권력의 범죄에 맞선 내부 고발자는 되레 공직에서 축출되고, 엄정한 수사 즉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검사들은 댓글 조작사건 수사권을 박탈당하고 한직으로 밀려났다.
 
이는 검찰의 아노미 현상을 촉발했고, 검찰 내부에 우병우 사단이 구축되는 등 검찰 상층부를 급격히 부패시키는 기제가 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때 박근혜의 탄핵소추 요건이 충족되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누군가 배후에서 간계를 내지 않고는 국가권력이 그토록 일탈할 수 없다는 것을 의심하지 못했다. 아니, 간적들은 그런 틈을 주지 않았다.

이때부터 국가권력은 자신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과 국민을 암흑 속에 빠뜨렸다.

암흑 효과는 범죄를 양산한다. 도덕적 해이와 부조리를 만연케 한다.

2014년 2월 경주시에 있는 마우나 오션 리조트의 강당 건물이 폭설에 무너져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던 부산외대 학생들 113명이 매몰된 것은 그 변주곡이었다.

은폐와 억압이 초래한 무정부 상태

그로부터 두 달 뒤, 304명의 생때같은 목숨을 수장시킨 세월호 참사도 그와 맥락을 같이한다.

달라졌다면, 국가기관의 부실 대응과 청와대의 늑장 대응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감추려고 기를 썼다는 점일 것이다.

3년이 흘러 넘쳤지만, 구조 골든타임을 포함한 7시간 동안 자리를 비운 대통령의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국민이 믿을 수 없는 국가는, 교통사고를 왜 국가가 책임져야 하느냐며 본질을 왜곡하는 정부에 의해, 마땅히 공개해야 할 관련 정보를 꽁꽁 감춘 정부에 의해 출현했다. 의혹은 소멸 될 근거를 만나지 못하면 무수한 추론을 낳는 법이다.

공복들이 주인에게 사정의 전말을 보고하지 않고, 속이며, 엉뚱한 짓으로 시선을 돌리려 하면 주인은 그러한 모든 동태에서 그 배경의 단서를 찾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납득할만한 가정을 세울 때까지 멈추지 않는 법이다.

국민이 불신의 눈으로 바라본 국가의 비정상적인 행태와 불가해한 세월호 사건 사이의 상관관계는 어떻게든 부정적인 형태의 결론에 귀결될 수밖에 없다.

다수 국민들의 오해로 국가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지만, 정부는 그것을 불식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오히려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유언비어 유포로 교란했다.

억울하다면서도 적극적으로 소명하지 않고 언론보도를 통제하면서 혼란의 등 뒤에 숨었다.

국가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혼란을 조장해야만 자기를 보전할 수 있는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진도 앞바다 몽골 수도에는 세월호와 함께 국가가 침몰한 것이다. 1,356일 동안 세월호는 인양되지 않았고, 이 나라는 1,356일 동안 무정부 상태였다.

2015년 5월 20일 발발한 메르스 사태 국면에서 그 현주소는 여과 없이 드러난다.

고장 난 대응시스템과 부실한 방역망은 60여일 동안 끊임없이 국민들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다. 186명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고, 메르스에 감염된 36명이 사망했다.

최근까지 2천만 마리 이상의 가금류가 살처분 된 AI(조류인플루엔자) 대재앙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11월 16일 전남 해남에서 최초로 발생한 AI는 전국을 동시다발적으로 휩쓸었다.

이 파죽지세의 전염력은 오리와 닭 사육농가들을 초토화시키면서 최단시간 최대의 피해를 입히는 기록을 세웠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수립한 방역대책은 무용지물이었다.

방역체계가 탁상에서 다뤄졌을 뿐, 일선에 실제적으로 구축되지 않은 탓이었다.

이번 AI가 최초로 발생한 해남군은 문서로만 방역대책본부를 설치하고, 방역지원반이나 이동통제반 등을 운영하지도 않았으며, AI확진 즉시 반경 3km안에 거점소독시설을 설치하도록 되어있는 매뉴얼도 따르지 않았다.

다른 지역 행정관청들의 경우도 대동소이한 실태를 보였다.

국민안전처의 감찰 결과다. 이 같은 위기대처능력 부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정부가 작동하지 않은데서 비롯했다.

2015년 말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해 일본과 협상·타결한 행태 역시 정부의 본령을 벗어났다.

누구를 위한 정부냐는 질문을 받는 정부가 정부라 할 수 있겠는가.

2011년부터 환자들이 발생했으나, 정부가 제자리를 이탈한 4년 사이 옥시 가습기 살균제 공습에 국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역사상 최악의 화학 참사는 심각한 폐질환 환자 1,528명을 발생시켰고, 23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신년 벽두,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희망

역사상 유례없는 최순실 게이트는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리더라면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사명이나 비전, 가치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그런 거름망에 걸러진 신념을 지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조직을 운용하는 신념이란 구성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다시 걸러져야 공유될 수 있으며, 실행력을 갖출 수 있다.

리더의 신념은 조직 내에 한 방향으로 정렬된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만든다.

특히, 정부 조직 리더의 신념이란 불꽃과 같고, 크고 작은 권력을 손에 쥔 그 구성원들은 불나방과 같다. 좇을 뿐 판단하지 않는 조직 구성원들의 위험성은 최순실 게이트가 웅변한다.

국민들이 이 나라의 새로운 정부를 모색하는 이때에, 이 지역의 리더에게 눈길을 주는 건 너무 한가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이 지역 리더의 공감감은 광장과 일상을 분주하게 오가며 피로도가 높은 시민들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시민과 조직 구성원들 사이에서 진정성 있게 지역의 오늘과 내일을 고민하는 태도, 그로부터 재확인 된 확고한 신념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희망이 된다.

정유년 새해에 이 지역의 리더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광장에 나서는 하나의 촛불과 같기를 염원한다.

무정부상태의 폐해가 낳은 수많은 비정상들을 반면교사 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