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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호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 박씨 발 '불안'

편집국장 공인배

결전에 끝까지 함께하리라 믿는다는 아이컨텍인 것이다. '친박계 라인업'이 '사저 라인업'으로 재편되는 순간이다. 박씨를 중심으로 한 친박 정치권은 물론 박사모 등 보수세력이 운명공동체로서 대오를 정비하고 배수진을 친 형국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 청와대를 떠나 사저에 도착할 때까지 일절 함구하던 박씨가 삼성동 사저에 도착해 처음으로 한 말이다. 수상한 화법이다.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으니 시간을 들여서 꼭 진실을 밝혀내겠다"고 의지를 천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리라 믿는다며 주변에 기댔다.

그 출발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진실에 입각하지 않았다는 명분이다. 특별검사팀은 특정 세력의 대리인들로 꾸려졌고, 그 팀의 수사 결과는 음모에 부응했다는 전제에서 비롯한다. 거짓으로 진실을 덮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드러나는 논법이다.

그런 관점에서 팩트를 전달해 온 언론도 대통령 탄핵 음모세력의 일부가 되고, 그 팩트를 검증한 집단지성이나 그 팩트에 경악하여 집밖으로 나선 일반 상식들 역시 음모세력일 뿐이다. 촛불 국민들조차 거짓에 현혹된 무리로 규정되는 것이다.

80% 이상의 국민들이 퇴진을 바랐고 90% 이상이 탄핵 결정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는데도, 헌재의 결정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국민들을 깨우치기 위해 진실을 밝히는데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아니다. 특검 조사에 불응했고, 헌재 재판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51.6%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헌법을 수호하는 대표의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선서했던 박씨는, 헌법을 수호할 의지의 부재로 탄핵됐고,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깔아뭉개면서, 헌재의 탄핵 결정에 불복함으로써 헌법을 부정하고 있다.

그런 마당에 헌재의 탄핵 판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결정 직전까지 탄핵 반대 여론을 조장했다는 의혹이 대두됐다.

청와대 국민소통 비서관실의 A행정관이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들에게 보수단체 지원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전경련 관계자들은 특검 조사 과정에서 "A행정관이 A4용지에 지원해야 할 단체 이름과 금액을 써가지고 와서 으름장을 놓듯 지원을 요구했다"고 진술했다는데, 지원을 요청한 단체들은 주로 어버이연합·엄마부대 등 보수·극우성향 단체들이었다.

전경련 쪽이 예정된 금액만큼 돈을 지원하지 않을 땐 '분기별 이행내역'을 보고하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보수단체들을 직접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보수단체 대표들은 전경련에 직접 찾아와 "청와대가 얘기가 다 됐다고 했는데 왜 지원하지 않느냐"고 다그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특검의 의견은 A행정관의 행위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공갈혐의에 해당한다는 것인데, 이는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가리키고 있다. 헌재의 결정에 불복하며 보수세력의 결집을 주도하는 박씨와 연결지으면, 청와대의 조직적이며 계획적인 획책이 윤곽을 드러내는 부정행위가 아닐 수 없다.

박씨가 5월 대선을 일대 반전의 기회로 노리고 있다면 그 행위의 위법성은 더욱 심각해진다. 박씨를 구심점으로 삼고 있는 한국당이 대선에서 다시 정치적 지분을 확보한다면 박씨는 자신의 처지를 정치적으로 풀어낼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그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박씨가 5월 대선을 보수세력의 진두 또는 막후에서 지휘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기업들의 목을 졸라 보수단체들을 광장으로 동원하는 비용을 갹출한 것은 사전선거운동이 명백하다.

정치권은 국민 뜻 똑바로 읽어야

이런 판국에 박씨가 혐의 사실과 관련이 있는 대통령 기록물 등의 증거들을 인멸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의심들이 편견의 소산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 위법행위들이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에서 일어난 것은 박씨가 인선하면서 의도한 결과 값이다.

김수남 검찰총장도 박씨가 인선한 인물인데, 검찰이 어떻게 박씨를 향해 칼을 겨눌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관측도 박씨의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다. 단적으로, 검찰의 특별수사팀이 제기능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제거해야 할 장애물들이 사법 시스템 내부에 엄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면한 부조리에 대해서 정치권은 지나치게 둔감하다. 대통령직을 초법직 지위로 오인했던 박씨를 맹목적으로 추종해 온 무리들, 혹은 박씨에 대한 부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족속들이 여전히 권력의 칼을 쥐고 있는데도 뒷짐을 지고 있다.

물론 대선이 끝나면 청산될 문제라는 관점 앞에서는 조급한 문제제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특검이 수사를 완료하지 못했다. 피의자가 헌법('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 제2장 제11조 1항)을 유린하며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 기간연장을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특별수사본부가 특검수사를 마무리짓고 박씨를 기소하기까지 50일은 (첫 번째 소환일 3월 21~ 대선 실시일 5월 9일)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다. 국민이 바랐던 박씨와 관련한 구악과 적폐 청산은 50일 뒤로 미룰 수가 없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검찰은 박씨에게 소환통보를 하면서도, 청와대와 박씨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수사가 정점으로 가고있기 때문이라는데, 증거수집은 초기에만 필요하다는 궤변이 아닌가. 박씨와 권력실세들과 관련한 국정농단 사건 또는 직권남용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수사본부가 이렇게 자의적인 방향성을 보여준다.

조기 대선은 국민이 마련해 준 마당이다. 이 조기 대선의 출발점에는 법위에서 폭주하던 권력과 그 주변이 있다. 그 청산이 먼저고 대선은 그 다음인 것이다. 그런 본질을 호도하거나 부정한다면 정치권은 잿밥에만 눈이 먼 족속들로서 그 역시 청산되어야 할 구악이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국무총리며 검찰총장 같은 박씨의 종자들로 하여금 자진 사퇴토록 하거나 가용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몰아내는 것이다. 박씨가 추구하는 바, 시간을 박씨에게 줘서는 안 된다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사법시한인 것이다.

일말의 대국민 사과도 없이 청와대를 퇴거한 박씨가 삼성동 사저 앞 골목에서 탄압을 받는 지도자처럼 지지자들과 스킨십을 하면서 시종일관 만면에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걸 바라본 국민들의 정서를 정치권이 읽지 못한다면, 무슨 낯으로 내일의 정치를 주도하겠다며 나설 수 있겠는가.

탄핵기간에 박씨를 맹종하는 사람들 셋이 목숨을 잃었다.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박씨의 웃음은 어떤 신호로 전달될까.

불안하고 또 불안하지 않은가. 실로 쾌도난마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