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왕권이 쇠퇴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놓은 개혁의 초석 위에 후대의 여러 왕들이 업적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거듭 강조하건데 고집과 아집을 버린 그의 유연성과 여론을 받아들이는 겸손 때문이었다.

성인(지도자)에게는 고정된 마음이 없다.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성인무상심聖人無常心 이백성심위심以百姓心爲心)’ 노자의 도덕경 49편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마음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에 마주서게 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통섭하고 조화를 이루는 주체로서의 마음, 일체의 현상을 비추며 불멸하는 마음, ‘나’의 본질이지만 나는 정작 알지 못하는 그 마음 등등 생각하면 할수록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상 속에서 아주 단순하게 마음을 인식하려고 한다. 자기 정체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불안과 거기에서 비롯하는 과도한 긴장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가장 일반적인 인식은 '마음'은 '욕구'라는 등식일 것이다. 우리는 그런 관점으로 '무엇을 얻고자 하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 바람의 마음'이 곧 노자가 말하는 '마음'이라고 읽을 수 있겠다.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룩했던 정조도 그러한 상식으로 도덕경의 그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았을 것이다.

'지도자에겐 따로이 치우친 욕구가 없고, 오직 사람들의 보편적인 욕구를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는 형이하학적 해석이 형이상학을 인간세상으로 소환했다 할 법 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도자를 선출 하고자 할 때 '신념' 은 그 핵심 덕목으로 검증해야 할 점이니, 2500여년 전의 가르침은 현실과 큰 괴리감을 안겨준다.

그렇다면 그 가르침을 금과옥조로 삼은 정조는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선택한 지표로서의 지도자가 아닌, 사람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왕위를 세습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욕구를 자신의 마음으로 삼음에 아무런 장애도 없었을까.

그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 할 필요가 없었기에 어떤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지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속한 세계의 적폐 프레임을 스스로 해체했다. 노비제도를 혁파했으며, 서얼의 주요관직 등용을 제한하는 제도를 철폐했다.

학교를 일으켜 백성을 일깨우고, 넓어진 인재풀을 잘 활용했다. 이런 일련의 개혁드라이브는 사실 자신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일이었다. 신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종국에 왕위의 세습 사슬을 끊는 지점에 다다를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조는 백성들의 욕구를 자신의 마음으로 삼고, 그것을 실현해 나가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직 백성의 행복을 위해 대동사회를 건설하는데 모든 것을 걸었다. 그가 매순간 맞닥뜨려야 했던 것은 신분과 경제적인 차별을 유지하려는 철옹성의 막강한 화력이었다. 크고 작은 전장터에서 끊임없이 사선을 넘나들어야만 해소할 수 있었던 백성들의 욕구였다. 그의 다소 급진적이며 물러섬이 없는 개혁은 큰 진전을 이루었다. 조광조와 같은 명신들을 중용하고, 서얼들을 기용하며, 탕평책으로 붕당정치의 폐단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차별 없는 인사가 그 힘의 요체였다.

그가 기득권층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양날의 검을 휘둘렀지만, 왕권이 쇠퇴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놓은 개혁의 초석 위에 후대의 여러 왕들이 업적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거듭 강조하건데 고집과 아집을 버린 그의 유연성과 여론을 받아들이는 겸손 때문이었다. 그의 덕성이 초고속 시대에 와서도 뚜렷하게 빛을 발하는 이유다. 그 가운데 겸손은 문재인의 탈권위주의와도 조응하는 지도자의 덕목이다. 그런데 왜 오늘 하필 정조를 말하는가. 문재인의 신념이 너무 지나치기 때문이다.

그가 선출직 지도자이니 신념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은 당위다. 하지만 그에게 있는 긍정적인 신념은 정조에게도 있었다. '대동사회 건설'이라는 큰 틀의 신념이다. 그러나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만이 그 신념을 함께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은 지극히 위험하다.

그것은 배제를 낳고, 대립과 갈등을 유발한다. 그로 인해 국론이 사분오열 된다면 그가 주창하는 '국민통합'은 헛구호에 그치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다. 지도자의 지나친 신념이란 고정된 마음(욕구)이다.

그런 경우 자신의 지나친 신념이 국민들의 마음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마련이다. 장관 등 국무위원들을 인선하되 자신의 정치적 지연과 인맥에 국한함으로써 인재풀을 축소한 점, 탕평책이야 말로 '통합'을 이루는데 가장 효과적인 전략임에도 고려조차 하지 않은 점 등은 할거주의를 국민들의 뜻으로 오인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런 오판은 조국 교수를 민정수석으로 임명하면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문재인 대선 캠프에 참여했었다. 진보성향의 정치적 인물로 잘 알려져있다. 더 나은 세상을 이룩하는데 일조하겠다는 열정이 그가 대학 강단과 광장을 오가는 이유라는 점에서 그도 홍익인간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민정수석으로 임명되자 기대 뿐만 아니라 우려도 컸다. 검찰사회를 체감해보지 않은 비(非)검찰 출신이 당면 과제인 검찰개혁을 무리없이 수행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반응이 그 우려의 주류다. 실제로 청와대에 입성한 조국발 시그널에 보수와 야당은 강한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끼리끼리'는 적을 만들고, 충돌하며, 피를 흘린다

개혁 과정에서 파열음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부작용이 성과보다 크다면, 필경 그 대가를 국민들이 감당하게 된다. 정책을 추진하되 오류와 그에 따른 책임을 고려하지 않는 정부가 온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어떤가. 조국은 공직자의 인사검증을 맡는 핵심 참모로서 정권 초기의 문재인 정부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약속했던 ‘5대 비리(병역 면탈·세금 탈루·부동산 투기·위장전입·논문 표절) 관련자 고위공직 원천 배제’라는 인사원칙 위배 논란에 이낙연 국무총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들이 불씨로 작용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40일이 넘어섰는데 조각(組閣) 작업이 격랑 속에 빨려든 것이다. 조국 민정수석의 인사검증 책임론은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가 낙마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안 후보자는 법무부의 비검찰화와 검찰개혁을 이끌 인물로 낙점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곧바로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 담긴 저서와 칼럼 논란에다 아들의 이중 국적, 고등학교 재학 중 징계 경감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40여 년 전 불법으로 혼인 신고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정타가 됐다. 안 후보자는 지명된지 5일만에 후보직을 전격 사퇴했다.

문 대통령은 안 후보자의 사퇴와 관련해 “목표의식이 앞서다 보니 약간 검증이 안이해진 게 아닌가 해, 스스로도 마음을 새롭게 느껴야 할 것 같다”고 사실상 ‘검증 실패’를 인정하는 언급을 내놓았다. 그렇다 목표의식이 앞선 귀에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법이다.

더구나 같은 성향들끼리 모여야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경직된 사고야말로 국민들의 마음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마음이다. 그러니 문 대통령의 일방통행은 그것이 국민의 욕구라는 오판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국민의 마음을 살피지 않는 자신의 고정된 마음에서 기인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개혁은 개혁당사자들의 협력이 있었을 때 빠른 진전을 이룰 수 있고, 부작용도 최소화 할 수 있다. 끼리끼리 모여 상대방을 척결할 적으로 삼는 개혁으로 정국의 긴장도를 높이고 국민들의 피로도를 높인다면,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없을 뿐더러 모두가 소모적이고 지리멸렬한 전장터로 내몰리게 된다.

국민들은 진보와 보수, 혹은 혁신세력과 기득권세력이 피투성이가 되어 뒹구는 나라를 원치 않는다. 문 대통령에게 부여된 지상명령은 '적폐청산' 못지 않게 '통합'과 '경제민주화'를 강조한다. 강경일변도로 싸우라고 정권교체에 동의한 것이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임명했거나 지명한 국무위원들의 면면을 보라. 정조가 탕평책으로 추구한 손상익하(損上益下, 대동사회를 이루기 위해 윗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이익은 아랫사람들이 누리게 하는 것)의 세상을 이룩할 수 있을까.

위를 덜어내어 아래에 보태면 국민들이 끝없이 기뻐할 텐데, 이 '손상익하'란 바람이 거세면 우레가 되고 우레가 치면 바람이 세게 부는 것처럼 서로 도와야 가능한 지표다. 문재인 정부의 지표와도 같다.

일은 사람이 한다. 문 대통령이 인선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비우고 국민들의 마음을 응시해야 할 시점이다. 지도자는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