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해 그는 정치를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정치를 마감해야 하는 비운의 정치인인 것이다. 자질은 최상이었으나 현실정치와 교감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이유로 그가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였다. 참담하고 참담한 일이다. 네거티브 선거는 어찌 국민의당만의 것이었으랴.

국민의당의 도덕성이 검증대에 올랐다. 존폐의 기로다. 구심점인 안철수의 일대기를 가장 큰 경쟁력으로 삼았던 정당이다. 널리 이롭게 하고, 사리사욕에 눈멀지 않으며, 반칙하지 않는 사람 등 그런 도덕적인 미덕은 국민의당의 정강에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다.

그런데 지난 대선 막바지에서 국민의당이 전당적으로 매달렸던 문재인 죽이기 폭로전의 증거가 자기 발목을 잡는 올무가 됐다. 그 때 연거푸 유권자들 앞에 증거를 노출시키던 지도부의 표정들을 상기해 보면, 그들은 확신에 차 있었다.

"문재인은 이것으로 끝장이다"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폭로 시점의 타이밍도 절묘했다. 선거 4일 전에 터뜨렸으니, 유권자들이 대통령 후보 문재인의 부정행위에 분노하며 돌아섰다면 민주당이 돌려세울 시간은 거의 없었다.

국민의당은 이 폭로는 조작극이지만 당원 이유미씨의 1인극이었다고 주장한다. 조작된 증거를 받아 공명선거추진단 관계자들에게 전달한 이준서 최고위원이나, 전달받고 공표한 공명선거추진단 관계자들은 그것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공당(公黨)의 대통령선거캠프에서 벌어진 일이니, 당시 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아들 문준용씨의 고용정보원 입사에 개입한 것을 뒷받침하는 문건(카카오톡 캡쳐화면)과 음성 녹음파일(사실을 확인해 주는 목소리)은 적정한 절차를 거쳐 공표되는 것이 상식이다.

국민의당도 안철수 대통령 후보의 재가 없이 준용씨 취업특혜의혹이 공표되었다고 말하지 못한다. 또한 관련 날조된 증거를 2차, 3차 공표한 행위는 당 지도부가 사안의 중대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더구나 대선 이틀 전인 5월 7일 민주당이 "국민의당 익명의 제보자는 가짜가 분명한 것 같다"며 준용씨 친구 인터뷰 전문을 실명과 함께 공개했는데도, 국민의당이 재차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들이 5일 공개한 증언이 사실이라고 거듭 주장한 것은 쥐고있는 증거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익명의 제보자가 누구인지, 문건은 누가 무슨 이유로 어떻게 작성했는지, 최소한 녹음파일의 목소리는 누구인지 등의 진실 검증을 완료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행위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아무것도 몰랐다고 한다.

녹취파일의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공당이 당원 한 사람의 날조에 놀아났다고 시인하는 꼴이다. 이씨는 구속됐고 국민의당은 도마뱀이 되었다. 꼬리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자라나고, 이 사건조차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묻힐 것이라는 믿음이 연이은 그들의 해명에서 물씬 풍긴다.

반면 공당발 의혹제기이며, 선거판세를 뒤집으려는 의도가 뚜렷한 행위였는데, 거기에 합당한 검증작업이 없었던 점에 대해서 일말의 반성도 사과도 없다.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 없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형사책임은 별개의 문제다.

자체조사 결과 발표가 국민의당 스스로를 규정짓고, 이 사건에 대한 생각을 자백하는 것이라면, 우선 조사목표를 합리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자백이 있다. 이씨가 이준서 최고위원과 나눈 카톡 대화록에서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발언을 했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털어 놓자"고 건의한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또한, 녹음파일이 공표될 때는 음성이 변조 된 상태였는데, 음성이 변조되지 않았을 때 녹음파일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누구인지, 그 목소리가 이유미씨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제3의 인물인지, 음성변조는 누가했는지도 조사하지 않았다.

진상조사단은 이씨의 완벽한 단독범행이라는 조사결과를 내세우면서, 두 가지 조사목표 가운데 '공범의 범위'와 관련해서는 사실상 아무것도 조사한 것이 없고, 관련자들의 변명만 옮겨다 적은 꼴이다. 또다른 조사목표인 '검증실패의 원인'에 대해서는 충분히 믿을만 했기에 믿었다는 강변이 전부다.

날조된 증거를 공표하는 과정에 간여한 주요 인물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조사결과 발표를 마무리 짓는 말은 국민의당의 현주소를 환하게 비춘다. "검증에 실패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조직적으로 없는 증거를 조작할 만큼 미숙한 정당이거나 파렴치한 정당은 아니다.”

그러나 당사자와 언론에 의해 직접 제기된 의문사항을 뭉갤만큼은 파렴치하고, 제보된 내용을 공표하는 과정에서 단순하게 카톡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명의 이메일 주소를 확보하고, "이 주소로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하겠다는 메일을 보내 봤는데, 답장이 없어서 맞는 줄 알고" 검증완료를 선언할 정도로 미숙한 정당임은 분명하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공당(公黨)

어쨌거나 이유미씨는 일관되게 "모 위원장의 지시를 받고 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당이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진실은 검찰이 밝힐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의당의 침몰은 새롭게 쓰여지던 이 나라 정치사의 한 페이지가 뜯겨져 나가는 것과 같다.

우리는 지금 국민의당의 표상인 안철수의 몰락을 예견한다. 그는 중도 우파라는 진보적 캐치프레이즈를 표방하며 기성 정당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희망이자 대안으로 등장했던 그는 당내 파벌에 밀리고, 좌우 대립이라는 거대담론에 묻혔다.

애당초 정치적 지분이 없는 그로서는 야당이 지향하는 정권창출의 들러리로 머물러야 했고, 그러한 기성 정당 안에서 입지란 또다른 파벌 조성이라는 것을 절감해야 했다. 오직 대권이 지상목표인 그는 국민의당을 창당한 뒤 자신이 몸담았던 더불어민주당의 텃밭 일부(주로 전라북도)를 지난 총선에서 확보하고 19대 대선에 출마했지만 또다시 고배를 마셔야 했다.

문재인과 경합하리라는 예측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홍준표에게도 밀려 3위로 처졌다. 총 21.4%의 득표율을 보였는데, 국민의당 지지기반인 호남 득표율이 27%에 불과했다. 61%를 얻은 문재인 대통령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호남이 더는 안철수를 개혁 세력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소위 '선거 공작' 파동 이후 국내 유수의 여론조사 기관들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당 지지율은 5%를 기록했다. 원내 의석을 확보한 정당 가운데 바른정당(9%)은 물론 정의당과 자유한국당(7%)에도 뒤처지는 꼴찌를 기록했다. 호남만 놓고 봐도 6%로 더불어민주당(68%)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율은 안철수 평가와 궤를 같이한다. 이번 사건의 주역들이 모두 안철수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라는 점과, 사건이 발생한 19대 대선 당시 당 대표이자 대선 주자였기 때문이다. 당 내부에서부터 제기되는 정치적 책임론조차 임계점을 향하고 있다.

'부정선거 집단'의 대표로서 그는 모든 걸 잃었다. 때문에 국민의당이 호남이나 수도권에서 존립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안철수는 검찰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이미 치명상을 입었고, 사면초가에 빠졌다. 안철수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단언할 수 있다. 그의 몰락은 갈라파고스(Galapagos)의 비극을 연상시킨다. 중도적이며 지극히 이성적인 지지기반, 혹은 자기만의 신념이 그를 고립무원에 빠뜨렸다. 그가 조금 더 적절하게 감정을 표출하고, 정계나 국민들의 표준 사고(思考) 안에 녹아들 수 있었다면, 최소한 TV 토론회에서 감정의 결핍 또는 감정 표현의 미숙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그는 보편적인 지지의 범주안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자기 지지기반마저도 위태롭게 만드는 낯선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그의 글로벌하며 독보적인 경쟁력이 협소한 자기 지지기반에만 맞춤형으로 가공되다 보니 보편적 경쟁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것이 그와 국민의당을 조급하게 만든 이유다.

리더가 조급증 때문에 실족하면 뒤에 따르던 무리가 거기에 걸려 한꺼번에 곤두박질 치는 법이다. 목적의식은 강하지만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 자라지 못한 안철수는 우리의 천박한 정치 현실을 조명한다.

할거주의와 가신주의가 그를 막아섰기에 계보에 순치되지 못한 그는 배제 당했고, 그 장벽은 끝내 그에게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지 않았다. 그는 독을 품었고 극심한 내상을 입었다. 그나마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여유도 상실한 듯 보였다.

그는 격랑에 휩쓸린 채 검증받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 스스로 생각하기에 지극히 지엽적인 문제들 때문에 자주 궁지에 몰렸고, 그것이 그를 평가하는 전부가 되었다. 그는 좌충우돌 하면서 정치를 학습할 기회를 갖지도 못했다.

다시 말해 그는 정치를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정치를 마감해야 하는 비운의 정치인인 것이다. 자질은 최상이었으나 현실정치와 교감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이유로 그가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였다. 참담하고 참담한 일이다. 네거티브 선거는 어찌 국민의당만의 것이었으랴.

시작도 해보지 못한 정치

불현듯 중국의 엘리트 정치, 혹은 정치의 엘리트주의가 부러워지는 이유다. 몰론 다른 체제, 다른 환경이지만,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독특한 체제를 지닌 중국이 격변하는 세계의 판도에 조응하며, 13억 인구를 합목적적으로 이끄는 힘은 지도자의 완전무결에 가까운 지도력에 기반한다.

지금 세계 열강에 굴하지 않으며, 국제 무대의 표준 지도력을 갖춘 시진핑은 단적으로 중국의 엘리트 정치를 상징한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생활을 마친 뒤 허베이성 정당 현에서 공산당 부서기를 맡은 이후 국가주석이 되기까지 16개 정부와 당의 직책을 맡았고, 그가 통치한 지역의 주민은 1억5천만명에 이른다.

말단 행정조직부터 성 단위 행정조직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지방 정부를 맡아 본 풍부한 경험과 전문지식, 실무 능력을 겸비한 사람들로 공산당의 지도부가 구성되는 것이다. 우리의 대통령은 유권자들의 다수표를 얻으면 되지만, 중국 국가주석은 능력과 경험이 중요하다.

비록 한 명의 국가주석 후보를 10명의 상무위원들이 찬반 투표로 선출하지만, 그 이전에 최소단위의 지역에서 직접투표로 선출된 대표들이 직간접 선거를 통해 3,000명의 인민대표를 선출하고, 그 중 몇 백명의 중앙위원을 선출하고, 거기에서 30여명의 정치국 위원이 선출되고, 그 가운데 10명의 상무위원이 선출되는 협상민주와 선거민주가 결합된 결과다.

현명하고 능력있는 인재를 선발하는 엘리트 선발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를 잃게 되는 우리가 안철수와 같은 이를 다시 잃지 않기 위해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정치개혁의 모델로 절충된 협상민주와 선거민주는 어떨까 한다.

초당적, 초이념적, 민족적, 국가적, 장기적으로 구체화된 국가전략에 착수할 정치 인재를 길러내는 정치 시스템보다 더 다급한 일이 또 있을까. 국가와 국민이 국가 발전과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며 동참할 수 있는 정의롭고 희망찬 장기적 비전을 제시할 정당과 정치인이 자라날 토양 일구기를 더는 미룰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