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정조의 처지도 그랬다. 정조가 그랬던 것처럼 작은 일에도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것만이 시민들의 신망을 얻는 길이다. 음해로 입은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고 다가올 온갖 모함들을 근심하는 치우침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중용을 이정표로 삼기를 바란다.
관계를 떠나 부당한 것은 부당한 것이다. 시민들이 그것을 안다. 정 시장이 오직 시민들을 하늘처럼 섬기고 바르게 나아가던 중에 함정에 빠진다면 시민들이 분연히 나서서 끌어올리고 바로 세울 것이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역린'에서 왕의 서책을 관리하는 내관(상책)이 낭송한 중용 23장, 일명 기차치곡장(其次致曲章)이다.
'역린'은 정조 즉위 1년,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정유역변(정조 시해 미수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다. 살아야 하는 자, 죽여야 하는 자, 살려야 하는 자들의 엇갈린 운명과 역사 속에 감춰졌던 숨 막히는 24시간을 담았다.
그 엄혹한 시절, 저마다 사색당쟁의 비수를 품은 신하들이 어전에 모인 가운데, 정조가 누구든 중용 23장을 외워보라 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자 정조는 상책에게 해당 구절을 외우도록 한 것이다.
상책은 기차치곡장을 낭송한 뒤 "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덧붙인다.  
명대사다.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내관의 절도 있는 낭송이 짧은 순간이지만 어전을 압도한 점이다. 이 자리에는 대신들이 함께 있었다. 그런데 중용 23장을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나서는 사람이 없었을까. 내관의 건조한 목소리가 대신들이 뒤집어쓴 두꺼운 침묵을 뚫고 도저하게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이 차마 말하지 못하는 빈틈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위와 동시에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고 선언한 정조가 정통성에 흠결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일단의 무리와 담판을 짓는 성격이 짙은 자리였다. 정조는 그들에게 인간의 기본(본성)을 잊었느냐고 묻고 싶었던 것이리라.
기차치곡장을 품은 중용(中庸)이 사람의 본성을 밝힌 학문이라는 점으로 그것을 미루어 짐작한다. 중용은 기울어짐이 없다는 중(中)과 영원불변하다는 용(庸)이 결합된 명사다. 중용의 상태는 오직 감정을 다스리는 중화(中和)의 수준으로 결정되는데, 희로애락 등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의 내면을 중(中)이라 하고, 촉발된 감정이 중에 의해 조절된 상태를 화(和)라 한다.
중용에 부합하는 중화의 상태는, 자기 혼자만이 아는 곳, 또 여러 사람과 함께 있더라도 남이 모르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인욕과 물욕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또는 선과 악이 나누어지는 기미를 성찰하고 다스리는 신독(愼獨)을 통해 도달할 수 있다.
학문 중용에 따르면, 중용은 하늘이 명령한 본성이고,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고 이르며, 그 도(道)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고 이른다. 이렇듯 중용을 따름이란, 도달하여 과실을 따먹는 것이 아니라, 내·외부에서 비롯한 온갖 혼란과 갈등에 맞서 끊임없이 본성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중용을 전제하면 정조의 질문은 뚜렷해진다. '당신들은 한 나라의 중신들로서 본성을 따르고 있는가'이다. 본성을 따르는 일은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자신에게 정성을 다하고 있는가.
중용 23장의 행간에서 정조는 말한다. "나는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다. 오직 지극히 성실하지 않고서 그 뜻을 이룰 수는 없다. 나와 함께 자신과 사람과 사물의 본성을 밝히어 천지가 만물을 낳고 자라게 하는 것을 돕지 않겠는가."
"중용의 길은 천지의 낳고 자라게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사사로움이 없고 다하지 않음이 없는 덕을 구현해야 하고, 그것은 철두철미한 자기 성찰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정조의 은유는 그것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정조가 내관으로 하여금 기차치곡장을 낭송케 하는 이 한 장면은, 정조가 성취한 중용의 덕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즉위식 이후 1년간 일곱 번의 암살위협을 받으면서, "측근들에게 두렵고 불안하여 차라리 죽고 싶다"고 심경을 토로하던 그가 그 어전에 그렇듯 의연하게 서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 왕 노릇을 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하겠다는 천명이었다. 중용은 하늘과 사람을 하나로 보는 사상이니, 세상의 상궤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균형을 유지하려는 정조는 스스로 하늘 아래 떳떳하여 두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정조를 마주한 중신들은 그의 강력한 구심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절감했으리라. 본성의 저절로 그러함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힘이고 모두가 따라가야 할 길이기에.
급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극단적 갈등과 대립이 충돌하는 요즘, 균형과 조화를 창도할 중용을 소환하는 이유다.
특히, 범국가적으로는 문재인 정부가 중용의 가치를 내일의 지표로 세울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지역적으로는 검찰이 변화행 희망열차에 동승한 모습을 보며 참으로 중용을 구가하고픈 오늘이다.

정조와 문재인, 검찰 그리고 정헌율

막힘없는 국정운영과 약속을 기반을 둔 비전을 제시하며 반듯하게 나아가는 문재인에 자꾸만 정조를 오버랩하려는 욕심이 생기고, 석산비리사건과 관련한 익산시민들의 내상이 위중한 때에 수사를 신속하게 마무리 짓는 검찰의 책임 있는 태도를 보면서, 기차치곡장을 외우라 하며 추상같은 기개를 내뿜는 정조를 떠올리게 된다.
세상의 모든 병리현상은 본성을 잃어버린 데서 출발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절감하는 오늘이다.
불공정과 부조화가 만연한 어지러운 세상도 본성을 되찾으면 평정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오늘이다.
중심과 균형을 잃은 전북경찰의 칼에 피투성이가 된 정헌율 시장 역시 이제 조속히 신변을 정리하고 중용을 이정표로 삼기를 바란다.
정 시장은 민주당이라는 숲 속에 한 그루의 국민의당처럼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여있다.
정조의 처지도 그랬다. 정조가 그랬던 것처럼 작은 일에도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것만이 시민들의 신망을 얻는 길이다. 음해로 입은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고 다가올 온갖 모함들을 근심하는 치우침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중용을 이정표로 삼기를 바란다.
관계를 떠나 부당한 것은 부당한 것이다. 시민들이 그것을 안다. 정 시장이 오직 시민들을 하늘처럼 섬기고 바르게 나아가던 중에 함정에 빠진다면 시민들이 분연히 나서서 끌어올리고 바로 세울 것이다.
부디, 정시장이 본성을 되찾는 일에 끊임없이 정진하여 지역사회에 표류하는 가치들이 중심을 잡도록 구심력을 발휘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