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지난 5월 20일 '서울로 7017'이 개통됐다. 서울역 고가로를 보행전용으로 바꾼 획기적 사건이다. 전후 급속도로 팽창해 왔던 서울에서 속도와 효율 추구 일변도를 거스르기에 그렇다. 유수의 외신도 '서울이 도시의 정체성을 찾는 신호'라고 '서울로 7017'을 정의했다.

도도한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란 시대의 압력을 체감하는 일이다. 고통을 감당해야만 하는 일이다. 박원순 시장은 일부의 극렬한 반대와 중앙정부의 외면을 극복하고 끝내 수명이 다한 찻길을 사람 길로 바꾸었다. 인간 중심과 공동체 회복이라는 발상에서 비롯했다.

이 길은 파편화 된 서울의 도시구조를 봉합하고 연결했다. 철길과 10차선의 간선도로로 단절된 서울역 주변의 도시 공간들, 도시의 섬처럼 사방이 차량으로 둘러싸인 대형 건물들이 이 고가를 통해 모두 이어졌다.

서울역에서 이 길에 오르면 걸어서 10분, 20분 만에 남산과 남대문시장까지 도달한다. 길가에 꽃밭을 조성해 스카이가든이라고도 명명되는 이 길은 오직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스쳐가는 기계의 길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걸으며 고락을 나누는 길이 된 것이다.

느려지면 지나쳤던 것들이 보이고, 멈춰서면 더 많은 것들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다는 인문학적 요구는 사람들이 매일 치러야 했던 속도 전쟁터에서 비롯했으나, 그 전쟁터가 '공유도시' 혹은 '공유 사회'라는 시대적 가치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알지도 못하고 적응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변하는, 완결은 없고 늘 미완의 상태인, 새로운 것들이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쏟아져 나오지만 그래서 새로운 것이 없는 시대, 유연성만이 강조되는 획일화된 세상 속에는 개인에게 주어진 길이란 없었다.

다원적 민주주의 시대라 하지만 '나'가 없는 다원이란 신기루에 불과했다. '나'가 없는 공유사회 역시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서울로 7017'이 사람들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나'를 돌아볼 시간 혹은 ‘나’를 되찾을 시간이 아닐까 한다.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지나온 족적을 보고, 삶의 목표를 세우고, 적응할 수 있을 만큼의 속도 또는 자각할 수 있을 만큼의 변화를 추구할 것이다. 효율성이란 수용되고 지속되어야 만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서울로 7017'은 그래서 인간성의 회복으로 가는 치유의 길이다. 빠른 소통, 공간을 초월한 소통이 구축해 온 관계의 가벼움을 벗어나 같은 공간에서 더디지만 깊은 관계를 모색하고 견고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친밀한 길이다.

당장 경제적 효용성 못지 않은, 지속가능한 동력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서울로 7017'은 서울의 독보적인 경쟁력이다. 이 길은 지역공동체의 자산일 뿐만 아니라 국내 또는 국제적인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나아가 도시 재생의 새로운 지표가 될 것이다.

사람 길은 공동체 복원과 치유의 경쟁력

익산시가 바라보아야 할 지점이다.

인적이 끊겨 공허하며 빛바랜 영정통 길을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시킨다며 매달리고 있으나, 반짝 유희 이상의 문화를 생산해내지 못하는 도시로서, 구도심에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모여들게 하는 매력을 창출해내지 못하는 도시로서 직시해야 할 '서울로 7017'이다.

익산에도 새로 생긴 큰 길 때문에 골목길로 전락한 산업화시대 이전의 대로들이 곳곳에 산재한다. 익산역을 중심으로 구도심을 보면, 서쪽(송학동)에 시내버스가 다니던 '마살미길'이 있었고, 동쪽(중앙동)에 국도1호선이 있었다.

마살미길은 송학동에서 모현동, 배산까지 관통하는 대로였고, 국도 1호선은 시외버스가 운행하던 당시 남북으로 뚫려 대전까지 닿는 유일한 길이었는데 그런 이유로 지금의 평화동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와 중앙동을 연결하는 '대전사거리'를 거느린다.

이렇게 옛 대로들은 철도에 의해 동서로 분단된 상태이고, 동서를 연결하는 익산역 중앙지하차도에서 동산동까지 드러누운 4차선 찻길(익산대로 16길)은 중앙동을 분할하고 있다. 말하자면 철도를 중심으로 마살미길과 국도 1호선 안쪽을 역세권 구도심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도심은 찻길과 철길에 의해 동서남북으로 분단된 형국인 것이다.

역세권 구도심 재생이 사람길을 되찾는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다.

다행히 마살미길과 중앙동 쪽 국도 1호선은 오래된 이야기들을 보존하고 있다.

100년의 역사를 고작 320미터의 문화예술의 거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동서와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여러 갈래의 사람 길을 만들어 국도와 철도, 자연 발생한 도로가 지닌 100년의 역사를 복원하는 밑그림이 필요하다.

역세권 구도심을 품고 있는 마살미길과 중앙동 쪽 국도 1호선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사람 길 벨트를 완성하는 날, 이 길들은 비로소 사람들에게 걷는 목표를 줄 것이다. 그 안에 거미줄 처럼 얽힌 길들이 독보적인 경쟁력으로 등장할 것이다.

사람 길이 열려야 도시가 소통하고 지역공동체가 공고해진다. 신구의 조화와 일상과 일탈의 공존, 나눔과 유대의 풍경들이 부드럽게 빛나며 생동 할 것이다. 사람 길 벨트가 복원된다면 살고 싶은 곳, 자랑하고 싶은 곳을 익산시민들이 갖게 되는 것이다.

도시의 영광을 구가해 왔으나 어느새 공동화의 그늘에 파묻혀 도시의 섬이 되어버린 역세권 구도심은 사람의 길을 잃어버린 방랑자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서울로 7017'이 그 거울이다.

사람길 위에는 목표를 가진 '나'와 시간과 나란히 가는 '나'들이 모여들며, 함께 지역사회를 널리 이롭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 '나'의 집합이 큰 강을 이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