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익산 시민들은 6.4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을 시장으로 뽑았다. 혁명적인 결과다.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지배정당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을 그 이유의 후순위로 밀어낼 수는 없다. 오랫동안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이는 지역경제와 더 나아지지 않는 삶에 대한 정치의 책임이 적지 않기에 그렇다.

그런 와중에 새민련(민주당)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망국적인 계파주의 정치문화를 향도했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길을 가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제1 야당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진보적 색채도 퇴색되어 자기정체성마저 잃었다. 처지가 그렇게 위태로운데도 6.4지방선거에서는 밥그릇 싸움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파열음을 냈다.

특히, 익산지역의 시장을 비롯한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공천은 양분된 안철수 계파 공심위원들과 민주계 공심위원들간의 이전투구로 연일 이슈의 중심이 됐고, 부실공천은 선거기간 중에도 후보들 간의 난타전을 야기했다. 이로 인해 유발된 선거 히스테리는 거친 파동을 일으켰고, 시민들의 가슴에서 불쾌하게 공명하며 반발의 빗장을 열었다.

6.4지방선거는 오랜기간 표류한 민주당을 굴절 없이 투영했고, 선거 직전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민주당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짙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는 이유다. 산불을 이끄는 시민들의 그 바람은 전직 단체장에 대한 왜곡을 심화시켰다. 익산지역에서는 비리와 부채 책임론이 검증되지 않은 채 번졌지만 아무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 때, 박경철은 전직 시장에게 닥치는 큰 불길을 향해 날조한 비리사실과 천문학적으로 부풀린 부채를 기름 붓듯이 밀어넣었다. 그에 따른 사법적 책임에 앞서 이 나쁜 예는 지역사회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뜨린 심판론에 직면해 있다. 부당한 방법으로 직을 가로챈 성공사례이기 때문이다. 향후 그를 모방하는 정치 입지자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체계적인 공약이 거의 없고, 급조한 듯한 몇 개의 공약을 밀어붙이며 좌충우돌 오기정치로 일관하는 정체불명의 정치를 보면서 크게 낙망 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서는 새로운 사유습성이 낡은 습성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임시장의 혁신과 개혁 드라이브에 비하면, 극대비 되는 광란의 역주행에 소스라치게 놀랄 따름이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박경철은 '진보'여야 하지만, 보수만도 못한 '퇴행적 보수'다. 진보는 변화가 요구하는 지상명령에 부합하는 명분 없이 성립할 수 없기에, 적어도 진보진영 혹은 진보주의를 지향하는 사회구성원들의 공감을 얻어야 하는데, 박경철은 지난 150일 동안 그와 전혀 거리가 먼 태도를 취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진보의 탈을 쓰고 독단과 전횡을 일삼았다. 익산지역을 기준으로 그가 초래한 사상초유의 사태들이 그걸 명징한다. 감사실과 담당 공무원들이 부적정하다는 검토의견을 냈는데도 모현우남아파트 주민들에 대해 긴급대피명령을 내리고, 민간단체들이 주최하는 행사 식순에서 정치인들의 축사를 제외시키고, 의장과의 사적인 감정 충돌을 빌미로 공무원들에게 시의회 본회의에 불참하도록 명령해 대의기관의 업무를 방해하고, 제 입으로 재정비상체제를 선언하고는 익산문화재단과 이사의 업무를 방해하여 문화재단 재산으로 음악회를 열고, 체계적으로 부정적인 언론 보도에 대응하는 지침을 하달하고, 의회에서 자료제출을 요구하면 모두 시장의 결제를 받고 내주도록 하고, 기자회견장에서 특정 언론사의 기자에게 퇴장을 명령하고 공무원들을 동원해 취재업무를 방해했다.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진보라면 이런 일련의 행태는 지극히 진보적이다. 일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천둥벌거숭이로서 말이다. 박경철은 독선과 독단 혹은 역주행과 범법행위에서 새로운 장을 연 진보라면 진보 인사인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나쁜 노선의 예이며, 일말의 정치적 품성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대상이다.

재정비상체제를 선언하고, 국회의원들이 확보한 대규모 사업예산들을 지역분담금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한편 지역숙원사업들을 중단시키면서, 일반회계 세출예산을 247억원이나 늘리고, 소모성·선심성 예산의 전형이자 일명 언론 관리비인 홍보예산을 대폭 증액하는 이중성도 새롭다면 새롭다. 또, 그 홍보예산을 무원칙하게 편성하여 입맛에 맛는 언론에 전폭적으로 특혜를 주는 전횡을 자행하는 것도 참신하기 짝이 없다. 행정의 3대 원칙인 형평의 원칙과 공평의 원칙, 비례의 원칙을 짓밟는 막장드라마의 감독으로서도 매우 신선하다.

이중성의 목적은 속이는데 있다. 사기의 수단인 것이다. 박경철은 취임 후 100일이 자나기도 전에, 지난해에 편성되어 올해 특정 언론사에 집행되고 있는 예산도 집행을 정지시켰다. 피해 언론들은 일정부분 비판적인 보도를 견지해 왔다. 초유의 일이다. 명백한 직권남용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대해선 재정비상체제 아래서 불가피한 일이라고 둘러댈 수도 있겠다. 박경철은 반면, 취임 직후 편성한 추경예산에 우호적인 언론의 홍보비를 새로 편성했다. 이 경우에는 신생 지역언론을 보호·육성하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궤변을 늘어놓을 것인가.

즉흥적이며 충동적인 언행으로
갈등과 불안을 양산하는 박경철

재정비상체제라면 내년도 예산편성 과정에서 홍보비는 일괄적으로 일정 비율을 깎아야 온당하다. 건전재정과 고통분담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되레 증액하는데 그치지 않고 비판 언론사들의 예산은 전액 삭감했다. 박정희나 전두환도 울고갈 참신성을 박경철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균형을 잃은 사유습성의 소유자가 아니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련의 행태를 만류하거나 저지하는 공무원도 없다.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다. 일일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국면에 이르렀다. 박경철이 감히 '진보'를 사칭하지 말 것을 엄중하게 경고해야 할 때도 됐다. 유시민의 말처럼, 진보는 바람을 거슬러 나는 새와 같고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물고기와 같다. 단, '더 나은 세상'이라는 지표와 원칙이 거기에 있어야 한다.

하물며, 변화에 대응하는 정신적인 태도가 진보의 표식인데, 보신주의와 기득권 재편에 혈안이 된 구태로 언감생심 진보를 자처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진보주의의 길은 험난하다. '시대정신'이라는 절대명제를 제외하고 나면 진보주의는 여러 측면에서 보수주의보다 취약하다.  

보수주의는 인간의 본능에 부합하기 때문에 잘 무너지지 않으며 무너지더라도 단시간에 수월하게 복원된다. 반면 진보주의는 본능을 거슬러 가기 때문에 쉽게 단결하지 못하며 작은 오류만으로도 쉽게 무너지고, 한번 무너지면 복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진보주의는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새로운 사유습성을 창조하여 지배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운동이 진보주의다. 그런데 박경철은 어떤가. 즉흥적이며 충동적인 언행으로 갈등과 불안을 양산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기형적인 상황을 초래한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시민들을 돌려세우기 위해서는 참으로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바꾸는 변혁에 전부를 쏟아부어야 한다. 더이상 이렇게 시간을 무미건조하게 흘려보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