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사람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서로가 같은 지점을 바라보아야만 해법을 찾을 수 있다. 협상을 하고자하면 문제의 핵심에 집중해야 한다. 어느 한 쪽이 지엽적인 문제로 핵심의 외곽을 때리면서 상대의 굴복을 강요한다면, 새로운 문제가 더 추가될 뿐이다. 분쟁이 장기화되는 곳에는 반드시 본질에서 벗어난 획책이 있다.

주제에서 벗어나는 쪽은 대개 분쟁의 원인을 제공한 주체다. 본질에 대한 논쟁으로는 승산이 없는 쪽이다. 일정 부분 양보하지 않고서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데, 욕심을 줄여 타협하는 대신 상대를 공격하는 쪽을 선택하면서 불행은 시작된다. 축구선수들이 공을 차지 않고 사람을 차는 것처럼 룰이 없는 난투극이 벌어지는 이유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대립구도를 테이블 밖으로 끌고 나간다는 것이다. 진영논리로 확장해서 사회공동체의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다. 함께 나아갈 길은 보이지 않고, 한쪽이 무너져야 끝나는 지리멸렬한 싸움이 장기화되는 배경이다. 이런 사회병리는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집단간 계층간에 벌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충돌과 그로 인한 교착상태에서 대체로 드러나는 병리다. 특히, 그릇된 정치집단 혹은 정치인들은 그런 권모술수에 강한 면모를 보인다. 자기 문제를 진영의 문제로 떠넘기고 대립각을 세우며, 상대가 제기하는 문제를 진영논리의 해코지로 폄훼하고 시선을 그 쪽으로 돌려 자신은 짐짓 그에 따른 피해자가 되어 해법을 찾아야 할 책임을 벗어버리는 행태가 그 대표적인 행태다.

지난 8월 말에서 9월 초까지 이어진 익산시 의회의 2014년 1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와, 지난주까지 각 상임위원회별 축조심의를 마무리한 2015년 익산시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지역사회에 유포되었던 기성 정치권에 대한 비난이 '결코 해법에 접근하지 못할 분쟁'을 예견케 한 단초다.

비난의 요지는 "무소속 시장이 당선되니 새정치민주연합 시의원들과 기성 정치권 인사들이 협조를 하지 않고 훼방만 놓아 익산시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정치역학 구도로 보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당선 자체로 역사적인 사건인 무소속 시장은 뭘 잘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불리한 입지를 잘 설명해주는 솔깃한 말이다.

의회를 길들여야 할 대상 쯤으로 치부하고, 불통과 독선 또는 독단으로 시정을 이끌며 의회를 적대시하는 무소속 시장은 비난에서 빠져있다. 이를테면, 민선6기는 초입에서 9개 과단위 부서의 함열 이전이나, 먹는물 체계를 광역상수도로 전환하는 등의 정책을 일말의 검증이나 합의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다 의회에 가로막혔다.

일부 부서 이전이 북부권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경미하고 행정의 효율만 떨어뜨릴 것이라는 지적과, 안전하고 값싼 물 공급체계를 폐지하고 시민들에게 비싼 물을 강요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시민사회와 익산시의회 의원들의 검토 결과에 따른 제동이었다. 그러나 부실한 정책을 세우고 이를 밀어붙이는 무소속 시장의 책임론은 온데간데 없고, 기성 정치권의 비협조로 지자체가 난관에 봉착했다는 부정적인 기류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민선 6기는 올해 1차 추경예산안에 이 두개의 사업비를 편성했다가 의회에서 부결시키자 내년도 예산안에 다시 편성해 상정했다. 수개월 동안 어떤 공론과정도 거치지 않고 보완하지 않은 안건이다. 예의 확산시키기 쉬운 흑백논리에 기대지 않고는 하기 어려운 작태다. 

이 흑백논리에는 감사원도 현혹됐다. 시장 자신은 물론 공무원들에게 익산시의회 정례회 본회의장에 참석하지 말도록 지시해 의원들의 정당한 시정질문을 방해한 초유의 사태를 정치적인 문제로 간주해 익산시의회가 청구한 공익감사를 기각한 것이다. 기성 정치권을 대리하는 의회와 무소속 시장간의 정치적 힘겨루기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 정도로 판단한 결과다.

이는 익산시의 소명에 전거한 결론일 터이다. 하지만 무소속 시장의 직권남용과 대의기관에 대한 업무 방해 사태는 무소속 시장의 사적 감정에서 기인했다. 민간단체 주관으로 몇 차례 열린 행사의 식순에서 자신을 제외한 정치인들의 축사를 빼도록 지시한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패악이 초래한 불상사다.

잇따른 축사 제외에 참다 못한 익산시의회 의장이 연단 아래에서 독재시대로 회귀한 무소속 시장의 전횡에 불만을 터뜨렸다. 별 꼴 다 본 사람의 한탄이었다. 그러자 익산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의장의 사과와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의회가 이를 논박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공방전이 벌어졌다.

익산시는 거듭 의회를 압박하는 보도자료에서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의회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것이 시장과 공무원들이 떼로 의회의 시정질문을 방해하는 구실이었다. 따라서 이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며 정치인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날뛰는 무소속 시장의 한풀이가 촉발한 것이다.

무소속 시장의 한풀이 '참담'

그 이후로도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의원들의 고압적인 자세와 불손한 태도를 고쳐놓겠다며, 의원들이 요구하는 자료는 모두 시장의 결재를 받아 제공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무소속 시장이 만기친람을 하는 바람에 의회의 감시기능이 거의 마비상태에 이르렀다. 의회와 집행부의 갈등과 반목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의회는 집행부와 수직적이거나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다. 의회는 집행부에 대한 감시활동을 주권자들로부터 위임받은 기관일 뿐이다. 행정이 의회를 파트너로 삼을 수 없는 까닭이다. 수감기관으로서 주권자들의 대행자에게 성실하게 소명하고 지적받을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집행부의 숙명이다.

그러나 무소속 시장은 지엽말단에 매달려 본질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처한 정치역학 구도를 방패로 삼아 모든 책임을 기성 정치권으로 전가하고 있다. 이것은 시민들을 속이는 행위다. 또 그런 견지에서는 누구의 말도 들을 필요가 없어 보인다. 누구든지 충고하여 좋게 인도하되, 듣지 않으면 그만두어 도리어 욕됨이 없게 할 것이니, 그 옆에서 누가 충언을 하겠는가. 사람이 없는 정치가 디디고 설 곳은 어디에 있겠는가.

최근 익산시 의회는 빚을 갚거나 생산적인 곳이 아니라 소모성, 선심성 예산 94억원을 삭감했다.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또다시 진영논리로 진실을 호도하며 익산시 의회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옛 말에 나라를 지키는데 절박하다면 군사를 버리고, 식량을 버리더라도 믿음을 저버려서는 안된다고 했다. 누구나 한 번은 죽으나 백성들이 믿지 못하면 나라가 서지 못하기 때문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