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해는 바뀌었지만 을미년의 하늘은 밝지 않다. 익산지역의 경우는 지방선거가 끝난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권자들의 사실 오인과 정치인의 거짓말, 심판, 뒤늦은 각성과 혼란 같은 요소들이 뒤범벅 된 먹구름이 전혀 걷히지 않은 탓이다.

좌충우돌 충돌을 일삼고 예측불가능한 행동을 자기 정체성으로 여기는 듯한 정치인의 출현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정치인들 사이에 깊은 기압골이 형성됐다. 더 우려되는 것은 권력을 쥔 쪽과 견제하는 쪽이 대립하면서 양편의 편가르기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갑오년에 넘어 온 이상기류의 실체는 바로 '분열'이다. 서로 자신의 정당성만을 내세우는 바람에 일말의 완충지대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 꽉 막힌 경색국면이다. 얼핏 보면 진보와 보수진영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익산의 정치적 분열 양태는 그런 진영 나뉨과는 애시당초 다르다.

우선은 기초의원 대부분과 광역의원 및 국회의원들이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다. 새정연은 이 나라 제1 야당으로 진보를 표상한다. 보수정당인 새누리에 수적으로 밀려 실패하는 일이 많고 조직이기주의 때문에 타협도 잦다보니 정체성이 희박해지긴 했지만, 새정연은 여전히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정당이다.

그렇다고 새정연을 온전한 진보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국민들은 엄연한 자유시장경제체제 아래서 경쟁하는 삶을 살고 있고, 그런 체제를 부정하는 정강정책은 외면받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새정연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체제 사이에서 오락가락 한다.

더구나 조국의 분단 현실 속에서 조금만 좌측으로 발을 디디면 이념논쟁에 휘말려 뭇매를 얻어맞고 이전보다 더 많은 정치적 입지를 잃고 만다. 이는 국민의 일상이 인정하는 징벌이다. 어쩌면 헌법이 정한 경제민주화도 경쟁제일주의에 노출된 국민적 정서를 해석의 척도로 삼을 때 무색해질 따름이다. 새정연이 무기력하게 보이는 것은 거기에서 비롯한다.

그렇다면 최근에 헌법재판소로부터 해산명령을 받은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일까. 아니다. 많이 번 만큼 사회에 환원하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는 진보적일 수 있지만, 엄밀히 '경쟁'의 반대편에 서있지도 않으며, 다원성을 받아들이고 소통을 앞세우는 진보의 덕목을 익히지도 못했다.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새누리당은 어떤가. 과실을 고르게 나눈다는 것, 많이 번 사람이 그런 환경을 조성해주고 협력한 사회에 보통사람들보다 더 번 만큼의 이익을 환원해야 한다는 것은 보수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제다. 보수주의는 경쟁의 원칙을 사회구성원리로 삼기때문이다.

그래서 새누리당은 진정한 보수정당일까. 그렇지 않다. 탐욕스럽기 때문이다. 원칙을 깨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인데도, 더 많은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자주 진보의 탈을 쓴다. 진보여야 할 다른 정당이나 정치세력들의 설자리를 빼앗는 것이다. 새누리당 자신이 새로워졌다고 국민들 앞에 내미는 건 사실 진보적 보수를 자처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어느 순간 제자리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보수'야 말로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정치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보수정당이 가장 잘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부(富)를 축적할 기회, 신분 상승의 기회를 증대시킬 수 있다면 시장주의 아래서 보수는 안정정당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고 자원은 유한하다. 새누리당이 다른 정당들이 사활을 걸고 표방하는 정강정책을 표절하는 것은 자신의 그런 한계를 절감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자신은 완전히 수정할 수도 없는 숙명을 안고 있다.

이렇게 이 나라와 이 지역에는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필요에 따라 거리낌없이 변신하는 정당들이 존재할 뿐이다. 정치에 도덕이 요구되는 이유다. 특히, 조지 레이코프가 제시하는 바와 같이 엄격한 보수와 진보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상호 보완을 통해 도덕정치의 완성을 이루어야 한다.

을미년에는 권모술수가 아닌 정치가 발아하는 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레이코프가 상정하는 진정한 의미의 보수와 진보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의 어법에 따르면 '경쟁'은 보상의 원천이고, 사회적으로 올바른 사람을 육성한다.

나아가 경쟁은 도덕이다. 적절한 자제력을 갖춰 성공할 자격이 있는 존재가 되는 것, 이세상을 살아가기에 충분하고 다른 세계에서도 번성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경쟁을 통해서다. 그러니 경쟁을 통하지 않고 어떤 보상을 주는 것은 비도덕적이며 그것은 전체 시스템을 위반하는 것이다.

보수주의자가 보기에 경제민주화를 주장하고 그 실현에 앞장서는 진보주의자는, 자제력이 있는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동기와 경쟁의 질서에 순종해야 될 필요를 제거하려고 하는 위험한 존재다. 이 세상이 경쟁적인 장소로 존재하고 유지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기 발전과 자기 재능을 멈춰버리게 된다.

보상과 징벌이 없다면 스스로에 대한 각자의 권위는 쇠퇴할 뿐이며, 사람들은 더이상 계획을 세울수도, 그들의 약속에 헌신할 수도,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도 없게 된다. 모든 사회생활은 완전히 정지하게 된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경쟁과 권위는 우리가 생산하는 물질적 축복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유지되어야 한다.

도덕적 세계에서 경쟁이 필수요소이고, 올바른 종류의 사람을 낳기 위해 필수적이라면 사회적으로 올바르며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아주 좋은 사람의 지위에 오른다. 그들 집단이 곧 엘리트 지배층이다. 보수주의는 그들의 권위를 옹호한다.   

견제와 균형, 상생을 이루어 내는 진정한 보수와 진보의 출현을 바란다

그렇다면 진보주의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가. 최대한의 애정이 연결되고 상호 존중하며, 국가와 개인 또는 개인과 개인간의 의존이 지배하는 세계다. 정당한 권위는 지혜와 판단, 감정이입 같은 보살핌의 능력에 따른 결과여야 한다. 권위는 지배로부터 나와서는 안 된다. 지배는 오직 모두가 잘 사는 공정한 분배를 실현하기 위해서만 허용된다.

상대방의 입장과 느낌을 알고 이해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 처럼 그 사람에게 해주는 것. 남을 돌보기 위해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 등이 진보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공동체의 도덕이다.

그들의 세상에서는 의사소통을 중시하고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며, 최소한의 위계(位階)적인 관계만 승인하며, 사람이 보상과 징벌의 세계에서 거기에 맞도록 재단되지 않도록 하며, 창조적이며, 자기 탐구와 개방성이 강조되는데, 이는 절대다수로부터 존중받으려는 동기에서 비롯한다.

이같은 보수와 진보의 전형을 들여다 보면, 보수는 엄한 아버지와 같고 진보는 자애로운 어머니 같아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다. 아버지의 역할로 나라나 지역의 중심을 잡고, 어머니의 역할로 시민들을 챙기고 살림을 돌보는 각자의 기능을 지니는 것이다.

그러자면 이 나라와 지역에 확실한 보수와 진보가 출현해야 한다. 이는 상호 견제의 균형을 잡고 상생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또한 진영간의 뚜렷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진정한 보수와 진보를 바로세우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도덕성 회복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화법을 구사하더라도 상대방의 역할과 도덕적 가치를 인정할 줄 안다면 상대를 이해할 수도 있고 상생할 수 있다. 보수도 진보도 서로에게 부끄럽지 않는 세상이 을미년에 열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