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 282호 천만금을 지불하고 살만한 이웃이 있는 도시를 바라며

282호 천만금을 지불하고 살만한 이웃이 있는 도시를 바라며

편집국장 공인배

사람은 누구든지 불나방이나 파리의 우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인지 모른다.

꿀냄새가 나는 아교인 줄 알면서도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해 끈끈이띠에 착지하고 거기에 혀를 박는 파리나,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에 취해 주저없이 불길에 뛰어드는 불나방이나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범주안에 있다.

죽음에 임박한 줄 알았으면서도 단물을 빨며 망각하는 파리나, 일렁거리며 현란한 춤을 추는 불꽃의 아름다움에 반해 불길에 날개와 살이 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나방이나 모두 자유의지에 따른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삶의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부비트랩을 늘 경계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어차피 찰나에 의탁하는 삶, 위험을 감수하는 저마다의 선택은 나름의 가치를 지녀야 한다.

생명을 유지하고 번식하는 것도 한바탕의 삶이고, 죽어도 좋다고 생각되는 일에 전부를 던지는 것도 한바탕의 삶이다. 그렇다고 서로 배타적인 삶도 아니다. 최후의 혹은 매 순간의 선택은 모두의 권리일 뿐이다. 다만, 그런 자유로운 선택은 정상적인 서식환경에서 허용된다.

지속적이거나 단절적이거나 그 나뉨을 도덕적인 측면에서 보면, 물질적 보상 없이는 도덕성을 기대하기 힘든 쪽과 물질적 보상 없이도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쪽이 우리 사회에 공존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형이상적 삶의 태도를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극한의 기아에 허덕이면서 물질의 유혹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불나방의 마지막조차도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지 외부적인 악조건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집착'이거나 '초연'이거나 선택에 의한 것일 때를 온전한 삶이라 하고, 강요받거나 선택의 기회를 갖지 못할 때를 불완전한 삶이라 할 만한 이유다.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살게 된 이후 정치의 요체가 민생과 도덕이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해야 비로소 윤리와 도덕이 생긴다. 먹고사는 일이 불안정하더라도 변치 않고 도덕과 윤리를 지키는 사람은 아름답다. 그러나 정치란 물질적 토대 없이 도덕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사회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을미년 벽두에 익산을 바라보면서 갖게되는 생각은 생존에 매달리는 사람이나 매혹적인 가치를 좇는 사람의 서식환경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소비심리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 소비도시 익산의 경제인구들은 궁여지책으로 상업 쪽에 쏠리고 그 공급 규모는 갈수록 커져가고 있으나 소비주체들의 경제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탓이다.

부가가치가 극미한 제조업 일색 등 열악한 산업구조와 붕괴되는 농촌 경제. 거의 사라진 토목건설 경기, 도내에서 주도권을 잃어버린 교육 위상 등 악재들이 엎치고 덮쳤다. 한마디로 먹고 살 것이 부족하다. 자치단체가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고 필요한 곳에 혈세를 수혈해야 하는데, 되레 관련 분야의 예산을 대폭 줄여버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100억 가까운 돈을 소모적인 곳에 쓰려다 의회에 제동이 걸렸다. 익산의 정치는 이처럼 민생과 도덕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익산의 정치는 실종됐다. 좌충우돌 충돌과 반목만 양산하고 있다. 떠나는 시민은 기회를 찾아가는 것이지만, 남은 시민들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경쟁에 매달려야 한다.

먹고살기 위해 혈투를 벌이고, 당장의 풀칠을 위해 뻔히 알면서도 죽음의 링에 오르는 힘겨운 삶이 도처에 널렸다. 도덕이 무슨 의미이겠는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문화가 과연 융성할 수가 있겠는가. 자유의지가 숨쉴 공간이 없으니 선택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막다른 곳에 쫓겨 불길로 뛰어들어가는 불나방은 "아름다운 것을 좇는 본성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노라"고 자위할 따름이겠다. 아무리 모진 현실의 질곡도 그런 마지막 자존심은 속박할 수 없을테니까. 뒤집어 보면, 시민들이 먹고 살 것이 없어 익산을 떠나는 것은 정치인에게 죽음과 다르지 않다.

삶은 각박한데 민생과 도덕을 제거하는가

그런 와중에 익산시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뜻의 제구포신(除舊布新)을 선정했다. 익산시가 펼치려는 새로운 것으로 열거된 것을 보면, KTX호남고속철도 전면 개통과 미륵사지·왕궁리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확정, 익산 식품클러스터 본격화 등인데, 이는 이미 전임 시장과 정치인들이 이룩한 업적들이며 그 연속선상에 있고 결실을 거두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다.

새롭게 제시된 것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과거의 성과에 무임승차 하면서 무엇을 새롭게 펼친다는 것인가. 차라리 텅텅 비어있는 익산일반산업단지에 국내 유수의 기업들을 유치해서 일자리를 늘리고 세수를 늘려 소비환경을 확장하는 등으로 익산발전을 견인하겠다면 조금은 더 현실적이고 새로워 보일 것 같은데, 그런 약속은 없다.

민생과 도덕이 묵은 것이고, 각박한 시장(市場)이 새로운 것이라는 명제를 전제한 제구포신은 아닐 것이다. 익산시는 당장 눈곱만큼이라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 기존의 황홀한 비전으로 불나방을 유인할 수 있겠지만, 당장 아사 직전의 서민들을 붙잡을 수는 없다.

정작 버려야 할 묵은 것은 익숙한 자기 아집일 것이다. 그것은 불통의 원인이며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지역사회가 당장 기근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소통하는 것, 함께 화평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도덕성과 문화의 융성을 위해 소통하는 것이이야말로 지금 익산시장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닌가 한다.

집을 사는 데는 백만금을 지불하고 이웃을 사는 데는 천만금을 지불한다는 옛 말이 있다. 을미년 벽두에서 익산이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도시이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이유다. 누구든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이 도시에 조성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