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독일 문학의 교황으로 추앙받고 있는 문학비평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비평가의 덕목으로 '정직'과 '명료' 그리고 '항상 대중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를 꼽았다. 그의 삶도 여기에 부합된다. 동료 비평가와 작가들에게 영합하는 글을 거부하고, 동료 비평가들과 작가들의 온갖 비난과 공격·논쟁에 굴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명료하고 명징한 비평으로 대중 옆을 지켰다.

그의 신랄한 독설 앞에는 불가침의 영역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서서 자신의 주장을 전개했다. 동시에 기득권세력의 독점 시스템에 의해 밀려나 생매장된, 그러나 대중들의 윤택한 삶에 폭넓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작가와 작품들을 대중들에게 환기시키는데 전력투구했다.     

라이히라니츠키가 제시한 명제는 근래 익산지역의 언론환경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그가 자신이 설정한 지표대로 실천한 삶은, 특정 언론의 올바른 비평을 폄훼하기 위해 특정 언론을 '다른 패거리'의 대변자로 낙인찍는 정치집단과, 그 나팔수를 자처하는 일부 언론사들이 눈을 씻고 살펴야 할 명경지수가 아닌가 한다.

정치인이 특정 언론사를 다른 패거리로 낙인하는 저의는 정당한 비판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며,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하지 않는 태도다. 따라서 미숙한 자기를 성숙시킬 바탕도 조성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니, 유권자들이 기대할 것이란 없다.         

거기에 발을 담근 일부 언론은 진영의 정치적 목적에 편승하고 있다. 오히려 편가르기를 심화시켜 자기이익의 크기를 키우겠다는 야욕에 혈안이다. 한정된 먹이를 독식하기 위해 나눠먹을 입을 제한하겠다는 셈법은, 특정 언론사와 관련한 없는 허위사실을 만들어 정보랍시고 정치인에게 제공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를테면, 특정 언론사가 특정 정치인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입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사실을 가공하여 정치인에게 제공하는 따위의 작태다. 정치인이 특정 언론사의 비판을 정적(政敵)을 대리하는 공격으로 인식하는 오류는 그런 부정한 정보들이 초래한 부작용이다.

그런 덕택으로 일부 언론들은 2015년도 익산시 예산안에 자신들 몫의 홍보비를 그야말로 파격적으로 편성케 하는데 성공했다. 당연히 특정 언론사들의 홍보예산은 단 한푼도 편성되지 않았다. 일부 언론사들은 그야말로 기득권세력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들이 이른바 기득권세력이라고 명명한 특정 언론사들을 밟고서 쟁취한 고지다.

라이히라니츠키가 말하는 '정직'이라는 비평가의 덕목은 무엇을 말하는가. 비판을 절반의 기능으로 삼는 언론에게 그것은 생명이다. 비판이 불신을 받으면 공신력을 잃는 것이고, 공공재로서의 가치도 상실하게 된다. 정치와 언론, 혹은 언론과 취재대상이 가깝지도 멀지도 않아야 한다는 격언이 언론의 지표로 자리잡은 이유다.

가까워질수록 권언유착을 염두에 두고 더욱 두려워해야 하는 법이다. 과도한 지원과 혜택은 필경 정치인과 언론을 한꺼번에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정직할 수 없다면 더이상 존재해야 할 이유도 없다.

비평가의 덕목 가운데 '명료'는 무엇인가. 문제의식과 고민이다. 사안에 대한 진지하고도 진정성있는 고찰이다. '명료'는 동시에 언론의 책임이며 의무다. 깨어있으며 살얼음판을 걷는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그것을 명료하게 드러내 보여야 한다.

이것은 언론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무엇을 명료하게 밝힌다는 것은 앎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전하는 수준은 앎의 깊이와 넒이가 결정한다. 그것은 곧 언론의 '격(格)'이다. '격'은 사안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모든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몰입하는 것이다. 

이렇게 '격'은 성실한 의도이고 본질에 다가설 수 있는 열정이다. 본질을 길어 올리는 곧은 마음으로 삿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밝히는 것이 바로 '격'이다. 언론은 이같이 의문을 품고 앎에 이르기 위해 열정을 쏟아붇는 노동집단이다. 노동으로서의 언론을 생각할 때 슈마허의 설파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노동의 목적은 단지 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타고난 각자의 재능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협력하기 위한 것이다" 노동의 명제는 알베르 카뮈가 가장 적실하게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되어 죽어 간다"

방법론은 각자의 몫

삶의 격이란 사람이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이며, 언론의 격이란 더 나은 세상을 보는 눈이다.

라이히라니츠키가 비평가의 덕목으로 제시하는 '항상 대중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를 언론에 대입하면 그 모토란 '공익'이다로 풀이된다. 시작과 끝이 공기(公器)로서 합당한 것이 언론이고, 한결같을 수 없다면 존재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공익의 곳간은 공의로운자 만이 열수가 있다. 공평이란 치우침이 없는 균형감각이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공동선을 치열하게 좇고, 상궤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절대다수 대중의 공익감정을 한시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의로움이란 변질되지 않는 신념이다. 부와 권력에 굴하지 않으며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주어진 조건하에서 비판은 손해를 감수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다. 지적을 달게 삼키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다른 패거리로 매도될 가능성에 노출되고, 당장에 보복을 당한다. 또한 갖가지 모함과 음해, 공작에 상처를 입고, 필화를 겪어야 한다.

그러나 부와 권력에 빌 붙으면 모든 것이 쉽다. 용비어천가만 부르면 다 얻을 수 있다. 그러면서 대중의 신뢰도 얻을 재주가 있다면 더이상 나무랄데가 있겠는가. 방법론은 각자 다를 수 있다. 그렇게 잘 살면 될 일이다. 하지만 내버려 둬도 험로를 가는 언론에 돌을 던져 굳이 벼랑 아래로 떨어뜨리려고 할 필요까지야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