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최근 국회를 중심으로 복지와 증세 수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며 복지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입니다. 국민에게 부담을 더 드리기 전에 우리가 할 도리를 다했느냐, 이것을 우리는 항상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세수가 부족하니까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된다면 그것이 우리 정치 쪽에서, 국민에게 할 수 있는 소리냐, 그것이 항상 제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일입니다"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자신의 뜻을 이같이 밝혔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 많은 오류를 안고 있는 말이므로 다음과 같이 수정돼야 한다.
"우리는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는 복지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2년을 투자한 끝에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선공약으로 내걸기 전에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한지를 검증하는데, 할 도리를 다했는지 우리는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 등 고소득 주체들에게서 비례의 원칙에 어긋나는 혜택을 회수하고 더 많은 세금을 합당하게 걷어들이면 일반 국민들의 부담을 최소화 할 수 있는데, 대선과정에서 증세없는 복지를 실현할 수 있다고 저와 우리 정치 쪽에서 국민들을 속인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이었느냐, 그것이 항상 제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일입니다"     

더구나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겠다고 공약했다. 경제민주화는 보편적복지와 맞닿아있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의 탐욕과 횡포에 대한 규제' 또는 '중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의 보호' '노동3권의 보장' 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약속한 대로 하고자 했으면 지난 2년을 허송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증세없는 복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박근혜를 선택했다. 증세 없이도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절박한 나머지 국민들은 기적을 바랐다. 확신에 찬 박근혜 후보의 목소리와 짐짓 그보다 더 진정성이 있을 수 없는 눈빛 앞에서, 모순이 진실로 환치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질 실업인구는 500만명을 넘나들고, 가계부채가 1,000조를 초과한 현실 속에서는 실현불가능한 공약(空約)이 마법처럼 통했던 것이다. 쥐꼬리만한 수입으로 근근히 풀칠하는 국민 99%는 살인적인 무게의 물가고에 시달리고 설상가상으로 공공요금은 줄인상되는 가운데, 1%에게 부과하던 세금은 깎아주면서 99%에게는 증세로 고통을 분담시키던 시절이었다.

절묘한 타이밍의 국민기만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비정규직을 양산해 그나마 실업율은 쥐꼬리만큼 떨어뜨렸지만, 부를 독점하는 재벌들의 투자를 이끌어내지 못해 정규직 일자리는 거의 늘지 않았다. 실제 100만명에 육박하는 청년들에게 처음부터 기회조차 주지 않는 나라다.

또한 되지도 않는 증세없는 복지 정책은 임계점에 달해 담배세와 주민세 및 자동차세 등의 서민증세로 대란을 일으켰다. 1%를 비롯한 고소득자들에게 비례에 맞는 세금을 물렸다면 겪지 않아도 될 혼란이었다. 지금과 같은 재벌구조하의 비인도적 시장은 필연적으로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일자리의 지층을 엷게 만든다.

실업자가 창업에 내몰리는 바람에 자영업의 비율이 증가하고, 규모가 작은 자영업에 종사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기회가 균등한 나라가 강한 나라다. 정규직들이 늘어나야 세금을 더 많이 걷어들일 수 있고 복지도 공고히 할 수 있다.     

증세없는 복지라니, 집권을 위해 국민을 미혹한 죄가 크다. "증세없는 복지는 불가능하고 정치인이 그런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지적이나, 같은 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비판은, 지난 대선에서 수권을 위해 한통속이었던 그들의 자아비판처럼 비쳐져 처연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를 향한 집권여당의 쓴소리는 바닥을 치고있는 국민여론을 반전시켜 보려는 국면전환의 몸부림일 뿐이다. 이른바 정부의 실책을 부각시켜 자신(새누리당)은 다르다는 착시효과를 노리는 수법은 우리가 신물나게 경험해 왔다. 비근한 예로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정권을 교체하자"고 강변해 쏠쏠한 이득을 취한 바 있다.

당장에는 국민들의 분노를 분산시키는 이런 행태는 내년 총선에 대한 위기감의 발로이면서, 동시에 혼란의 틈새를 이용해 복지논의의 샅바를 깊게 움켜쥐고 자기 쪽으로 한껏 당겨보겠다는 속셈을 내포하고 있다.

이를테면, 기왕에 불거진 복지재원을 충당하기 위한 증세의 불가피성을 앞세워 국민들에게 고통분담을 강요하고, 차제에 선언적 의미로나마 존재하는 현 정부의 보편적복지 정책을 선별적복지 정책으로 환원시키려는 노림수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일관되게 보여 온 새누리당의 기조다. 친기업적 마인드와 성장주의 이념에 쩔어있는 당색이 그것의 표징이다.

새누리당은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보조해야 한다'는 보편적복지를 구조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은 비단 복지정책에 국한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위시한 노동의 문제를 수반하며 궁극적으로는 대기업에 응당한 책임을 지워야 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늘 그랬듯이 매우 설득력있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는 것만이 복지'라는 선별적복지론을 내세울 것이다. 나 혹은 다른 누군가가 복지 수혜의 대상이 되는 것, 복지 자체를 철저히 타자화하고 대상화 하는 것, 판단하는 주체에 의해 대상의 범위와 수준까지 결정되는 것이 온당한 복지라고 주장할 것이다.

사회의 보편적 수준에 맞추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 누구에게는 필요하고 누구에게는 필요없다는 낡은 논리의 수호자를 자처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최소한 인간적인 모멸감과 분노는 느끼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 복지'라는 취지의 말이 나오면 "그것은 복지과잉"이라고 한다. 지난 5일 김무성 대표가 그랬다.

같은 날 OECD와 관련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대한민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10.4%에 불과하다. OECD 28개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인 28위에 해당하는 초라한 수준인데 김무성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을까. 게다가 그는 "복지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지고 나태해지면 부정부패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고 덧붙였다.

이 주장의 논거로 그는 복지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으면서 국가부도위기를 맞은 그리스를 예로 들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리스 산업의 구조적 병폐를 비롯한, EU 가입에 따른 통화정책의 실패, 민간에 대한 과잉투자, 유럽 최고수준의 지하경제, 정치인의 부정부패, 국가재정 상태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보장 비용 등 총체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또한 최고수준의 국민복지가 실현되고 있는, 그래서 그의 주장대로라면 수십년 째 복지과잉이 이루어지고 있는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의 국민들이 전혀 나태하거나 게을러지지 않은 이유를 논급하지 않았다. 애초에 '복지과잉'이라는 말은 복지를 국민의 권리가 아니라 시혜차원으로 보는데서 기인한다. 또 신자유주의 논리가 소이연이다.

국면반전용 ‘증세’ 충돌
흥행 꼼수
보편적 복지는 폐기하고
선별적 복지로 회귀하려는
노림수
국민들은 또 속아
두마리 토끼를 모두
헌납할 것인가

이런 새누리당의 사변 위에서 박근혜 정부를 바라보면, 둘의 충돌은 그들의 파국이 아니라 불리한 국면을 타개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한 상호작용으로 밖에 달리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짓말에 더는 속지 않는 의식의 진보를 희망한다

이미 서민증세로 온 나라를 발칵 뒤집은 박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는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며 반란을 일으킨 새누리당과 정치권을 향해 "증세는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맞대응 하는 자체가 촌극이다. 잠시 호흡을 멈추고 신중하게 들여다보면 이 얼토당토 않은 말들, 혹은 국민에 대한 모독은 하나의 지향점을 향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증세의 불가피론은 박근혜 정부가 촉발시켰고, 새누리당은 바통을 이어받은 모양새다. 둘은 서로 다른 입장을 다투는 것으로 보이지만, 집권여당이 대통령을 공격하는 흥행요인을 극대화해 새누리당의 정치적 동력을 키우는 것인 한편, 현 정부가 한계를 맞이한 복지 정책의 문제와 보편적복지 정책을 일거에 털어버린다는 전략이 엿보이는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당초에 불가능했고, 보편적 복지는 새누리당의 정체성과 정면으로 배치되기에, 둘은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는 듯 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슬그머니 타협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 이유다. 물론 박 대통령이 물러서는 것이 전제된다. 그렇다면 지난 연말의 서민증세도 우발적인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들의 전략은 이미 먹히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공식적으로 증세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제 재벌이나 자본소득에 대한 증세가 아니라 간접세나 근로소득세 같은 서민증세의 당위론에 질질 끌려갈 일만 남았다. 경제민주화는 종언을 고하고 더 강력한 성장주의 정책과 승자 독식의 경쟁 구조가 공고해질 것이며, 새누리당은 내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둘 것이다.

그동안 눈을 뻔히 뜨고도 당했는데 이번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선별적복지에서 보편적복지로 이행하는 것은 역사발전의 순리이며 세계적인 추세다. 이는 서민증세가 아닌 법인세나 부유세, 누진세를 비례에 맞게 하면 달성할 수 있다. 이렇게 조세의 효율성이나 형평성만 보장된다면 당연히 선별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이나라 내일의 담론을 또다시 초토화 하려고 한다. 사회가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고, 실수나 실패를 해도 패자부활전의 장을 마련해 주며, 기득권층은 사회의 보편적인 행복지수를 높이는데 앞장서면서 막대한 자신의 돈을 사회에 기부하는 세상은 대한민국 어는 모퉁이에서도 뿌리내릴 수 없는 박토다.

오늘날 복지는 '생존'에서 '행복'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상대적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의식이 먼저 진보해야 한다. 행복은 어떤 일이나 대상에 온 마음을 다해 즐겁게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비교나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우리는 더이상 은자가 아니라 참여하는 주인이 되어야 할 당위 앞에 서있다.

우리들이 곧 바른 정당을 육성하는 힘의 원천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