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우리에게는 정초에 토정비결을 보는 풍습이 있다. 다가 올 시간에 벌어질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을 미리 엿보려는 욕망에서 비롯했다. 좋은 일을 미리 알게 되면 희망의 에너지가 용솟음 치고, 나쁜일을 미리 알아낼 수 있다면 미연에 방지하거나 피해갈 수 있다. 그런 미혹의 늪에서 우리는 빠져나오지 못한 채 문명의 개벽적 발전이 거듭되는 지금까지 그 풍습을 이어왔다.

육십 갑자 안에서 운명은 반복되며, 음양과 오행이 만들어내는 숫자가 씨줄이 되고 태어난 시간의 숫자가 날줄이 되기에, 직조된 필연들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 운명을 풀어낼 수 있다는 유혹이 유한의 궤적을 도는 우리를 강하게 사로잡는다. 숫자는 이렇게 과학적 논거를 대체하며 우리의 감정과 이성의 심연에 스며들어있는 것이다.

이런 숫자는 삼라만상이 서로 연관된 자연현상을 탐구하던 사람들에 의해 발견됐다. 혹은 만물의 작용을 주재하는 초자연적 힘을 기호화 하려던 사람들에 의해 상정됐다. 이로인해 운명론은 두가지 사유방식으로 분기됐는데, '종교의 신비주의'나 '인간의 감각적 능력을 기반한 이성적 인식'이 그것이다. 이런 모순은 충돌과 혼란을 야기했다.

이 숫자와 자연현상 혹은 개인과 사회, 사람과 자연 사이에서 합리적 인식의 각성이 필요하게 된 배경이다. 초자연적인 힘이 인간사에 개입한다는 생각을 철저하게 배제한 상태에서 만물을 낳고 기르는 자연 현상의 일정한 규율을 체계적으로 나타내 미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했다. 공자가 그 선봉에 있다.

공자는 주역(周易)의 괘와 효를 풀이한 계사전을 남겼는데, 오로지 경험을 통한 사실을 기초로 이성적 분석을 실시하면서 삼라만상의 모든 사물과 맞섰으며, 철학적 사유만으로 괘효의 변화와 사물의 일반적 규칙을 설명했다. 계사전은 현상의 배경이 되는 관계의 통찰이며, 초자연적인 운명관에 경도 되었던 사유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이성적 각성의 시원이다.

토정비결의 근원인 주역은 이렇게 혹세무민하던 전제주의를 부정하고 과학으로 대체한 혁명이었다. 공자의 그런 의도는 제자 자공과의 대화에서 잘 나타난다. 공자는 말년에 주역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집 안팎을 가리지 않고 읽고 또 읽어 책을 엮은 가죽끈을 세번이나 끊어먹는 위편삼절이라는 고사(古事)를 낳을 정도였다.

자공이 물었다. "스승께서는 '덕행을 닦지 못하는 자는 신령스러움을 찾기 마련이다. 그리고 미래를 알고자 하는 욕구가 큰 사람은 점을 치기 마련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응당 깊이 새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스승께선 나이가 드시어 주역을 좋아하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점친 뒤에 징조를 알려주는 주역이 아니라 그 이전의 주역이다. 그 주역의 요점을 살피는 것은 덕을 그르치는 것이 아니다. 서경에는 그 뜻이 있어서 자주 막히곤 한다. 그러나 주역은 아직 손실된 것이 없다. 거기에 주역에는 고대로부터 전해진 이야기가 많다. 내가 주역의 점치는 용도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스승께서 주역의 점치는 용도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좋아하시는 것이라면, 남의 말에서 줄거움을 찾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도 되는 것입니까"

"너는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 자공아 내가 주역의 도를 가르쳐 주도록 하마. 상나라의 주왕은 도가 없었다. 그러나 문왕은 도를 행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았으므로 허물을 피했다. 그리하여 주역이 처음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지혜를 즐기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주역의 지혜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괘가 있다면, 태평성대를 가리키는 지천태괘(地天泰卦)와 난세를 가르키는 천지비괘(天地否卦)가 아닐까 한다.

지천태괘는 땅을 의미하는 곤괘(짧은 효 여섯개가 정렬 된 모양)가 위에 있고 하늘을 의미하는 건괘(긴 효 세개가 정렬된 모양)가 아래에 있는 상태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어야 정상인데, 거꾸로 되어있는 상태를 '상하의 소통이 원활하여 태평하다'고 풀이한 것이다.

하늘은 위를 향해 땅을 섬기고 있고, 땅은 아래로 하늘을 향하여 믿고 따라가는 모습이라는 게 그 설명이다. 하늘과 땅이 서로 교류함에 따라 만물이 통하며, 상하가 서로 교류함에 따라 그 꿈과 뜻이 하나로 모아져 태평성대를 이루는데, 그 방법은 지도자가 백성들을 하늘처럼 받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훌륭한 인재들이 중앙에 들어가고 소인들은 밖으로 퇴출된다. 훌륭한 도는 날로 자라고 비천한 도는 날로 소멸되어 간다.

천지비괘는 반대로 건괘가 위에 있고 곤괘가 아래에 있는 상태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으니 안정적으로 보이는데, 위에 있는 자는 하늘 높은 줄 모르며 독선과 전횡으로 군림하려하고, 아래에 있는자는 자신만 옳다고 아래로 향해 등을 지고 있으니 '상하가 서로 교류하지 못하는 난세다'고 풀이하고 있다.

서로 해볼테면 해보자는 갈등과 반목의 상황이며 폐색과 단절을 나타내는 상태다. 이는 가장 비인간적인 형상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면 허물을 피할 수 있다"

하늘은 위를 향해 땅을 섬기고 땅은 아래로 하늘을
향하여 믿고 따라가는 것이 곧 지천태괘(地天泰卦)

오직 낮은 곳으로 임하는 지도자의
자세가 곧 소통의 지표

하늘과 땅이 서로 교류하지 못하니 만물이 불통하고, 상하가 교류가 안되니 사회공동체가 제대로 존재하지 못한다. 소인들만 중앙에 득실거리고 군자들은 밖에 머물러 있다. 비천한 도는 날로 자라고 훌륭한 도는 날로 소멸되어 간다.   

이같이 최상의 괘와 최악의 괘는 모두 자연과 인간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소통'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가리킨다. 소통은 명령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강요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오로지 낮은 곳으로 임하는 지도자의 자세에서 그를 하늘처럼 믿고 따르는 백성들의 자발적 마음에서 나온다는 지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적에게 말을 걸어라

오늘 익산시를 바라본다면, 영락없는 천지비괘의 현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겠다. 박경철 시장은 거듭되는 인사전횡과 전례없는 독선으로 하위직 공무원들의 공분을 샀고, 여기에 반발하던 김상수 익산시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중징계 대상이 된 채 수일 째 단식 철야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두 주체간의 갈등과 충돌은 여러차례 있었는데, 첫번째로 표면화 된 것은 박 시장이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1심 법원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 받자 노조가 박 시장을 향해 자진사퇴를 촉구하면서부터다. 서로 갈데 까지 갔다. 주역에는 산지박괘와 지뢰복괘가 있는데 이 괘들이 가리키는 것은 박극필복으로, 박(혼란)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복(화평)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두 주체 모두 자신이 분노를 삭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조직의 안위를 돌보며, 오직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공복(公僕)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주역의 가리킴을 보건데 그 타임밍은 바로 지금이다. 맹자는 "오직 어진 자만이 강대함에도 불구하고 작은 것을 섬길 수 있으며, 오직 지혜로운 자만이 작으면서 큰 것을 섬길 수 있다"고 설파한 바 있다.

특히 박 시장은, 이 난마처럼 얽힌 상황을 돌이켜 변화시킨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잠재능력을 입증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이스라엘 건국의 국민적 영웅인 모세 다얀은 "평화를 원한다면 적에게 말을 걸어라"라고 했다.

이상은 박 시장의 토정비결에 대한 내 나름의 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