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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공인배
산과 들에 신록이 물들고 있지만 우리들 사이에는 목이 쉰 사람들이 많다. 입안이 혀 뿌리까지 바싹 타서 생벙어리가 된 사람들도 더러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속절없이 떨며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던 사람들이다. 이 땅에서 이것만은 없애달라고 위정자들을 향해 절규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비루하기 짝이없는 2014년의 3대 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608만을 육박하는 비정규직들은 극심한 노동 착취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부초처럼 떠돌고, 알바에 목을 매고 있는 청소년들은 손놈(손님 놈, 못된 고객)들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 우리사회의 종속관계에서는 부박하기 짝이 없는 추태들이 속출했다. 남양우유 갑질이 채 가시기도 전에 땅콩회항 같은 수퍼 갑질이 이어지며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집중 조명됐다. 비정상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세월호 참사는 그 부실의 결정판이었다. 이윤극대화에 눈먼 사용자의 부적절한 고용과 안전불감증이 조우하게 될 종국이 어디인지를 그보다 더 할 수 없게 드러내 보여줬다. 사후가 더 문제였다. 이 나라 사람들은 국가가 국민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에 직면했고, 책임의식이 미약하기 짝이 없는 국가를 목도했다. 정체불명의 국가개조가 최대 화두로 떠올랐지만 국가는 그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태도다. 직접당사자들, 그와 관련있는 사람들, 공감하는 얼마간의 사람들은 아직도 공황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참사의 충격 못지않게 국가를 위한 국가 혹은 권력을 위한 국가의 불통에 단단히 데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끔찍하게 혐오하는 손놈들, 약자들이 보기만 해도 숨막히는 갑들, 사무치게 두려운 국가 등은 모두 궁지에 몰린 쥐에게 물릴 줄을 모르는 청맹과니들이다. 살다 보면 남의 일이라 생각되던 것이 나의 것으로 역전되는 궤적을 경험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다. 깍듯한 예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본만 지켜도 손님이 될 수 있다. 갑을 먹여 살리는 존재가 을이라는 사실만 알아도 존경받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국민이 갑이고 국가는 을이라는 사실만 자각해도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권력이 될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 왜 되지 않을까. 해답은 명료하다. 자기중심주의의 폐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볼 여지 조차 없는 수준이다. 인류가 기원한 이래 이기심은 이타심을 배제하는 생존의 법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것은 경쟁의 법칙이며 승자와 패자라는 이항대립을 구축하고 공고화하는 기제가 되었다. 2350년 전의 맹자도 아전인수(我田引水)가 모든 충돌과 갈등의 원인이 되는 현실과 인류에 어떤 비극을 안겨줄지를 직시했다. 그가 해법으로 제시한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서로 바꾸어서 생각함)는 '적절한 이기주의' 혹은 '상생의 이기주의'를 세울 황금률이다. 역지사지의 연원인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 서로 처지가 바뀌더라도 모두 똑같이 그러했을 것)은 맹자의 시선에 포착된 공자의 일화 또는 말에서 비롯한다. 하나라의 시조로 물을 다스리는데 성공한 우(禹)임금과, 주나라의 시조이며 중국에서 신농(神農)과 더불어 농업의 신으로 숭배되는 후직(后稷), 그리고 공자의 3천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덕(德)의 실천가인 안회(顔回)등은 서로 처지가 바뀌더라도 모두 똑같게 행동했을 것이라는 게 그것이다. 우와 후직은 태평성대에도 자신의 직분에 전념한 나머지 자기 집 문 앞을 세번씩이나 지나가게 되었지만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우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 물에 빠진 이가 있으면 자기가 치수(治水)를 잘못하여 그들을 빠지게 한 것이라 생각하였고, 후직은 천하에 굶주리는 이가 있으면 자신이 일을 잘못하여 그들을 주리게 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안회는 다른 사람들은 감내하지 못할 가난 속에서도 안빈낙도(安貧樂道)의 태도를 잃지 않으며 오직 연구와 덕을 수양하는데 전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공자는 이 세사람을 찬양하면서 "그들의 뜻이 모두 같았다"고 했다. 어진 이는 시간과 공간이 바뀌어도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는 명제다. 맹자는 이같은 공자의 생각을 소개하면서, "남을 예의로 대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신의 공경하는 태도를 돌아보고, 자신은 사랑하는데 그가 가깝게 대해주지 않으면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고, 남을 다스리는데 다스려지지 않으면 스스로 지혜가 부족함을 돌아보라"고 조언했다. 균형잡힌 이기심이란 곧 상대방의 이기심을 먼저 충족시켜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방향성이다. 이런 맥락에서 역지사지는 언제 어디서든 최고의 처세술이며, 사회규범의 초석이다. 역지사지는 이기심을 악으로 삼는 이타심의 지배적 소산이 아니라, 누구나 같은 이기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들 통해 내가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보다 역지사지에서 필요한 이타심이란 나의 이기심을 보듯 상대의 이기심을 살피는 정도의 배려다. 태고에 인류가 집단을 이루고자 할 때의 대 전제다. 인간 관계와 이 사회의 기본틀인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역지사지가 없는 것이다. 미개한 사회가 마주할 것이란 폭력과 착취 말고 무엇이 있을까. 소통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며, 자기이익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배제하는 사회에서는 그들만의 투쟁, 그들만의 고통, 그들만의 성취감, 그들만의 세상들이 수없이 분절되어 겉돈다. 최소한 국민 대다수가, 실어증에 걸린 이들에 대한 측은지심을 가지기만 하여도 국가는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죽기 아니면 살기의 체제 속에서 성장한 우리에게 '더불어 살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어떤 공동체이든지 더불어 사는 집단인데도, 거기에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또다시 교육을 말해야 하는 이유다. 어렸을 때 부터 몸에 배지 않고는 '배려'가 특별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는 걸 체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건국이래 수없는 교육개혁이 단행되었고, 최근 그 필요성이 다시 불거졌지만 그것은 경쟁주의 체제에 대한 맞춤형일 뿐, 공동체의 공동선과는 거리가 멀다. 역지사지 사유방식의 미완이 그것을 방증한다. 역지사지는 상대방에 대한 상상력의 소산이다. 서로 다르면서도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관계는 상상력을 기반하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갈등과 반목 그리고 분쟁의 해법이 상상력이라면, 우리의 교육이 상상력을 기르는데 천착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