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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공인배
정치인은 자기를 파는 사람이기에 자발적으로 무대에 올라 보여지는 것에 명운을 건다. 선거일정이나 방식의 간소화 추세에 따라 정치가 미디어에 의존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면서 비디오에 포착되는 정치인의 이미지는 능력이나 자질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정치인을 종합예술인이라 부르는 이유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배우로서, 연출가로서 자기 이미지를 창출하고 전파하는 일련의 과정을 직접 소화해 내야 한다. 능력이나 자질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이미지로 잘 가공하지 못한다면, 유권자들의 뇌리에 뚜렷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결코 기회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지 않으면 보여 줄 수도 없다. 가진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은 기술이며, 그런 맥락에서 이미지 구축 기술은 정치인이 갖춰야 하는 전문성이다. 일단 보여진 정치인의 이미지는 곧 정체성이 된다. 무엇보다 유권자들이 그 이미지를 선택했다. 정치인의 자기관리가 이미지 훼손을 예방하는 데에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무릇 정치인이라면 오해받을 언동을 삼간다. 진실 여부를 떠나 의심을 사는 개연성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의심에서 부화한 헐뜯는 말은 전광석화 같아서 걷잡을 수가 없다. 보통 정치인이 의심받기를 두려워하고 또 두려워하는 이유다. 그러나 박경철 시장은 보통의 정치인이 아니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표방된 그의 이미지가 참신성이라면, 우리는 그 완고한 참신성의 극치에 놀라움을 금치 못해야 옳다. 박 시장은 우선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선거법위반 혐의로 기소되자 향판(지역에서만 근무한 판사) 출신이며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를 선임했다. 게다가 이 변호사와 원심법원 지원장은 같은 대학 동문이고 사법연수원 동기였다. 박시장 사건을 주재하는 재판장도 변호사와 같은 대학 동문이었다. 향판은 자신이 근무한 지역의 법원 내부에 대한 지배력을 이용하거나 남용하는 문제로 제도적인 제거 대상이 됐다. 전관예우는 법관사회의 선후배 관계가 낳는 폐단으로 유전무죄를 성립시키는 핵심 연결고리를 지칭한다. 법조계의 부패는, 범죄를 예방하는 법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사회구성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범죄를 양산한다. 삼척동자도 안다. 법조계는 전직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개업 이후 1년 동안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미봉책으로 간단없이 들끓는 비난 여론에서 비켜서기도 했다. 그런데 박 시장은 항소심 재판에서도 재판장과 관계가 막역한 것으로 알려진 변호사를 선임했다.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동기인데다, 같은 법무법인에서 여러 건의 사건을 공동수임한 관계라는 것이다. 재판장이 5년 동안 변호사로 활동할 때 두 사람은 같은 공간을 공유했다. 또 재판장이 법관으로 재임용 된 뒤에도 같은 법무법인의 인권센터 후원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등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박 시장이 넓은 법조계 풀에서 하필 재판장과 여러모로 얽힌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은, "변호사를 억울한 입장을 대변해주는 법률 전문가로 보지 않고 거간꾼으로 보는 발로"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법률적인 위기상태를 재판장과 변호사의 친소관계로 벗어날 수 있다는 무개념이 오해를 무릅쓰는 근원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죄를 지어도 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오해, 정정당당하지 못하다는 오해가 발화되는 지점이다. 그런데도 그런 오해를 사는 일들을 감행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박시장은 또, 시민들이 부여한 권위를 제왕적으로 격상시키는데 참신한 재간을 보여줬다. 이른바 '박 시장만의 화장실 문화 창출'이 그 단적인 방증이다. 박 시장이 전용 화장실에 납시면 비서가 그림자 처럼 따라붙어 화장실 문을 열어주고, 화장실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박 시장이 볼 일을 보고 나오면 마저 수행하는 일련의 화장실 수발 비서를 부린 것이다. 민선 6기의 두번째 비서실장이 이런 전 근대적 작태를 중단시켰다고 하니, 반년이 넘도록 지속된 퇴행이다. 우리는 그가 보여주는 혁명적인 행태 앞에서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누가 그 "시민이 시장이다"는 마인드에서 비롯하는 거룩한 권위주의를 짐작이라도 했겠는가. 박 시장의 남다름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범시민 택시 타기 운동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숙소가 있는 오산에서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외곽도로는 승용차로 행차하고, 사람들의 눈이 많은 터미널에서 시청까지는 택시를 타고 이동하다가 동영상에 찍혀 전국뉴스를 탔다. 익산시민들의 망신살 못지 않게 익산시 공직사회에 일으킨 파장도 크다. 자기 승용차를 두고 택시를 탄다는 것은 우선 여러면에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승용차에 부과되는 세금과 보험료, 감가상각 등을 고려하면 택시요금 보다 훨씬 더 큰 비용 부담까지 안아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택시타기 운동은 사생활의 자유를 제한하는 운동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 사람 대다수는 편리함과 자유 때문에 승용차를 탄다. 조심하지 않는 것은 무소불위 권력에서 나와 그런 손해와 불편의 강요가 먹힐 수 있었던 것은 공복들이 지역경제에 기여한다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진정성이 훼손된다면 박 시장이 주도한 택시타기 운동은 한 순간에 부당한 명령에 불과하게 된다. 운동의 발상 자체가 정치적 쇼로 비춰지지 않게 준비와 실행단계에서 신중을 기했어야 하는 이유다. 더구나 박시장은 솔선수범을 보여야하는 정치지도자의 지위에 있다. 그런데 시장은 다른 공무원들과는 다른 특권을 누리고, 시장 개인의 정치적 영달에 공무원들이 들러리 서거나 동원되고 있다는 오해를 하게 한다면 누가 명령을 달게 따르겠는가. 어떤 정책이 실효성있게 펼쳐지겠는가. 오로지 보여주기식 행정행위만 만연하게 될 것이다. 박 시장의 비범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주는 사례들은 이밖에도 많다. 공조직의 수장에게 부여되는 인사권을 초법적으로 휘두른다는 오해를 받아 공무원들로부터 전대미문의 반발을 사고, 사법기관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했다. 기성 정치인들을 배제하는 그는 공조직과 지역 정치권에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적 학살자로 오해받았고, 그런 일련의 상황 속에서 지역공동체의 소중한 정치적 자산들이 지리멸렬했다. 그가 모현우남아파트 긴급대피명령과 집행부 공무원들에게 의회에 출석하지 말도록 명령한 것은, 시장이 무소불위의 권능을 지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렀다. 부당한 명령에 불복하면 즉각적으로 응징하는, 지방자치 이래 초유의 철권 조처들이 그것을 더욱 공고화했다. 그를 막 사는 골목대장으로 읽는 오해는 공직사회 전반에 퍼졌다. 공조직은 수장과의 쌍방향 소통기능을 급격히 상실하고 우울한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박경철의 진정한 참신성은 '오해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그건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사고의 산물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오해들이 9개월만에 이렇게 즐비하게 생산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