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익산은 많은 것들이 무너진 도시다. 우선, 20년 전에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됐지만 공생이 전제된 도시공동체는 사실상 없다. 통합을 날림으로 추진한 결과다. 지난 시절은 민-관 협력이 아닌 관 주도형 지역개발 일색이었는데, 자치단체의 공조직조차 갈등의 연속선상에서 장기간 벗어나지 못했다.

공무원 조직의 직제상 시단위 공무원보다 한 계급 낮은 군단위 공무원들이 통합시 조직에 편입하면서 신분상승의 특전을 입지 못했다. 시와 군간 공무원들의 종속관계는 도농통합 성과를 도시가 독차지하고, 통합의 대명제인 균형발전을 무위에 그치게 하는 구조를 낳았다.

무슨 일에든 때가 있는 법이고 기초가 중요한데 익산시는 도농통합 도시의 틀을 세울 때를 놓쳐버린 것이다. 통합 전에 시군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도출한 '예산의 균등 배분'이나 '도시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농촌의 삶의 질 개선'같은 골격은 초장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저 거주민들의 수에 따라 차등 개발하는 정량적 도시개발의 도식이 도시의 지표인, 통합 이전의 기계적인 행정기능이 전혀 바뀌지 않은 채 작동하고 있을 따름이다. 농촌지역 주민들이나 정치인들이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숱한 시도와 충돌을 겪으며 중과부적을 실감하고 절치부심하는 세월을 보냈다.

7개 행정부서를 함열로 이전하겠다는 박경철 시장의 생각은 그런 농촌지역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인식한 발로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 하다. 하지만 시군 통합 취지를 감안하면, 행정부서 일부 이전은 대증적 처방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풍월처방에 불과하다. 그 처방이 정치적 이익을 노리고 있다면, 그것은 지역 주민들을 기망하는 것이며 능멸하는 것이다.

정치가 이렇게 인기영합 쪽으로 경도되면서 도시는 치유기능을 상실했다. 자기 이익에 혈안이 된 나머지 음해와 모함을 무기삼아 경쟁자를 제거하고 밥그릇 빼앗기를 서슴지 않는다. 나아가 투서와 고소 고발이 난무하는데, 반목을 조정하거나 조율하는 공동체 기능이 없다.

그런 환경 속에서 부정적인 카르텔은 강고해지고, 누구든지 작당의 표적이 되면 공권력의 린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불순분자의 피습 우려가 상존하는 도시는 살얼음판과 같다. 일상이 이렇게 불안해서야 되겠는가. 박경철 시장은 몸소 그 암담한 도시의 향도가 되었다.

자식과 같은 공무원들과의 불화를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형사고소를 했다. 지역경제에 이바지하고 도시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단체의 전국적인 행사를 가로막은 것도 모자라 항의하는 단체장을 형사고소했다. 거짓말과 전횡, 갈등을 야기하는 시정운영을 지적하고 비판한 언론을 형사고발했다.

파렴치한 가장의 꼴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주인을 물어뜯으며, 사초를 기록하는 이들을 내치는 막가파의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굳이 그 허물을 구분짓지 않더라도, 박 시장은 자신을 뽑아 준 유권자들을 고소 고발하기를 일삼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왜 하겠는가.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을 따르고, 승패의 비율에 상관없이 승자는 대표권을 갖게 된다. 박경철 시장이 7백여 표 차이로 31만 시민의 시장이 된 것과 같이 익산시의 모든 시민들은 박경철을 시장으로 뽑아준 사람들이다. 그런데 공복이 주인들에게 종주먹을 들이대기를 추호도 꺼지리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배은망덕은 이 도시를 더욱 사막화하는 기제다. 어제까지 동고동락했던 자가 뒤를 노리기 십상이고, 그 이유라는 게 탐욕을 채우고자 권력에 아부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때 도시의 행색은 한량없이 비루하다. 그런 분자들은 또, 같이 먹고 마시는 물에 침을 뱉고 독을 푸는 패륜이 정당화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어제 가장 기득권 세력이었던 언론인들이 오늘은 누구보다 진보세력이 되어 가시밭길을 가는 언론인들을 몰아붙이면서, 그릇된 언론관을 지닌 권력에 빌붙어 진실을 호도하거나 왜곡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때 도시 공동체의 담론 기능은 파괴된다.

진실을 저버린 언론은 사회에 해악을 끼칠 따름이다. 부패를 부추기며 줄타기하고 썩은 살로 배를 채우면서 그 입으로 누구를 비판할 수 있겠는가. 그런 언론이란 부적격성이나 부도덕성을 논할 말미조차 없다. 박경철 호가 출범한 이후 이런 언론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공교로운 일인가.

박 시장은 원칙없는 예산 편성과 인사로 도시 공동체의 네트워크를 거듭 무너뜨렸다. 원칙없는 예산편성은 공의롭기를 포기한 단서다.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게 되고, 상궤는 지워지고 탈법이 기승을 부린다. 권력에 줄을 댄 소수자들이 파이를 독점하는 구조가 공고해진다.

원칙없는 인사는 분열을 야기한다. 조직을 낙망의 나락에 떨어뜨린다. 소신 없고, 책임 없고, 무기력한 조직을 만드는 첩경이다. 이들에게 과제가 주어진들 불만과 불안으로 가득한 머리로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는가.

임의성이 초래하는 비극은 구성원들을 정글 속으로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공동체 복원을 진두지휘해야 할 박경철 시장이 오히려 해체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무원들도 유권자다. 원칙이 지배하는 조직 안에서는 시장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원칙이 무너진 곳에서는 준엄한 심판의 한 축을 이루는 존재들이다.

목민관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백성인데, 박 시장은 결코 책임지지 못할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목하 배은망덕을 주시하는 시민들은 참담하기 이를데 없는 심경이다.

무너진 공동체 복원의 길은 상생의 도와 맞닿아

도농 통합도시를 복원하는 길은 유일하다. 당초 취지를 살리는 것이다. 그건 상생의 도(道)만이 연결할 수 있는 길이다. 무개념으로 치졸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람에게 상생의 도를 주문하는 것은 닭 잡는 사람에게 소잡는 칼을 쥐어주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우도할계(牛刀割鷄, 작은 일에 지나치에 동작이 큼)라는 고사가 본래 '기본이란 본래 작은 곳에나 큰 곳에나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뜻에서 나왔으니, 닭 잡는 이나 소 잡는 이나 갖추야 할 기본 소양도 같아야 옳다.

구성원들이 분열되면 사회적 실패 요인을 제거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의지의 결여 때문이다. 필요성은 알고 있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이유와 구실이 넘쳐난다. 그대로 만성화 되면 공동체는 상상력이 경색되어 다른 가능성과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상태에 떨어진다.

이 지역사회 개조의 당위성이 망각되고 마모되어 가는 것은 그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의 장기화가 초래했다. 문제를 알면서도 제때에 해결책을 동원하지 못하는 안일성과 무능 같은 실패의 가능성들이 익산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오직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권력을 가진자는 그런 승냥이들에게 먹이를 던져주며 광란의 충성 경쟁을 부추기는 도시, 혹은 선택의 폭이 지극히 좁은 시장(市場)이 익산이다. 이런 단일한 가치체계에 전면적으로 복속된 사회 공동체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망각한다.

자기가 독을 푼 물을 먹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배은망덕은 기초가 없는 뜨내기 삶에서 비롯한다. 언제 어느때 누구라도 배신할 수 있는 잡종이 바로 배은망덕한 종자다. 언제든지 배신할 준비를 하는 자란 얼마나 위험한 흉도인가. 박 시장은 자신이 그렇지 않은지, 귀엣말로 교류하는 주변이란 게 그런 종자들 일색은 아닌지 둘러보아야 할 때다.

눈을 씻고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본다면, 자살이라도 하고 싶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