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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공인배
소통신문의 창간기념일은 가정의 달 중간 지점에 있다. 모든 공동체의 축소판이 가족이니 언론이 자신을 성찰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일 듯 하다. 가족은 서로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며 각자 책임을 다하는 구성체이니, 사회적 병폐의 명약들을 대부분 채취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 관점에서 언론은 어쩌면 가정의 오염을 막는 첨병역을 게을리 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결핍 없는 가정 안에서 개인이 지니는 삶의 격(格)은 무엇보다 우선한다. 구성원들이 맺고 있는 관계에 거래의 셈법이 없고, 각자의 교환가치가 설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토대 위에서 개인의 존엄성은 제대로 구현되고 그런 가정은 품위있는 사회의 표상이 된다. 그런 맥락에서 복지라는 말이 따로 필요없는, 구차하지 않고 불공평하지도 않은 보편적 복지의 바로미터다. 바람직한 세상을 열고자 할 때 가족으로 시선을 돌린다면 전문적인 견해를 따로 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언론이, 모든 가치의 원천이자 삶의 지표가 되는 가정을 더 나은 세상의 지도로 삼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배경이다. 별도의 논거를 제시할 필요도 없이 사회적 자기를 지탱하고 자기의 가치를 지켜나갈 자존감은 온전한 가족 안에서 길러진다. 그래서 가족은 각자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는 사용가치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생동하며 역동적인 삶으로 자기 뿐 아니라 주변을 이롭게 하는 이는 십중팔구 건강한 가족 안에서 육성된다. 여기에는 포식자의 시장(市場)에서 교환가치에 매몰되지 않는 저항력을 지닌 이도 포함된다. 그는 이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며, 속박이나 소유의 밖에 있으면서도 이 세상 누구에게나 자기를 나눠주는 이다. 포식자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이유다. 포식자의 먹잇감은 오직 소비사회를 탐닉하는 소비자들이다. 불만족을 채우려는 소비자들은 스스로 소비를 위한 노동의 노예로 전락하지만 그것을 쉽게 자각하지 못한다. 포식자들의 미끼는 인간의 욕망이고, 욕망은 고갈되지 않는 실명(失明)의 샘이다. 소비경쟁의 덫은 끊임없이 창출되는 욕망이다. 경쟁의 본질은 상대적 빈곤감이며, 경쟁의 과실로는 상대만큼의 허기를 채우기에 언제나 부족하다. 더 많게 그보다 많게를 추구하는 소비중독이 포식자 세상의 기반이다. 그 덫에서 여간해선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경쟁중독은 인간성의 말살을 부른다. 경쟁으로 비롯한 시기심과 과열은 온갖 범죄를 양산하고 혼란한 사회를 야기하는 근원인 탓이다. 그런데 아무 조건없이 자기를 희생하고 과실을 함께 나누는 가족은 중독에 강한 내성을 배양한다. 무한 악순환의 사슬은 진정한 가족공동체가 끊어낼 수 있다. '자유로운 경쟁'을 정언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행동의 대강령으로 내면화하는 고립된 소비공동체를 구원할 주체로서, 소비자라는 수동태가 지니는 극도에 이른 무력감에서 빠져나와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게 할 주체로서 가족은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 키워드임이 분명하다. 가족은 쓸모있는 나에게 보상하고, 쓸모있는 나를 구축하기 위해 비경제적인 문화적 산물을 생산하거나 소비한다. 아예 시간과 공간을 비경제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나아가 필요적 소비에 머물면서 그것을 충족하기 위해 적극적인 생산의 주체가 된다. 그러나 가족이 시장 밖에서 만족을 얻을 기회가 점차 사라지는 가난의 현대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포식자들은 생산기반을 독점하고 시장으로 사회 환경을 지배한다. 개인이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향유할 기회는 지극히 좁고, 그것을 시도하는 이는 고립되는 구조다. 시장은 이렇게 자급중심의 경제와 문화를 파괴하면서 동시에 가족을 무너뜨리고 있다. 개인의 사용가치를 회복할 공간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삶은 타율화되고 우울하며, 천편일률적인 일상속에서 끊임없이 좌절한다. 삶의 격이 걷잡을 수 없게 추락하는 것은 결국 사용가치의 자율적 창조를 주도할 가족이 사라져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그것은 내 안의 능력을 실제 삶에서 직접 구현하려는 태도와 습관을 잃어가고 있다는 말과 같다. 자아의 타자화를 막아낼, 만족감을 얻어낼 탈 중심화의 요람이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삼라만상의 존엄한 가치를 배우고, 관계의 사슬 속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며 다른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인간이 점차 희소해져가고 있다는 의미다. 포식자들의 덫에 사로잡히지 않은 저항력 강하고 빠른자가 쟁취하면 그만인 경쟁논리에 밀려 상호의존하며 협동하는 문화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삶의 본래적 터전으로부터의 분리의 가속화는, 행복은 타인으로부터 온다는 점을 망각한데서 비롯한다. 가족이 외부세계, 혹은 다른 가족들로부터 고립되면서 이같은 공동체의 균열은 시작됐다. 삼라만상의 연결고리는 이렇게 포식자에 의해 제거되어 가고 있다. 우리가 존엄한 삶을 포기해서 초래한 현실은 아니다. 오히려 존엄한 삶을 소비를 통해 구현할 수 있다는 오해가, 좋은 삶과 좋은 사회에 대한 우리 안의 척도를 잘못 고르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새로운 변화는 개인에서 시작되고 참된 공동체의 씨앗은 가정에서 싹튼다. 스스로에게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 무한경쟁의 시장(市場) 구조를 바꿀 수 있다. 늘 새롭고 약동하는 가정은 제2 제3의 가정을 욕망하며, 그런 공동체 복원을 위한 정치행동에 추호의 망설임도 없다. 소위 제도권의 정치, 경제, 사회, 의료, 교육, 문화 전문가들이 세상을 맹목적으로 획일화하는 것을 발견하는 눈이 가족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 눈은 사람들을 일정한 틀에 밀어넣고 프레스를 가하는 이들과 온갖 인위적 장치들을 포착하며, 그런 눈을 가진 이는 개인의 사용가치를 제거하고 일정한 교환가치만을 지닌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이들의 위험성에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모든 사회영역에서 소비하는 소모품에 불과하게 된 개인이 건강한 가족의 일원으로 돌아가고 주체적 삶을 욕망한다면 모든 난맥상들의 실마리를 풀어낼 수 있는 이유다. 건강한 가족들이 사회공동체를 형성한다면, 저마다의 사용가치를 만들 수 있는 자유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공생의 정치가 가능해진다. 나는 소통신문이 단 하나의 가족이라도 온전하게 복원되는 데 기여한다면 존재할 이유를 획득하는게 아닐까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