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홍

협동사회연구소 대표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요,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다. 이 복음을 온 몸으로 전파하다 문익환 목사가 세상을 뜨신 지 벌써 30주년이 다가온다. 내년 1월 18일이면 늦봄 문익환 목사 30주기를 맞는다. 사단법인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가 주축이 되어 늦봄 문익환목사 30주기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민주화와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해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송경용 신부가 이사장을 맡으셨다. 얼마 전 익산에 오신 송경용 신부가 늦봄 30주기의 의미를 이렇게 전해주셨다. “평화와 통일을 위해 분단의 철조망을 한걸음에 넘으시던 장면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세대가 지나갔습니다. 목사님은 약자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하셨고 다정하셨으나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는 세력에게는 천둥 같은 불호령이셨고, 섬세한 시인이셨으나 거침없는 큰 자유인이셨습니다. 탄압받는 자의 곁에, 민주주의와 통일을 외치는 사람들의 맨 앞에 서 계셨던 강렬한 투사이셨으나, 학생들을 가르치고, 성서를 번역하고, 강단에서 복음을 전하던 신학자이자 목자이시기도 하셨습니다. 목사님이 떠나시고 30년이 지났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민주주의, 인권, 평화와 통일이 모조리 부정당하고 퇴행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목사님과 수많은 열사가 목숨을 바쳐 열어놓은 길 곳곳이 벽으로 가로막히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일수록 “벽을 문으로 알고 차고 나가”라시던 목사님의 결단과 기개가 간절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좌절과 분열, 전쟁의 먹구름을 몰아내고 푸른 평화의 하늘을 다시 열어야 합니다. “벽을 문으로 알고 차고 나가”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쳐야 합니다. 목사님의 30주기는 단순한 추모 행사가 아닙니다. 작은 차이를 넘어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통일의 기운을 모으는 대동의 자리입니다. 2024년 1월 18일 30주기에 마석 민주열사 묘역에서 열릴 추모제를 시작으로 여러 부문과 단체가 협력하여 학술, 문화예술, 민주주의와 인권, 노동, 평화 통일 등을 주제로 한 다채로운 행사가 1년 내내 열릴 것입니다. 이런 행사를 통해 대동 세상, 평화 세상을 위한 결의가 모이고 행동이 이어질 것입니다”
대통령중심제가 얼마나 심각한 결점을 가진 제도인지 요즘처럼 생생하게 다가온 적이 없다. 한미일정상회담을 통해서 향후 국제적인 분쟁의 한 편으로 휩쓸려 들어갈 위험이 더 커졌다. 남과 북 사이의 평화는 파탄 났고 연일 거친 언사와 핵 대결 국면이다. 발화점이 낮아지면 작은 마찰열에도 큰 불이 날 수 있는 것이니 불안한 마음이 크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심각한 문제 제기를 괴담으로 취급하며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분열시킨다. 과학은 확률의 학문이라는 한계점을 무시하고, 미지의 위험에 두려움이 없는 무지한 모습에 장탄식이 절로 나온다. 대한민국의 21세기가 20세기로 퇴행 당하는 느낌이다. 더구나 나날이 심각해진다. 국민을 대변해야 할 국회마저 정치 실종 상황이다.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구조와 문화는 더 단단해지고 적대적 투쟁이 난무한다. 정치복원의 희망이 될 선거제도 개혁은 뒷걸음치다 못해 개악될 지경이다. 최근 확인한 바에 따르면 현행 의석구조에 권역별 병립형 선거제도로 갈 공산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253석의 지역구 소선거구제 유지, 47석의 비례의석의 경우 전국을 6~7개 권역으로 나누어 정당 득표 비율대로 나누는 방식이다. 과반의 사표 발생, 지역주의 고착,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구조와 문화 고착 등 현행 정치제도의 개혁과제를 완전히 포기하는 발상이다. 위성 정당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결국 두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얄팍한 계산에 불과하다. 기득권 정치는 갈수록 염치없어지고 정치 냉소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이 감당해야 한다.
최근 한 달 새에 지인들의 자녀들이 스스로 세상과 단절했다는 부고를 세 개나 받았다. 너무 슬프고 황망해서 차마 가보기도 어려웠다. 충격적인 세계 최저 출산률과 최고의 자살률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웅변한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 냉소와 불신, 정치 퇴행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 그만큼 절실해지고 있다. 그래서 모든 힘을 다해 민중을 사랑하고 약자들에 헌신했던 문익환 목사 30주기가 민주와 평화의 부활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최근 김형수 시인이 지은 문익환 평전을 곱씹어가며 읽었다. 문익환은 1918년 북간도에서 태어나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30세에 한신대를 졸업하면서 목사안수를 받는다. 아버지 문재린목사처럼 열린 애국주의와 민중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길로서 선택한 것이다. 1949년에 다시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에 유학했다기 6.25 전쟁이 발발하자 유엔군에 지원해 통역자로서 정전회담에 참여한다. 한신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강의하면서 한빛교회 목사가 되었다. 1968년부터 신구교 공동성서번역의 책임위원으로 매진하고 1976년 59세에 3.1 민주구국선언으로 재야운동을 시작해서 77세에 별세할 때까지 18년 동안 6차례에 걸쳐 12년의 옥살이를 했다. 해방 전까지는 윤동주와 친구였고 해방 후부터는 장준화와 교분이 두터웠는데 끝없이 자랑해 마지않는 콤플렉스였다. 윤동주가 노래하던 예수 그리스도에게를 따라 살고자 노력하면서 문익환이 자신의 공동체에다 투여했던 막대한 양의 사랑, 박애, 헌신.... 그는 불행한 이웃들을 안간힘을 다해 사랑해버린 것이다. 윤동주를 보내고, 전태일을 보내고, 장준하를 보내며 그는 시인이 되었고, 노동자들의 벗이 되었고, 불의에 맞서는 투사가 되었다. 평화와 생명을 살리는 길이라면 모든 것을 걸고 두려움 없이 그 길을 걸어갔다. 그는 온몸으로 실천하는 평화사상가이며 생명운동가였다.
곧 늦봄 문익환 목사님의 30주기 추진 위원을 모신다고 하니 뜻있는 익산시민들의 참여를 기대하고 바란다.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이라면 세대와 지역, 부문과 분야를 넘어 누구나 함께 하실 수 있다고 한다. 다시 한번 “벽을 문으로 알고 차고 나가”려는 역사적인 여정에 함께 해주시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