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사람은 정교한 체온조절 기구를 지닌 항온동물(恒溫動物)이다. 외계의 온도와 관계없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35.8도에서 37.2도 사이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피부나 중추신경계의 온도수용기가 외부 온도를 감지하고 신호를 보내 혈관의 수축과 확장을 조절하고, 호르몬계를 통해서 대사열의 발산을 변화시키거나 떨림을 일으켜 체온을 조절한다.

우리의 정신활동도 이런 신체적 항상성(恒常性)과 궤를 같이한다. 건강한 사람은 모름지기 균형을 이루는데 치열하다. 균형이 잡혀있는 이는 무릇 건강하다. 기실, 심오한 진리나 수많은 사람들이 초개처럼 목숨을 버리게 만드는 이념도 여기에서 발원했다. 불가에서는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小欲) 그것이 충분한 것을 아는 것(知足)을 깨달음의 시작으로 보았고, 유가에서는 넘치는 건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는 걸 심신을 닦는 거울로 삼았다.

경쟁의 시작은 균형을 이루려는데 있었다. 하지만 인류의 탐욕은 본질적으로 그 항상성을 부정하며 위태로운 것을 즐긴다. 이는 생존의 조건을 망각하거나 얼토당토 않는 변이(變異)를 꿈꾸는데서 비롯한다. 한 때 이땅에 상륙하여 기존의 이념과 경쟁했던 새로운 이념, 그 공산(共産)은, 진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청춘들을 피의 제단으로 내몰았고, 지금도 다른 공간에서 오랜 세월 존속되고 있지만 태생적으로 부여된 정체성을 유지하지는 못하고 있다.

공산(共産)은 헤겔의 변증법과 모든 사물 현상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이 결합된 이념이다. 그 정수(精髓)는, 사적 소유에 근거를 둔 계급 지배의 철폐를 통한 생산 수단의 사회화와 무계급 사회 지향이다. 공산(共産)이 피의 광풍을 일으켜 기존 지배구조를 전복하고 새로운 터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러나 그런 체제를 세운 공산이념은 지금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체제를 유지하려는 지배세력들이 피지배세력들에게 공산(共産)을 강요하는 양태가 더 부각된다.

민주(民主)의 현주소 역시 공산의 오늘과 대동소이하다. 수용할 수 없는 온도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죽을 밖에 도리 없다.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관성은 내부에서 또 치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민주든지 공산이든지 그런 관성에 의해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할 수 있는 역설의 논거다.

이 세계는 서로 모순되어 양립 할 수 없는 두개의 축들이 여러 단위를 이루는 혼돈의 상태다.

따라서 존재는 '균형' 없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본질이 무욕(無慾)이라 하더라도 물질이 생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존립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땅의 대다수 종교는 생존을 위한 세 불리기로 본질을 덮어버린지 오래다. 종교의 주변부에 기생하는 세력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종교의 안팎을 종횡무진하며 종단을 좌지우지하는 바람에 종교는 고열에 휩싸였고, 부패의 상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른지 오래다.

고열에 지나치게 오래 노출되면 온도수용기가 파괴된다. 그런 점에서 종교의 현주소는 탐욕을 조절하지 못하는 '스프링벅'과 흡싸한 양태로 포착된다. 스프링벅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가적 상징이면서 동시에 스포츠의 상징이기도 한 영양류로서 우아하며 아름다운 무늬를 자랑한다. 또, 성질이 유순하고 몸놀림이 재빠른 짐승이기도 하지만, 탐욕이 만든 습성으로 인해 간혹 떼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초원에 서식하는 스프링벅은 평소에는 평화롭게 작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풀을 뜯어먹고 지내며, 번식기에 수컷은 세력권 안에 몇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고 번식집단을 이룬다. 하지만, 수천마리로 무리가 불어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큰 무리의 앞쪽에 있는 스프링벅들이 풀을 뜯어 먹어버리면, 뒤쪽에 있는 무리들은 먹을 풀이 거의 없게 돼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 서로가 풀을 차지하려고 본래의 유순한 성질도 온데간데 없이 극렬한 경쟁을 벌이게 된다.

탐욕의 관성에 사선을 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풀을 먹기 위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서 뒤쪽 스프링벅 무리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맨 앞에 있던 무리까지 뒤쳐지지 않기 위해 뛰기 시작한다. 뒤쪽의 스프링벅들이 빠른 속도로 앞으로 달려오기 때문에, 앞쪽은 선두를 뺏기지 않으려고 더 속도를 내어 뛰지 않을 수 없다. 이로 인해 스프링벅 무리들은 정작 목적이었던 풀은 뜯어먹을 사이도 없이, 계속 앞으로 전 속력을 다해 달려간다. 그러다가  큰 강가나 절벽이 눈 앞에 다가와도 빠른 속도로 달려온 스프링벅의 무리는 갑자기 정지할 수가 없다. 앞 무리들은 위험을 깨닫고 멈추려고 해도, 뒷 무리에 밀려 결국 어이없는 죽음을 맞게 된다.

스프링벅의 비극은 충족의 '균형'을 잃어버린 결과다. 이는, 종교든 이념이든 또는 인류든 위험을 깨달은 순간에 자신이 질주해 온 관성에 떠밀려 사선을 넘게 된다는 것을 각성시킨다. 파멸을 돌이킬 수 있는 마지노선은 균형을 이루려는 관성이 아직 남아 있는 지점이다.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런 관성이 다행히 작동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지 않을까. 미세하나마 균형의 작동이 감지된다면 몸을 돌려 본래의 목적인 풀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 작동을 멈췄다면 절벽으로 질주하는 관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질 것이다.

이념이거나 종교이거나 혹은 공조직이거나 그 존립의 조건은 항상성이다. 탐욕으로 경쟁을 유발하며 온도를 망각케하는 지도자이거나 특권을 누리는 구성원들은 무리가 선두경쟁을 벌이며 뒤엉킨 사이 후미의 드넓은 초원을 누린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서 벗어난 결과다. 그러나 만약 무리가 질주의 오류를 깨닫고 가속도를 감당한 뒤 반작용에 돌입한다면, 후미에 있던 지도자이거나 특권을 누리는 구성원들은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는 대신 으깨어지고 찢기는 고통의 파국을 맞이할 것이다. 기치의 항상성은 권력이다. 하지만 그것을 훼손하는 것은 중력을 거스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