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대통령은 국민의 자존심이다. 국민들은 스스로 도덕성이나 준법정신의 개인차를 인정하지만, 대통령의 도덕적 흠결이나 법을 경시하는 태도는 용납하지 못한다. 더구나 대통령이 법위에 군림하려고 했다면 탄핵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은 상대적 검증을 통해 가장 나무랄 곳이 없는 이를 선출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구성원들이 존립하는 이유는 그 국민의 자존심에서 찾아야 한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은 당장 삼권분립주의에 반하는 월권과 남용의 산물이다. 게다가 청와대는 민간인 사찰활동을 들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지원관실에 대포폰을 제공한 문제로 의혹의 중심에 섰다. 지원관실과 청와대의 상관관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원관실이 사찰활동 결과물을 모아서 청와대에 날랐다면, 권력의 중심부에서 국가조직 원리의 근간을 뒤흔든 사안이다. 이 진실공방은 진행형이지만 이런 일련의 의혹은 대통령의 권위 즉, 국민의 자존심을 거칠게 훼손하면서 좌충우돌하는 양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터져나온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의 뇌물수수 의혹 제기는 미쳐 날뛰는 말에 불을 붙이는 격이 되었다. 민주당의 강기정 의원은 국회에서 영부인이 특정 기업 사장의 연임 로비 대상 이었다고 폭로했다. 사실이라면 우리는, 제2의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져 싸늘하게 식은 대통령의 시신을 마주해야 할 비운의 국민이다. 대통령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폭로가 가당치도 않은 거짓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할 당위를 안고 있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이 과도한 외상성 스트레스로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렇게 시계가 불투명한 국면에서 검찰은 며칠 전 청목회 입법로비 의혹을 수사하면서 여야 국회의원 11명에 대해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영부인의 뇌물수수 의혹을 폭로한 강기정 의원이 여기에 포함됐다. 그 법리가 무엇인지 아직 불확실하지만, 정국을 삽시간에 경색시키는데는 주효했다. 여야가 짐짓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반발하고 있으나, 미간을 육박해 오는 칼날에 감기는 눈은 어쩔 수 없다. 분기탱천한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운 정치권은 일단 최대의 방어를 위해 청와대에 집중 공세를 퍼부을 태세다.

아무튼 청와대와 대통령 일가를 둘러싼 의혹은 이제 설전에 그치지 않는 진검 승부처를 맞았다. 감추려 하는 쪽과 진상공개를 요구하는 쪽이 결국 막다른 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양 쪽 모두 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형국이다. 하지만 어느쪽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물러서서도 않 되는 상황이다. 모두가 국민을 섬겨야 할 공복들이 아닌가. 

국민들은 대통령이 청와대를 경유하여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민간인 사찰을 지시했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 없다. 영부인이 뇌물을 받고 특정기업의 인사에 개입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더구나 대통령이 검찰을 동원하여 '불경스러운' 설을 폭로한 의원과, 차제에 뻣뻣한 정치권을 길들이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이 달가울리 없다. 대통령에 기대하는 국민들의 자존심이 그토록 상궤를 벗어나고 도덕률에 어긋나는 지점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존심이란,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다. 굴하지 않을 품위는 신독(愼獨)으로 배양된다. 여러사람 속에 있을 때와 같이 홀로 있을 때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이 언행을 삼가며, 속내에서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 신독이다. 자신을 속이지 않기를 마치 악취를 싫어하고 미인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며, 이를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런 자존심을 자부하는 이는, 안으로 성실하면 저절로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안다.

신독을 수양방법이나 실천덕목으로 삼는 이는, 주체와 객체 또는 자연과 자아가 나뉘어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공동체적 인식을 출발점으로 삼으며, 자연과 일체를 이루는 '나'란 주체는 겉으로 보기에 홀로인 상황이라 해도 홀로일 수 없고 여럿인 상황이라도 결국 홀로일 수 없다는 존재론적 의식에 도달한다. '감춘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없고, 조그마한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신독은 이렇게 하여, 자기 내면의 성찰을 통해 마음에 내재한 인욕·물욕을 인정하고 그에 갈려지지 않도록 하며, 선과 악이 나누어지는 기미를 마음 속에서 신중하게 다스리는 기제가 된다. 신독은 한마디로 남은 모르고 자신만이 아는 일을 신중히 하여 내부를 부식시키는 독을 제거하며 '양지(良知)를 회복하는 일'이다. 이렇게 신독(愼獨)에 이르게 되면, 시작할 때 처럼 신중하고(愼初), 작은 일에도 신중하며(愼微), 물욕을 내지 않게(愼慾) 된다. 대통령이 국민의 자존심인 이유는, 적어도 그런 신독을 수양과 실천덕목으로 삼는다는 전제 때문이다.

민심의 지향점, 정직과 경외심

신독은 나아가 중화(中和)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니, 화평은 커녕 이렇게 혼란스러운 정국을 대통령이 주도 했을리 만무하다. 하물며 청와대 구성원들은 그런 신성(神聖)을 지키고 외부로부터 더렵혀진 것을 닦아내는 데 성심을 다하기에도 부족하다. 대통령 직무에 부여된 도덕 준칙을 꾸겨서 폐기처분하고, 법 위에서 전횡을 휘두르고서도 감추기에 급급하는 것이 청와대의 현주소라는 것을 믿을 국민은 없다. 게다가 대통령과 한마음 한몸인 영부인의 부정이라니, 그런 의혹을 폭로하여 불신을 조장한 국회의원과 정치권 일각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검찰을 동원했다니, 어불성설이다.    

중용의 핵심사상인 '다른 사람은 모르더라도 너 스스로는 알고 있다'는 관점을 빌어보더라도 국민은 대통령이 혼탁한 와류에 휩쓸려 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대통령이나 청와대 그리고 검찰은 국민이‘아무리 은미하고 미세한 대상이나 기미조차도 헤아려 감지한다’는 것을 모르는 듯 하다. 정직과 경외만이 민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