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정보(情報)란 직간접적인 이해관계자들에게 가치가 있는 법이다. 또는 그 가치를 알아보는 제3자에게 쓸모가 있다. 상식이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과 그 증거인멸은 납득할 수 없는 명제다. 나라의 녹을 먹는 그들이 직무상 주어진 자신의 동선을 일탈해야 했던 이유가 뭘까. 또, 국민의 세금으로 제공된 국가기관의 사무실에 버젓이 앉아 자신들이 불법으로 수집한 정보를 컴퓨터에 기록 할 수 있었던 대담성의 근원은 어디일까.

재판부는 그들 가운데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을 지시한 기획총괄과장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주무관과 조사관에게 집행유예를 각각 선고했다. 그들이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리 없다. 오히려 민간인 사찰 사실이 구체적으로 발각되기 보다 증거인멸로 처벌 받는 쪽이 가볍다는 걸 인지한 행위의 결과다. 그들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해도 무시할 만한 정황이다. 코흘리개가 아니고서야 그걸 누가 믿겠나. 혹은 그들이 속한 권부(權府)를 성역으로 여기고 권력의 시녀로서 한 행위가 치외법권에 속한다고 믿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튼 잘못되면 파멸이라는 위험부담을 안고 그들이 추구했던 실익은 무엇이었을까. 법원이 인정한 그들의 증거인멸 행위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연출됐다. 민간인 사찰 수사가 언론에 보도된 직후 범행을 모의한 이래, 관련 지원관실에서 사용하던 컴퓨터 파일을 삭제하고도 불안한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망가뜨렸다. 지시와 실행은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 재판부는 그런 증거인멸 과정에서 선택된 행위의 수단·방법은 공무원들에 의해 자행됐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은밀하고 비정상적이었다고 판시했다.

우리는 특히, 일련의 증거인멸 행위가 시기와 흐름, 방법에서 그들 무리에 국한 된 범행이 아니라는 점을 너무 쉽게 감지 할 수 있다. 우선 그들은 총리실이 지원관실의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 날 지원관실 컴퓨터 9대에 들어있는 하드디스크의 관련 파일을 지웠다. 검찰이 지원관실을 압수수색하기 이틀 전에는 지원관 등 4명이 사용하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영구 삭제 했다. 이 과정에서 주무관은 청와대의 행정관이 제공한 차명폰을 범행에 사용했다.

신세를 한탄하겠지만 그들은 공직에 복귀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 처했다. 그들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그런 정보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운 파렴치한들이 아니라면 도마뱀 꼬리가 된 꼴이다. 하지만 그들은 양심선언을 할 타이밍도 잃었다. 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규명은 미궁속에 빠질 공산이 높아졌다. 우리의 관심은 그들에게 필요없는 정보가 왜 수집되어야만 했는가에 쏠릴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상명하복을 원칙으로 삼는 공조직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에서 두드러지는 그들 패턴을 예사롭게 넘기지 못한다. 사법기능을 적극적으로 저해하고 국가적 혼란을 야기한 자신들의 범죄를 보안지침에 따른 정당행위로 강변하고 있지 않은가. 재판부도 그들의 조직보호를 우선시한 계획적인 범행의 위험성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여기에는 환경에 의해 변이된 그들이 있다. 권부((權府)의 일원으로서 그런 환경에 익숙한 자신들의 불법행위가 대수롭지 않은 종족이다. 신분상승에 눈이 먼 그들에게 민간인 사찰 정도는 적색등일 때 횡단보도를 건너는 정도이지 않았을까. 잘 살피지 못하고 건넜더라도 신호를 조작하는 누군가가 자신들을 보호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지 않았을까. 남은 인생을 담보하면서까지 입을 다물고 증거를 인멸하는 그들이 그런 질문들을 양산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최악의 경우라도 보호받을 수 있다고 믿게한 실체를 알고 싶다. 그들을 재물로 던져놓고 만면에 희색을 띨 어둠속의 그가 누구인지 알아야만 한다. 그를 정권의 썩은 환부에서 적출해 내지 못한 우리 창백한 민주(民主)는 국제사회로부터 온전한 국체(國體)로 인정받을 수 없다. 그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권부((權府)가 민간인을 사정(査正)한다는 것은 공포감의 조장이다. 그런 관점에서는 민간인 사찰행위를 들켰더라도 효과는 발생한다. 더구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 마당에서야 그 위력이 배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는, 이 정권이 입맛에 맞지 않는 민간인을 사회적으로 제거하거나 혼내서 버릇을 고치는 직접적인 폭력보다 더 역점적으로 노릴만한 효과가 아니겠는가. 국민이 왜곡된 권력행사의 음성화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한 유효한 조폭집단적 마인드다.

의문은 불신을 생산한다

힘있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정보였다면, 어떻게 쓰여졌는가를 밝혀야 한다. 권부의 조종을 받았을 검찰에 의해 인권이 어떻게 유린되었는가를 확인 할 수 있으며, 우리의 민주가 몇보를 퇴보했는지를 알아내서 앞으로 나아갈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서다. 혹은, 그런 유용한 정보로 겁박하여 민간인의 입에 재갈을 물린 일이 얼마나 있었는지도 밝혀내야겠다. 권력의 줄세우기가 국력을 얼마나 무력화시키는지를 실증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모든 의혹에 전제되는 '실체적 진실'은 가정(假定)에 그치게 됐다. 이로 인해 배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국가적 혼란만 가중됐다. 우리는 이런 정권이 친서민 정책을 올바르게 추진할 수 있으리라고 믿지 못한다. 공정사회를 이룰 수 있으리라고는 더욱 믿을 수 없다. 이번 사안과 같이 제기되는 의혹을 묵살하고 감추려는데 급급한 말초적 국정운영이 속출하고 있기에 그렇다. 공개하고 책임을 묻는 것이 오히려 이미 침해된 기본권을 회복하는 길이다. 권부((權府)는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멸을 선택한 배경은 뭘까. 의문은 불신을 생산한다. 부정적인 기류가 팽창하면 극단에서 정권이 입을 피해는 국가 전체에 미친다.

전쟁발발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연평도 참사는 그 단적인 명증이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며, 전쟁은 천재지변과 같다. 참으로 지워야 할 것은 민심에 대한 이 정권의 그릇된 마인드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