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학교나 직장 밖에서 누군가를 목적 없이 만날 기회는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문득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방법으로 번개모임을 만들거나 가입해 보지만, 현실에서 목적에 묶인 몸이 갑자기 지정된 장소로 나가는 경우란 극히 드물다. 일상에서 허용되는 짬을 틈타 가상공간에 접속하는 일에 집착하는 것은, 그런 오프라인에 대한 단절감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꽉찬 어둠에 반비례하는 공허감, 그것이 심야의 온라인에서 잠못이루는 들끓는 감정의 원천은 아닐까.

여흥과 오락, 정보의 과잉 시대다. 그러나 그 접근성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이 압도적으로 높다. 멀티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시공간에서 팔색조 처럼 특정한 색깔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양하게 인식하는 주체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런 현상속에 공존하는 소비자의 가치와 반응생산 시스템은 융합과 재생산을 거듭하며, 가상에서 현실을 재현하는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스마트폰으로 하늘을 찍으면 날씨정보가 뜨고, 바코드를 찍으면 해당 제품을 가장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매장을 알려주는 시대다.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현실의 소비가 가상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현실과 가상이 혼재되는 새로운 소비패턴이 형성된다.           

현실을 가상으로 재구성하고 자신을 거기에 시뮬레이션하는 계층이 팽창일로에 있다. 스타는 현실에서는 멀리있지만, 가상현실에서는 라이프 스타일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친구이자 모델이 된다. 스타의 영향력은 이런 환경에 힘입어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된다.  
정해진 틀에서 스스로를 제약하지 않고 자유분방하며 활동이 가장 왕성한 세대, 새로운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새로 출시된 모바일기기에 왕성한 식욕을 보이는 부류, 스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무리, 그들의 소비 트렌드가 시장을 지배하는 시대가 됐다.

가상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는 이율배반적인 정체성을 낳고 여기서 파생된 소비행태는 극단의 양면성을 보인다. 성별이나 나이 지위 등은 더이상 소비를 한정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여성들 사이에 과거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밀리터리룩이 유행하고 남성들은 두피관리를 받는다. 가격이 저렴한 보급형 패션을 즐겨 입으면서도 품질은 우수하길 원하고 간혹 지나칠 정도로 고가의 명품을 사들이기도 한다. 전문가들의 소비트렌드 분석 결과다.

그들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의 무분별한 확산을 조장하고 불확실성을 양산하는 주범이면서, 동시에 그 폐해를 걱정하며 음모론과 과장에 공포심을 느낀다. 미니홈피·블로그·트위터·페이스북 등을 통해 자신의 사적인 일상을 낱낱이 개방하고 공유하면서도 프라이버시는 보호받고 싶어한다. 경계(境界)를 무너뜨리고 섞이면서도 경계(警戒)하고,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또다시 가상공간의 익명성을 파고든다.

우리가 가상공간에 매달리는 현상, 그것은 외로움에서 비롯하고 있다. 하지만 의심할 수 없는 그 명제는 다망한 우리가 미처 살피지 못한다. 모든 현상 속에서 외로움은 중심에서 밀려나 있다. 주변부에서도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는 모순이 상존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한사코 외면하려 해도 보이는 한계 그 너머로 시선을 돌려본다.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더이상은 다가갈 수 없는 온라인이 얼마나 더 오래 그들을 붙잡아 놓을 수 있을까. 먼 훗날에도 그들의 여가 시간을 여전히 거의 송두리째 온라인이 점유하고 있을 것인가.  

최근 오프라인의 길 위에 나선 사람들, 꼬리를 무는 행렬에서 그 예측은 가능하다. 올레길, 둘레길, 마실길, 구불길 위에서 온라인의 한계가 극복되고 있다. 그들은 현재 지향적인 찰라족이면서 동시에 느린 삶의 모토를 사회적 트렌드로 창출한다. 폭발적인 성장으로 축조된 가상공간의 장벽이 뚫리고, 현실 속으로 회귀하는 무리들이 점증하고 있다. 덕분에 쏠림이 완화되고 가상과 현실이 점유율을 다투며 균형에 힘쓰고 있다. 그들이 나선 길의 어느 지점 지점에 소통하는 광장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단서다.

그들, 지킬과 하이드 같은 다중의 정체성은 어떤 양태이든 고착화 되는 것을 거부하는 속성을 지닌다. 무엇이든 가치 있다고 판단되면 고액이라도 과감하게 지불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거리를 따지지도 않는다. 그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핵심 요소는 신뢰와 진정성이다.

덤과 나눔이 직조된 그리움

하지만 우리 정부의 정책들은 그들 소비 트렌드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은 그 단적인 예다. 도시 하나 정도를 살 수 있는 돈으로 각 지역의 재래시장을 허물고 반듯한 철골 콘크리트 건물로 새단장하거나 또는, 시장 통로에 비가림 시설을 했다. 통풍이 잘 되지 않아 1차식품의 선도가 금새 떨어지고, 시장 내부에서의 이동성도 떨어진다.

대형 할인매장이 충족할 수 없었던 재래시장의 가치를 모두 지우고, 대형할인매장과 유사한 조건을 만들어서 비교평가를 더 쉽게 만든 꼴이 되었다. 과거 재래시장은 우리의 길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소통의 광장이었다. 순간에 강하고 싫증도 쉽게 내는 그들에게 불변의 가치를 고스란히 보여줄 집적된 역사였다. 기쁨은 덤으로 얹고 고달픔은 나누며 목적 없는 유대가 얼키설키 직조되어 이른 봄 훈풍에 펄럭이던 그리움이었다.

그들이 온라인에서 걸어나와 길에서 잠시 쉬고 싶을 때 잊혔던 서정을 일깨워 줄 그 곳은 우리 어디에 있는가. 익산 관내 한 재래시장 상인들은 현대화사업 과정에서 수년 동안 업권 쟁탈을 벌였다. 최소한의 인륜과 도덕마저 무너진 이전투구로 시장은 내적으로도 황폐해졌다. 인간성이 파괴된 갈등 속으로 걸어가기 위해 그들이 가상공간의 환희를 잠시라도 떠나서 나오겠는가. 겨울의 길목에서 이 떨리는 외로움은 어디로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