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한다. 하지만 인류 보편의 가치는 변해서는 안 된다. 상황에 따라 명멸을 거듭하며 수정 보완되는 것이 법이나 정의가 사는 모습이라면, 평화공존이나 인권, 분배 같은 보편의 가치는 정의를 개선하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본말이 전도된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정의는 한낱 힘의 도구일 뿐이며, 인류 보편의 가치는 그 힘의 행사를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인 경우가 다반사다. 사회주의든 민주주의든 구성원들이 먹는 것에 접근하기 어렵다면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떠난다면 국가공동체가 애시당초 성립되지 못하고, 기존의 국가는 붕괴되고 말 것이다. 상식이다.
지구촌에서는 국가간 경계의 모호성이 가속화되고 블럭화가 진행된지 오래다.

그 목표는 단순하고도 뚜렷하다. 먹는 것을 독점하는 시스템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먹는 것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나, 먹는 것을 골고루 나누는 것은 지구촌 전체가 힘써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다.

사회주의가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궁극의 가치로 삼고 그것을 위해 통제를 수단으로 삼는 국체라면, 민주주의는 자유시장체제를 이념으로 삼지만 역시 골고루 잘 먹는 복지사회 구현을 외면하지 못한다.

이런 걸 아는데 전문가여야만 하는가.
무한경쟁의 자유시장구조에서 부(富)의 끊임없는 진화와 낙오자의 도태는 불가피한 문제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세계인 야생에서도 강자만 살아남고 약자는 모두 멸종한다면 강자의 세상은 더이상 존재하지 못한다.

강자를 위해 약자의 개체수를 유지해야 하는 딜레마는 거기에서 비롯한다.

부와 가난은 늘 상대평가 되는 숙명을 지닌다.

가난이 없는 부자들만의 세상은 실현 불가능하며, 빈자의 노동력 없이 부가 창출될 수는 없다.
부자가 보다 나은 부를 누리기 위해서는 가난의 질부터 높여야 한다.

부자와 빈자는 동시에 소비자인 탓이다.

부의 집중을 막지 못하더라도 분배하려고 하는 정의는 이렇듯 인류 보편의 가치가 세우는 것이다.

자본의 독점지배 구조를 견제하고 군소 자본의 시장진입이 용이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정부의 개입 행위는 자유시장체제에 정면으로 반한다.

하지만 공생을 위해서 이런 체제의 정의는 수정될 수 밖에 없다.

사회주의든 민주주의든 당초 고전적인 체제의 정의를 고집하지 못하면서 지속적인 수정이 불가피한 가변성 높은 현실, 결국 그런 정의는 원형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추론까지 가능하게 한다. 체제가 무엇이든 먹고 누리며 그 질을 신장하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붕괴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체제는 누구든지 부를 획득하면 그에 상응하는 조세를 지불하도록 강제한다.

조세는 공리(公利)를 이루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공리의 본질은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그런 목적이 있기에 누구나 혈투를 벌여 거둔 부의 일부를 기꺼이 나누는 것이다.

정당한 자유경쟁으로 획득 된 부를 강제로 빼앗는 것은 체제의 정의에 반한다.

하지만 체제가 그것을 수용하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한사코 그런 정의를 존재토록 하는 보편의 가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새삼 우리들이 서있는 지형을 돌아보게 하는 것은, 지난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라 신묘년 벽두로 넘어 온 '무상급식'이다.

배를 주리는 학생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되, 도시락과 급식 사이의 위화감을 상쇄하자는 것, 상대다수를 차지하는 맞벌이 학부모들의 도시락을 꾸리는데 필요한 시간과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자는 것이 무상급식론의 대강(大綱)이다. 국가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할 때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가치다.

나아가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건강한 신체는 국부(國富)의 핵심 자산이다. 인적 자산은 다양한 부의 집적화를 달성, 보다 크고 광범위한 부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나가는 직접적인 동력이다.

이렇게 복지의 관점을 벗어나 투자의 관점으로 무상급식을 바라볼 때도 이를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어떻게 보아도 무상급식은 국가 백년대계의 한 축이다. 정부가 이를 중요 정책으로 삼는 것을 상대다수 국민이 원한다.

정치적 자살 왜 하나

그런데 우리의 대통령께서는, 새해 첫 특별연설에서 이 무상급식과 같은 '보편적 복지' 노선을 "환심을 사려는 복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규정했다.

한정된 국가 재정으로 무차별적 시혜를 베푸는 것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고 했다.

복지 포퓰리즘은 재정위기를 초래하여 국가의 장래는 물론, 복지 그 자체를 위협한다고 했다.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에게 돈을 쓰느라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가로막는 건 공정한 사회에도 부합되지 않는다고 했다.

골고루 잘 살고 그 질을 높여가자는 보편적 복지 노선과, 그에 속하며 핵심 실천목표로 부상한 무상급식을 인기영합주의의 산물로 규정한 것이다.

향후 국정 운영은 지극히 어렵게 됐다. '복지' 그 자체를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다른 견해와 마주쳤을 때, 대응 할 논리는 미처 개발하지 못한 듯 하다.

대저 '인기영합주의'는 '정치적 목적'의 꼬리표를 달고 있다. 정부는 향후 복지정책을 펼칠 때 마다 인기영합주의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 꼴이다.

무상급식을 폄훼하면서 정치적 자살을 선택한 셈법은 무엇에서 비롯했는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대통령께서 밝힌 올해 우리 정부의 복지 목표는 맞춤형 복지로 촘촘히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삶의 질 선진화다. 개인이 태어나서 노후까지, 생애주기에 맞게 자아실현과 삶을 누리도록 한다는 것이다.

무상급식은 왜 여기에 속할 수 없다는 것인지를 납득하기 위해, 앞으로 한 발짝 내딛기 위해, 보편의 가치를 자꾸 지워보게 되는 기막힌 현실이다. 정부는 새해 복지 정책의 좌표가 굳이 절망을 향하게 된 까닭을 해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