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 그것은 율법이 있기 이전이나 이후 최고의 공공선(公共善)이다.

그러나 그 공동체 이상향의 이정표는 짙은 안개 속에서 흐릿하다.

더구나 우리가 경험한 '정의사회 구현'이란 국민을 탄압하고 살육한 정부의 구실이었다.

유신 독재의 터널을 막 벗어나 안도하며 기대에 벅찼던 우리에게 군부정권의 '정의'(正義)는 '불의'(不義)의 총탄이었다.

그것은 젊은 가슴을 찢었고, 정작 붉은 정의는 차가운 길바닥에 흩뿌려져 퇴색한지 오래다.

공정사회의 의미는 언급하는 쪽에 의해 결정된다.

공정에 흠집을 낸 쪽이 그것을 표방한다면 누가 믿겠는가.

그런 이유로 지금 공정사회를 운운하기 위해서는 깊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공공선에 새 피를 치환할 만한 철학이 숙고(熟考)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단지 시대정신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덮어놓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정권 자신에게 위험하다.

공정은 엄격한 기준 없이 설 수 없는 속성을 지닌다. 어설프게 집권 명제를 '공정사회'로 삼았다가는 감당하지 못할 공산이 높다.

공정은 '불편부당'과 '기회균등'이 본질이다.

공정사회로 가기 위해선 반칙없는 정직한 사회를 먼저 세워야 한다.

그러니 이 정권에 그럴 동력이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떳떳한가. 노동자와 비정규직의 쟁의 행위 앞에, 불의로 점철된 권력 행사와 정의를 가장한 탄압이 있었지 않은가. 표현의 범위를 빙자하여 주인의 자유는 제한하고, 이웃은 자극해서 싸움을 걸기를 일삼지 않았는가. 있었다면 그걸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점검해 볼 때다.

불신과 불통을 양산하지 않았는가. 치유와 청산절차를 거쳐야 하지 않는가.

이 정권이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올바른 상태를 유지하며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말빨이 좀 먹히지 않겠는가.  

근래 있었던 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70% 내외의 응답자가 '우리 사회는 불공정하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28.1%는 불공정하다고 느낀 이유에 대해 '엄정하고 투명한 법 집행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고, 15.8%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법을 제대로 집행하고 적용하는 것에서부터 공정은 시작된다.

또, 가장 바람직한 사회가 되려면 약자에 대한 배려를 등한시해선 안 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정권이 법을 권력 남용의 도구로 삼았다는 의구심이 해를 넘어왔다.

정권 자신의 부정을 감추기 위해서는 사법기관 수뇌의 목죄기를 주저치 않았다는 의혹도 규명되지 않고 있다.

사회적약자를 사지로 몰아 넣은 치안 책임자를 중용하는 정권이다.

그러나 공정사회를 후반기 국정지표로 표명한 이후에도 사법부 개혁에 관한 일말의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사법부를 바로 세우지 않고 공정사회로 가는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을까.  

법은 합의의 산물이다. 그 집행의 타당성 여부가 범죄를 예방하는 척도가 된다.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큰 도둑은 놓아두고 민생관련 범법자들을 대량 양산하면 법의 구속력은 약화된다.

범죄가 부끄럽지 않은 사회는 합의가 깨진 사회다.

법은 더이상 공정사회로 가는 길이 되지 못한다.

한비자는 법치의 중요성을 거울과 저울에 비유했다.

외부의 영향이 없어야만 사물의 모습과 중량을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공정사회는 각자 정당한 자기 몫만큼 누리며,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누렸을 때 열린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차원의 법과 제도는 결국 자유시장체제에 반하여 전개될 수 밖에 없다.

'공정'이 객관적이지 못하고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많은 단적인 이유다.

이렇듯, 사회복지제도는 공정경쟁의 틀을 훼손해서 경제적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역기능도 유발한다. 과연 이 정부가 그런 험로를 걸으며 균형을 잡아 갈 수 있는지 스스로 진단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는 공정의 본질을 일탈할 수 밖에 없고, 강자의 자발적 참여와 국민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시장경제원리가 잘 작동할 수 있는 사회에서 더 잘 실현 될 수 있다.

그건 유기적 연동이 유발하는 시너지 효과에서 기인한다.

도덕적 공정의 토대 위에서 경제적 공정이 꽃을 피울 수 있다.

둘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며, 공정이라는 천칭저울의 양쪽 접시에 놓여 어느쪽으로도 기울지 않는다.

우리사회의 정치적 공정은 도덕적 공정을 내세워 경제적 공정을 이룩하는 행동이며, 기회주의를 배제한 페어플레이다.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이 이전에 가졌던 신념들을 버리는 것과 어떤 비용을 들여서라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려는 행태를 근절해야 한다. 그들 보따리 정치인들은 골라 놓으면 대중을 배신해 버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사관, 신념, 소신으로 끈질기게 대중들을 설득시켜 영향력을 확장하는 성실한 정치인이 눈에 잘 띄는 정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상생결핍증 치유할 패러다임

정치가 공정하지 못한 원인은 일상의 불공정이다. '부'(富)를 축적하기 위해 택한 환상의 결과물이 기회주의 정치인들이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댓가를 치루는 사회적 공정이 정치적 공정의 밑거름이다. 

이렇게 완성된 각 분야의 공정이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 위해선 사회통합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 정부의 자정노력이 시민 각자의 공정의지를 일깨우고, 공정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들이 공리(公理)를 찾아갈 수 있는 소통구조가 구축되어야 한다.

정권이기주의를 벗어나야만 정당간 상생결핍증을 치유할 소통 정치의 패러다임을 창출할 수 있다. 공정사회는 그 위에 싹틀 수 있다.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획득한 권력은 언제나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방법으로 장악한 권력은 항상 부도덕하다." 그렇다. 지금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보면, 어떻게 권력을 획득했는가를 알 수 있다.